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사사로움.
변화. 본문
158 변화.
국가와 정치발전에서 상수와 변수가 필요하다.
선택이 단순하면 시각도 단순하다.
모두가 안주하면 발전하지 안는다.
문제는 가장맗은 변화를 요구해야 하는 정치가 좌우논리의 울타리에 안주하고 있다는 것이다.
국가와 민생에서 미래가 아니라 권세와 성취에 바쁜 기득권의 배때기이다.
내것의 오만에 빠진 별볼일 없는 권모술수와 가식적 현상의 탐욕이다.
대의를 상실한 치졸한 산수와 뵈는것 없는 무의식의 정치이다.
목적을 상실한 허울좋은 한량이다.
국민과 국가와 미래가 없다.
오로지 내것과 울타리에 집착하는 볼성사나운 허세와 고집스런 이분법의 낮바닦이다.
정치가 일신과 양극화의 권력싸움에 연연하여 민생과 미래를 잊었다.
평가에서 일의 성과가 아니라 반목과 비하와 사돈에 팔촌의 허물까지 찾아헤메는 불신의 권태이다.
미래지향적 사고가 아니라 과거의 부정적 증거에서 민심을 판단하는 말종적 정치이다.
민심은 불확실한 미래를 긍정으로 제시할수 있는 의식과 사건의 의지가 필요하다.
분야와 전문성에서 끝임없는 경쟁은 낙오와 차별의 부정에도 실물적 시각을 유지한다.
민주주의가 지향하는 시장경제이다.
정치가 문제이다.
좌우논리에 지배되어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기능을 상실하고 있다.
좌우논리는 울타리의 패권으로 정치를 단순화 하였다.
다양성의 경쟁과 협력에서 흙백논리의 예속이다.
진영논리의 정치가 패권경쟁의 함정으로 국민과 미래를 속이고 있다.
이분법적 정치는 여야가 공생하는 관계이다.
국민과 민생은 패권경쟁의 이전투구가 아니라 긍정적 미래를 요구한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극단적 정권순환에서 국가씨스템을 장악하는 절대권력의 모순이다.
언론과 표현의 자유에서 올바른 정보전달 차단은 편협한 불길함이 있다.
사회의 안정과 발전에서 또는 시장경제와 글로벌 경쟁에서 비현실적 사고의 주입을 시도한다.
좌우논리의 획일적 사고에 지배된 협잡과 야합으로 시대적 대세를 모함하는 시정잡배의 정치이다.
상호주의를 상실한 승패정치에서 대립과 반목을 조장하는 불신적 사고의 도배이다.
울타리를 우선하는 연륜의 허세와 가당치 안은 구설의 산수 뿐인 지식으로 내것의 지배를 시도하고 있다.
정치의 수단과 방법에서 정의와 공정을 훼손하는 무지한 인격의 횡포이다.
광장과 촛불에서 개혁을 요구하였던 무소불위 절대권력의 폐해이다.
양극화의 대립과 울타리에 줄서는 성취적 탐욕은 21세기의 지식과 문화의 분별력에서 잘못된 선택이다.
촛불의 기억에서 정치의 구태가 뒤돌아 서는 시간을 견디지 못하고 재현되고 있다.
새로운 시대를 요구하는 광장의 궐기에서 좌우의 패권적 시각은 오늘도 마찬가지 이다.
국민과 국가와 대의에서 정권의 순환에도 달라질 것이 없는 비생산적 정치의 현실이다.
양극화의 승패에 집착하여 정치의 대의적 목적을 상실한 사대부적 사고의 무지이다.
광장과 촛불에서 울타리에 눈 놀아가 정치의 변화를 요구하는 민심의 진실을 모른다.
21세기 통신사회에서 씨잘떼기 없는 좌우논리에 얶메인 패권적 승패 뿐이다.
절대권력의 폐해는 나와 우리편의 사사로움에 갇힌 기획적 승패의 희열이며 자가당착의 모순이다.
오만가지 잡스런 시류를 동원하여 구설과 낮바닦으로 국민을 현혹하고 끝물에 맥아지 없는 정치판의 허세이다.
기식적 권모술수로 개인적 성취를 우선하는 우월적 존재의 망상이다.
능력과 일의 성과는 소란스럽지 안은 과정에서 만족할수 있는 결과이다.
평가와 선택에서 인격과 일의 능력에 대한 시각과 정치적 믿음이 부족하다.
보지도 따지지도 안고 우리편 이라고 맥아지 없이 선택하고 후회하는 울타리 정치의 폐해이다.
세태에서 지식과 문화의 분별력은 익숙한 불의에 권태를 느낀다.
미지에 예속된 사물의 이해는 문화적 시간을 충족하여 끝임없이 진화한다.
어제와 오늘과 내일은 다르다.
매일 떠오르는 태양이 같은 것이라고 사고하면 그렇다.
물리적 진화에서 시각과 느낌을 충족하는 증거적 변화는 감각적이지 안다.
