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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죽하면..

박세욱. 2023. 12. 16. 11:40

156 오죽하면.
"시방 정치판에서 욕먹으면 바르게 사는 것이다."
오죽하면 그러것어요.
정치판에 민주주의와 국운의 대의는 없고 계파와 권세에 줄서는 낮바닦 뿐이다.
솔직히 일부 빼놓고는 밥그릇이다.
대의 민주주의의 정체성 회복에는 뺑뺑이가 약이다.
개차반의 멍석말이 이다.
이념적 경계를 무시하는 새로운 정신과 참신한 인물이 필요하다.
좌우논리의 울타리 정치로 뭉그작 거리는 정신줄 개혁이다.
일과 능력에서 울타리의 경계보다 대한민국의 미래이다.

민심의 선택에서 잘못된 것은 하향식 공천이다.
승패적 성취의 희열에 빠져있는 울타리 쥔장의 독선적 지배와 권세이다.
조직의 얼굴마담 대빵의 우리편 변별력에 줄서는 계파와 밥그릇의 입신양명이 지배하는 정치이다.
민주주의의 가면으로 치장한 세도정치이다.
좌우논리의 이분법적 경계에서 색깔을 강요하는 깃발의 고정관념에 메몰된 간판정치이다.
미지의 도전에서 정치개혁의 불신은 울타리의 진영논리에 한정된 창의력의 무지이다.
이참에 구태한 조직정치 발가벗겨 고래구경 시켜야 한다.
정치의 기득권은 양당정치에 기대는 50%의 확률적 신분이다.
존재의 합리성을 충족하는 선택에서 다양성 경쟁이 필요하다.

민주주의 체제와 다양성의 표현에서 의견수렴의 합리적 비율을 존중해야 한다.
다수의 존중에서 소수를 보호하는 존재의 현상적 상호주의이다.
대자연의 질서에서 존재하는 것은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국가의 구성과 톱니바퀴의 원리에서 분야와 전문성의 국정운영이 필요하다.
집단의 이익을 우선하는 우월적 가면의 지배를 위한 정치는 끝내야 한다.
좌우논리의 지배에서 투쟁과 저항 또는 족보만으로 21세기 글로벌 사회의 창의력에 대비할수 없다.
생물학적 진화에서 지식변화를 이해하는 정치가 필요하다.
살기 아니면 죽기식 양극화의 극단에서 중용의 완충은 평화가 전제된 합리적 요구이다.
삶과 평화의 진실은 이념과 진영논리의 색깔론적 선명성이 아니다.

극단적 울타리의 승패적 집착은 대자연의 질서와 관련이 없다.
내것의 점유에서 하잔은 승부의 희열과 성취에 벼슬 세우는 동네굿판에 불과하다.
문명진화에서 문화와 지식의 시대를 대변하는 정치의 합리성 결여이다.
현실정치 운운하며 민생보다 우선하는 적대적 공생의 협잡과 이기적 집단의 사사로움이다.
말씀은 대의 민주주의 이나 정치행위의 치졸한 산수는 창의적 생산성이 전무한 경계적 생존이다.
다양성이 전제된 의견수렴에서 민주적 절차와 민심의 괴리가 있다.
획일적 선택의 강요와 한계에서 진영논리의 이기적 권태이다.
이짝과 저짝의 불가역적 선택에서 존재의 현상적 필연을 훼손하는 다양성의 합리성 결여이다.
존재의 상호주의를 위한 중용의 의지와 선택지 필요이다.

판단과 선택의 디테일에서 양극화의 강요는 지적 분별력과 문화적 함수가 결여되어 있다.
선택의 자유와 충족에서 우월적 권위의 시건방을 앞세우는 정치겸찰도 아니데 예와 아니오를 강제하고 있다.
정체도 모르면서 우리편 이라고 찍고 넘에편 이라고 안찍는다.
쓸만한넘 골라야 하는데 우리편 이면 낮바닦 볼것 없이 평생 묻지마이다.
절차적 민주주의에서 선택의 디테일이 잘못된 것이다.
인격과 능력의 검증이 불확실하다.
솔직하게 포플리즘으로 포장하는 정책이나 정치적 주장에서 어떠한 것이 미지를 충족하는지 모른다.
모르고 한다.
기획과 연출의 낮바닦 행색은 국가가 아니라 진영논리의 인습을 충족하는 색깔이 필요하기 때문에 한다.

