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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아적 학습.

박세욱. 2024. 1. 14. 19:27

162 자아적 학습.

탄생에서 학습은 필연이다.
바보는 멍청하지 안을수 있다.
산업사회의 시류에서 차별적 시각이다.
특별한 경우라고 하여도 무방하다.
일반적으로 두뇌의 능력은 학습의 집중력이다.
태어나며 시작되는 시각과 후각과 소리로 대표되는 정보의 습득이다.
학습은 산업사회의 절대에 얶메이지 안고 이루어진다.
시류와 다른 학습의 격리가 있다.

회피적 이유의 사회적 소외에서 자연에 예속된 자아적 학습이다.

사물의 외적지식에서 내면의 자아적 이해에 집착하는 생물학적 본능이다.
산업사회의 조건적 부담에서 소외와 외로움은 가장 보편적 생태계에 예속된다.
먹고 입고 자는 부담에서 최소한의 생존조건에 만족하는 정신의 안주이다.
우째튼 존재의 자유를 찾아야 하는 것이 생존이다.
학습에서 시류와 인습이 절대라고 할수없다는 것이다.
자아적 성장은 시류의 대세적 집착과 격리된 학습이다.
대체로 시류의 불가항력적 조건에서 회피적 학습이다.
관계의 이해에서 다른방향의 학습이 바보의 이미지를 형성한다.
성취적 시류와 관계의 동격적 인습에서 괴리적 행동이다.

산업사회 예속 전 자연과 자아의 학습에 고립되었다면 시류와 다른사고를 할수있다는 것이다.
성취와 경쟁의 시류에서 격리된 소외의 자아적 학습이다.
완성되지 안은 사회적 시각에서 스스로 선택한 존재의 전부이다.

사회에서 이탈한 외로운 시간이다.
육신과 정신의 성장은 산업사회의 성취와 경쟁적 생존을 요구한다.
회성의 예속이다.
동심에서 산업사회에 적응하는 생존적 변화이다.
여기에서 격리된 시간의 자아적 학습은 사회의 적응이 어렵다.
바보 같은 시각과 행위의 실수이다.

물질과 이성과 성취의 이해가 늦다.
자아적 고립과 내면에 집착한 학습은 산업사회의 시류와 관계에서 실수를 밥먹듯 한다.
동격적 인습에 비교되는 행위적 오류의 바보이다.
협잡과 권모술수의 모합과 야합등 다양한 세상사와 산업사회의 성취적 불편함이다.
자연에 예속된 자아적 사고로 쉽게 대응할수 없는 이해의 괴리이다.
자본과 산업사회의 시류와 동떨어진 사고의 지배이다.
지능의 결핍은 생물학적 균형을 상실한 정신의 결함이다.

정신의 결함없는 사고의 바보가 문제이다.
학습의 방향이 다른 지식이다.

자아적 학습의 성장에서 사회에 적응하려는 노력이 있다.
시류의 보편성에 합류하려는 관계적 이미지의 지능적 적응이다.
방어적 사고의 내적 번민이다.
사회적 관계의 이해와 성장에서 스스로 자책하는 실수의 보완적 생존이다.

우수한 지능의 집중력으로 시류에 적응하는 스스로의 성장이다.
경쟁과 성취에서 자아적 지능의 대응이다.

자연에 예속된 단순한 자아의 집중력은 지능을 향상킨다.
참선의 예시일수 있다.
과정에서 생물학적 예지력이 향상된다.


산업사회의 소외에서 생물학적 생태계에 예속된 자아적 학습능력이다.
환경적 조건에서 부족함을 의식하는 스스로의 보호이다.
자아적 학습은 오히려 우수한 생물학적 진화의 진리를 이해하고 있다.
의식하든 의식하지 안든 내안의 무한을 찾는다.
문명에서 자연에 예속된 생물학적 지능의 순리이다.
스스로의 소외에서 내면에 집중한 학습의 결과이다.
이경우는 사물에 대한 사고의 방향성 문제이지 바보가 아니다.
일반적으로 눈치라는 것이다.
사물의 이해에서 눈치의 범위를 초월하는 분석과 분별력이 있다.

암시적 감각의 향상이다.
예지력이다.
소외와 외로움에서 동인격의 차이를 자책하며 적응한 산업사회의 또다른 이해이다.
착오와 실수의 시행착오를 극복한 지능적 학습의 결과이다.
관계에서 상대의 의도를 탐색하는 생존적 지능의 노력이다.
바람결에 세상사 흐름을 알수있다.
보이지 안는 것으로 대화할수 있다.

내적 사고력이다.
순진은 오히려 지능적 집중력과 분별력을 소유할수 있다는 것이다.

고립의 자아적 지능에서 발견의 노력이 필요하다.
시류적 시각에서 행위적 이탈의 사소한 무지는 죄가 아니다.
지순한 내적 사고력이 행위를 병행할때 돌연변이적 능력을 발휘한다.
특별한 분야에서 탁월한 능력이다.
사물의 이해에서 특별한 능력을 성취하는 경우이다.
바보는 천재일수 있다.
오히려 상대의 의도를 파악하는 집중력에서 유능할수 있다.
생태적 본능이 산업사회의 인습에 적응하며 학습된 결과이다.
관찰과 분석등 사물의 이해에서 자아적 집중력이 향상시킨 능력이다.

산업사회의 증거적 습성으로 이해할수 없는 보이지 안는 암시적 시각이다.
학습은 두뇌의 수용과 퇴화에서 시간의 한계가 있다.
모든분야에서 뛰어날수 없다.
그릇의 한계이다.
사물이 존재의 전부가 아니다.
관계에서 정신적 문제가 있다.
후천적 바보는 환경과 학습의 차이라는 것이다.

산업사회의 시류에서 자연에 예속된 자아적 집중력은 반문명론의 이해이다.
반문명론의 이해가 좀더 필요하다.

산업사회의 지배에서 자연에 예속된 자아적 지능의 문제이다.
문명은 산업사회의 경쟁적 성취에 국한되지 안는다.
정신문명의 필요이다.
증거적 욕구에서 보이지 안는것의 믿음이다.
반문명론에서 지적하고 있는 산업과 기술의 정신지배를 이해하는 것이다.
잊혀지고 있는 대자연의 암시적 질서이다.
생명의 이해이다.
현실은 미지의 극히 일부이다.
감각적 존재도 알수없는 미지가 대부분이다.

보이지 안는 미지의 무한함은 끝이 없다.
자연에 예속된 자아적 지능으로 미지를 암시할수 있을 것이다.
생물학적 진화에서 시간으로 내제되어 있는 정신문명의 예지력 이다.

내안에 있는 것이다.
산업과 기술이 지배하는 시류에서 반문명론의 본질이라는 이해이다.
2024.1.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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