진화에서 물리적 변화는 사고와 의식으로 느낄수 없다.
그러나 변한다.
천지창조와 종의 진화에서 분명하게 분별할수 있는 이유가 있다.
알수없는 함수의 공유이다.
감각할수 없는 환경적 미지의 교감이며 대자연의 질서이다.
현재는 미지를 향해 이해를 확장하며 변화한다.
진화는 학습의 시간과 비례한다.
이해의 확장에서 과거의 희망이 실현되고 진보한 바탕에서 새로운 미지를 시작한다.
과거의 실현에서 현재의 불편함과 권태의 저항은 미지의 확장이 된다.
배고품에서 생산성의 분배와 차별이다.
분배와 차별에서 공유와 공존이다.
대한민국 정치는 좌우논리의 승패에 집착하여 현재와 미래의 부재에 있다.
닭벼슬 같은 알량한 권세와 밥그릇에 집착하는 정치의 편협함은 기득권 안주이다.
세대와 이성의 경계를 조장하는 구설은 미래가 아니라 울타리의 예속과 내것의 낮바닦을 의식하여 떠든다.
허구헌날 이전투구를 일삼는 경계적 논리의 권모술수이다.
정치공학의 낮바닦으로 연출하고 뒤돌아 서면 잡배의 수단으로 우리편과 짜짝궁 하는 속창시의 괴리가 있다.
싸우는척 기획과 연출을 공유하며 정치의 도의를 망각한 협잡과 야합으로 기득권의 배떼기를 공유한다.
정치의 대의에서 산수에 집착하는 확성기의 레퍼토리는 국가와 민생의 절박함이 없다.
뉴스에 존속이 불안하고 사는것이 권태로워 담벼락에 낙서하고 자살하지 말라고 한다.
의식주와 성취적 조건의 차별에서 대책없이 인연의 생물학적 의무를 부탁한다.
후대의 미래에서 수백조원을 퍼부으며 떠들어도 민족의 연속성과 사회적 기대는 소귀에 경읽기 이다.
가난에서 염원하였던 문명과 자본의 시대에 안주할수 있는 평화로움의 기대가 혼란스러운 것이다.
통신과 지식의 분별력에서 무엇인가 잘못되고 있다는 방향성을 인지하면서 좌우의 이분법적 갈등에 끌려간다.
현실의 권태에서 변화의 욕구를 이해하지 못하는 지성과 정치의 직무유기 이다.
생태적 질서의 암시에서 공유한 시간의 축적으로 바뀌어야 하는데 바뀌지 안는다.
사물은 변한다는 이해에서 또다른 미지의 욕구를 실현하지 못하는 문화적 권태의 불편함이다.
사회변화의 기대에서 진화의 생리로 내제되어 있는 저항적 시간의 지루함이다.
사회와 시장과 경쟁과 차별에서 문화적 욕구는 절박하게 표현되고 있다.
가족의 극단적 선택과 길거리 묻지마 칼부림등 사회문제에서 불안정한 징조를 의식한다.
물질과 성취의 지배에서 무엇인가 침체되어 부정적 병리가 발생하고 있다는 문화적 감각이다.
악의 시험이 증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미지의 불안한 암시이다.
아니면 말고식 선동과 경계적 갈등의 갈라치기 정치가 기여하는 부정적 현상이다.
현대문명은 농경사회의 생물학적 관점에서 산업사회의 문화적 변화이다.
물질산업과 연관된 문화는 증거적 관점에 있다.
존재에서 물증적 가치를 우선한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능력과 노력의 가치를 돈과 지위로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문명은 미래의 현재라서 좋은것인지 나쁜것인지 알수없으나 생물학적 안정감에서 불길하다.
문명적 환경이 자연과 삶의 관계를 비켜가고 있다는 생각이다.
인류의 존재에서 대자연의 질서에 예속된 생물학적 진화는 수백만년 학습된 결과이다.
문제는 생태적 질서의 자아적 안정에서 문명에 예속된 정신변화의 속도이다.
문명과 통신사회에서 글로벌 지식과 문화를 공유하는 학습의 속도는 자승으로 이루어 진다.
문화의 이해에서 시간을 공유하는 세대의 변화는 짧은시차에 이루어지고 또다른 사고의 시작이 된다.
세대교체의 가속이다.
새로운 창의 변화와 같은 것이다.
사물의 이해에서 문명적 학습의 가속적 확장이다.
지식과 문화의 진화는 두려웠던 미지의 불확실성 해소이다.
저항할수 없었던 자연의 예속에서 미지에 진입하는 사물과 사건의 확장적 이해이다.
진화에서 미지의 극미한 개입도 인류에게 커다란 변화이다.
자연에 예속된 생물학적 시대에서 산업과 기술이 주도하는 문명의 시대이다.
문명과 문화의 시대는 정신의 역설이 있다.
생물학적 시대는 자연의 암시와 내면의 자아로 살았다.