모하나 하려면 굿판벌려 천기를 염탐해야 한다.
좌우논리의 고착화된 의식은 의견수렴 대변에서 민심의 올바른 반영이 쉽지안다.
이념적 또는 우리편의 승패에 집착하여 울타리의 색깔에 집착하고 강요한다.
일과 능력과 신념에서 떡잎의 간뎅이 줄이고 단순하게 조직과 색깔에 충성하라는 것이다.

입바른 소리하고 일 잘해봐야 울타리에 줄서는 멍충이들 꼬랑지 붙들기도 힘들다.
국책에서 논리와 토론으로 설래발이 쳐도 대부분 정권교체로 유야무야 된다.
국정의 연속성에서 늬가 한것은 따라하지 안는다는 배반적 정치의 문제이다.
당쟁의 진영논리로 국난에 대비하지 못한 십만 양병설에서 역사의 가르침을 잊었다. 
새만금 파행에서 국정의 이분법적 괴리를 목격하였다.

집행과 감시에서 모두의 책임이다.
절차적 저항과 이유의 부재에서 내것으로 시비하는 진정한 발병이다.
제삼의 정치지형 선택에서 십리도 못가서 발병난다는 정치연륜의 어긋장에 드리는 말씀이다.
일과 능력의 평가에서 민심이 기대하는 비민주적 괴리이며 소외이다.
날고 긴다는 시류의 한량들께서 잘못된 팬덤의 독선적 오강단지에 갇혀 민심을 제데로 대변하지 못한다.
조직정치에서 내편 또는 내것의 편견이며 문화적 합리성 결여이다.
관리와 견제의 의무에서 문지방 수틀리면 이짝저짝 탓하다 판떼기 엎어진다.
좋은것은 내것이고 나쁜것은 늬것이라는 이분법적 갈등의 학습이다.
의견수렴에서 보편성을 충족하는 합리적 결론이 어렵다.

시대의 보편성을 공유하는 문화적 질서의 요구에서 양극화는 논리가 아니라 색깔이다.
문제의 진실이 어디에 있든 너와는 상종할수 없다는 것이다.
통신사회의 문화와 지식공유에서 진보하는 민심의 변화를 의식하지 못한다.
국운의 현상에서 굿판의 정성이 부족한지 용한것이 부족한지 하늘의 점지가 오리무중 이다.
신통방통 하다던 도사의 부실로 참사는 이어지고 독립지사는 소박맞고 삼팔선은 악다구리로 요란하다.
이짝이나 저짝이나 선택의 디테일이 소홀한 이유이다.
울타리에 줄서서 쥔장의 점지에 이마빡 박고 밤낮으로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증거없는 기우적 믿음이다.

괜스레 먹을것 없이 눈도장에 소란스럽기만 하다.
정치생명에 연연하는 공천의 괴리에서 정치적 신념의 부재이다.

민심의 감시적 시각과 정치의 책임에서 무엇인가 해야하기 때문에 분칠한 낮바닦 드미는 것이다.
실용주의에서 목적의 근거가 부족한 가식적 기획의 정치이다.
대립적 견주기에서 선의 순리가 왜곡된 생산성 없는 가치의 부재이다.
바람잡는 나팔수는 노상 하던데로 삼팔선으로 학습된 이분법적 작태가 대부분이다.
선동식 주입만이 민심을 장악하는 정치공학 이라는 확신이다.
사물의 증거적 시류에서 확성기의 존재를 의심하지 안는다.
확성기의 오만은 내가 있어야 울타리가 있고 국가와 민심이 있다고 생각한다.
자가당착에 빠져 팩트없이 떠들다 아니면 말고다.
쌀 한톨을 호박으로 키우는 기술이 전무후무 하다.

국민을 무지하다고 믿는다.
떡잎의 인성과 지적 분별력에서 문화적 학습의 합리성은 함수의 확장이다.
이쪽저쪽을 포함하는 언덕론은 합리성을 확장하는 중용이다.

도전없이 절대권력의 승패에 집착하는 양극화의 피해를 개선할수 없다.
21세기는 통신사회이다.
정치는 시간의 예지가 필요한 직업이다.
역사와 정치의 과거는 교훈으로 기억하면 된다.
국민의당은 정치판 분화에서 인습의 주목도와 손잡은 주체의 쇠외였다.
정치적 승부에서 목적의 이율배반적 요소가 있었다.

정치적 신분과 생명에서 계산서의 오류라는 기우적 믿음이다.
나의 사사로움도 끼어 있었다.
당시 중도의 명분으로 설래발이 치며 철지난 조직정치의 한계와 콩가루의 느낌이 있었다.
정치인이 과거에 연연하여 미래를 예지하지 못하는 것은 부족한 것이다.
정치는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국가 씨스템 관리에서 정치권력의 일방적 지배는 잘못된 국정운영이다.
견제에서 정치지형의 삼분지는 집권의 과반이 어렵다.
작금의 대한민국 현실에서 정치가 변해야 사물과 민생이 안정된다.
정치개혁에서 권력분산은 개헌만 있는 것이 아니다.

선택에서 안되니까 오강단지 깨자는 것이다.
개항과 신학의 역사에서 왜 죽었냐고 하시면 안된다.
민주화의 희생과 불나방의 역사에서 역사의 진보와 도전은 발병나는 것이다.
정치의 연륜에서 일단 칼자루 잡고 보자는 말씀은 이긴넘이 장땡이라는 절대권력의 경험치가 많다.
광장과 촛불에서 장수들의 칼춤과 백팔십석의 기회에도 정치판의 현실은 암담하다.
민주정당의 정체성에서 무지스럽게 발병나 깃발에 줄서라는 잘못된 팬덤의 강요이다.
동의에서 선택은 강요되는 것이 아니며 주장과 토론에서 정치적 신념은 존중되어야 한다.
논리적 여과 없는 맹종에서 정당내 민주주의는 대빵의 분별력이 전부이다.
천기의 대의보다 진영에 치우쳐 계산기 두드리는 야박한 현실정치이다.

오죽하면 욕먹는 발병이 바르다고 한다.
양극화의 병폐에 목메여 쓰다 지치는 양잿물 거품같은 판떼기 오지랖에서 변방의 신념이 필요하다.
끈임없는 주장과 설득으로 질긴넘이 이긴다는 저항적 신념의 필요이다.
끝이 보이는 이판사판에서 생명으로 선택하는 황혼역 오지랖이다.
선택지 확장에서 획일적 사고를 강요하는 사대부의 오강단지가 개입할 상황은 아니다.
정치개혁의 입바른 소리를 책임지라는 것이다.
진화의 논리에서 지식과 문화의 확장적 현상을 이해하라는 것이다.
승패적 정치의 극단성을 배제하는 경계의 완화에서 합리적 합의체를 지향하는 공유의 문화이다.
법치의 규범에서 시대와 사회가 요구하는 문화적 분별력과 인륜이다.

21세기의 민주적 투쟁은 이념적 진영과 우리편의 편견에 저항하는 개항적 열린사고가 필요하다. 
기본권에서 누구나 신념의 자유가 있다.
우리편은 따지지도 안는 공천의 괴리에서 정치적 운신의 선택은 별개의 문제이다.
나팔수 처럼 여기저기 가져다 붙이는 것은 가볍다.
일의 흔적은 일꾼의 노력이다.
진영논리의 현상적 집착에서 중용을 이해하는 경계적 속도조절을 이해한다.
시작을 방해하지 말라는 것이다.
2023.12.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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