산업문명은 관계의 문화를 공유하는 자아가 필요하다.
공유의 자아에서 정체된 문화의 권태가 있다.
구성원의 권리에서 노력한 댓가와 사회적 기대이다.
획일적 좌우논리의 선택적 강요와 시장경제의 경쟁과 성취적 인습의 구속에서 기회의 차별이다.
기득권으로 울타리친 정치의 편견과 의식주의 위기에서 물질과 성취적 인습의 정신지배가 불편하다.
산업사회의 관계에 예속되어 물증적 증거로 견주어 평가하는 신분의 불편함을 회피하는 내면의 자아가 편하다.
관계의 문화를 회피하는 개인주의 이다.
자연의 시대로 돌아갈 계연성이 있다.
문명의 진화에 예속된 새로운 세대는 자연과 자아의 삶이 생소할수 있다.
인류는 대부분의 시간을 자연에서 자아의 삶으로 살았다.
생태적 본능은 익숙한 새로운 것으로 유전적 연속성에 내제되어 있다.
자연과 자아의 회귀는 유행의 순환처럼 새로운 것이 될수있다는 것이다.
사물의 확장적 이해에서 변화를 요구하는 문화적 환경과 민심을 의식하지 못하는 것이다.
지식과 문화의 시대적 변화에서 현실에 안주하려는 진영정치의 양극화 문제이다.
국민이 요구하는 정치개혁의 필요와 행위에서 진화를 요구하는 속살의 무지이다.
집권과 승패의 결과에 집착하여 의견수렴의 절차적 디테일이 생략된 정치이다.
민주주의 체제는 절차를 충족하는 다양성의 진실과 합리적 결론의 수용적 대의이다.
다수가 원하면 살봐야 한다.
진영에 매몰된 정치에서 절차적 과정은 공수의 수단으로 전락하였다.
이분법적 지형에서 정치 또는 정당의 지배구도는 협잡과 야합과 관계의 불의로 선점되는 권세이다.
양극화의 이분법적 선택에서 정당내 기득권은 민심의 반이라는 잘못된 시각이다.
논리의 부재에서 무었을 하여도 말뚝으로 선택하는 절대지형이 있다는 것이다.
우월적 주목의 인습에서 이념이든 시류이든 공정이든 정의이든 이기는 넘이 장땡이라는 것이다.
정치에서 반의 절대를 신봉하는 사사로움의 철딱서니가 있다.
우리편 이면 묻지도 따지지도 안는 사대부의 권세이다.
21세기에 자가당착에 빠진 치졸한 인격의 사랑방 정치이다.
정치의 권태는 잘못된 선택에서 기인하는 국수적 또는 사사로운 기득권 안주이다.
공천에서 정치생명의 척박함을 위협하는 세도정치의 무리적 습성이다.
국가와 미래가 아니라 내것과 우리편의 희열적 승패에 안주하는 것이다.
역사와 철학에서 전체를 우선하는 민주적 절차와 옳고 그름의 신념적 의지가 없다.
시대의 변화에 부합하는 의식의 변화없이 성취적 탐욕의 낮바닦을 우선하는 사람만 있다.
21세기의 주류 통신사회와 문명적 지식과 문화를 수용하는 정체성의 변화가 없다는 것이다.
선거에 패해도 정치판을 양분하는 다수의 야당이다.
한마디로 철학없는 고집스런 울타리의 현실안주이다.
정치의 유연성과 창의력을 울타리 쥔장의 점지에 얶메이는 가식적 울타리에 가두고 있다.
스스로 변할수 없는 풍선논리의 무지이다.
공유하여 공감할수 있는 상수와 변수를 상실한 산수이다.
보이는 것이 전부이다.
세상이 변하여도 정치는 변하지 안는다는 사대부의 고집불통이다.
개항의 시각에서 익숙한 것에 안주하는 세도정치의 고집이다.
정치가 미래 또는 미지를 의식하려는 의지가 없다.
독선에 저항하던 불나방의 교훈이 아리송하다.
새로운 사회질서와 역사의식이 필요하다.
세대와 이성의 갈등으로 재현되고 있는 당쟁과 사대부의 벼슬 까부수고 새집지어야 한다.
3.3.4의 의견수렴에서 중용의 역할이 반드시 필요하다.
통신사회와 중용의 이해에서 극단의 선택을 강요하는 선택적 고립은 위험하다.
비바람 몰아치는 어두운날 어스름한 사지의 관뚜껑이 열리고 죽은자가 웅크린 형상으로 살아나고 있었다.
영혼의 사지에서 벌거벗은 육신의 생명적 증거는 천지개벽을 요구하는 저항의 잉태이다.
종교를 빙자한 특정집단의 정치개입은 사지의 응징이 있을 것이다.
정치가 사이비 종교의 집단성을 이용하는 것은 민주주의 훼손이며 중대한 도전이다.
2023.12.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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