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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12월 시국.

박세욱. 2023. 12. 12. 19:58

154 2023년12월 시국.

1 사회.
몇칠째 꿈에 시달리고 있다.
수많은 꿈에 비교하여 대체로 악몽이라고 할수 없으나 잠이 부족하다.
주변의 생시나 꿈이나 정치적 시각이 우선하고 있다.
요즘 뉴스는 무섭다.
폭력으로 가족의 참사는 다반사 이고 천륜의 괴리가 뉴스의 대부분이다.
존속살인과 폭행등 지붕밑 인연의 인륜이다.
차별적 인내의 분출도 무차별적 힘의 방어를 주문한다.
상대에 대한 문명과 문화의 존중이 없다.
무조건 들이덴다

폭력의 상황적 조건에서 악순환이다.
원인과 결과에서 불특정 다수의 공격이든 방어이든 폭력적 상황의 확장이다.
무엇인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많다.
경제도 믿을수 없다.
시장의 현실에서 코로나 정국과 비교하는 걱정이 많다.
건설도 내수에서 내년을 걱정하는 말씀을 들었다.
남북문제도 날세운 비방과 선전 뿐이다.
건들면 낮바닦 드밀고 악다구리 하는것이 삼팔선 역사이다.
정치의 이해타산으로 냉전의 역사를 건들어 재미보려는 시도가 문제이다.
 
미래의 생산성에서 없는분들의 오지랖이다.
한반도에서 전쟁나면 한민족의 역사는 부질없는 것이다.
괜히 시끄러워 열심히 사시는 분들 꼭지 상하게 한다.
최고의 지성이라고 겉모습은 번지르 한데 정체성이 모호하다.
경기도청의 지나친 앞색도 대한민국 체제의 문제적 시각이다.
작작하여야 그나마 정도의 이해가 있는 것이다.
수사로 애 써봐야 정치판 이짝이나 저짝이나 아킬레스건이 문제이다.
수사로 조직 옆구리 터지는것 못막는다.
조직 우짜고 하면서 작긋들이 북치고 장고치고 지멋에 겨워 굿한다.

대한민국 정당정치의 문제가 많다.
국정과 역사가 우월적 자기당착에 빠져있다.
덕망있는 스님의 분사는 참뜻이 있기 마련이다.
행여 속세의 시류가 바람처럼 스며드는 것은 아닌지 세상이 많이 흔들린다는 생각이다.
속세의 인연에서 불가의 참뜻이 필요하다.
부처의 가르침 자비와 인연이 속세에 이르는 것이다.
울타리 정치의 내것과 거리가 있다.
탐욕과 성취적 인습에서 출가의 인연은 달라야 한다.
천기는 굿판에 훈수하지 안는다.

세계의 전쟁도 피의 살육으로 역사를 만드는데 주저함이 없다.
늬변 내편의 경계뿐이다.
약육강식의 생존이다.
문명과 문화의 지식은 허울이다.
존재하지 안는 평화를 들먹이며 죽인다.
내것의 울타리 사수에서 선지자의 가르침 피와 생명의 지식이 없다.
민생은 절멸의 사지에서 신의 재림을 기다린다.
재수없으면 죽는다.
팔레스티나는 운명의 시대이다.

예속인지 공존인지 땅 안에 살라는지 밖에 살라는지 문화와 인연은 우찌하라는 것인지 마냥 죽인다.
선택받은 민족의 우월적 지배이다.
역사는 기억한다.
세계사에서 팔레스타인은 소외되었다.
인간의 탄생과 지식은 백지에서 시작한다.
진화의 시간에서 생태계의 결론은 유전적 학습능력의 차이 뿐이다.
세상만사는 백지에 무었을 쓰느냐의 문제이다.
탄생은 문명과 문화의 연속성에서 백지이다.
현재의 물질문명이 인류진화의 최선인지 안이면 미지의 무지에 끌려가는 학습의 연속성 인지 알수없다.
 
진화된 문명의 시간에 살면서 미지가 불길하다.
가진자와 없는자의 차별에서 자아의 부족이다.
문제를 의식하면서 그럴수 밖에 없는 자아의 절멸적 시류가 피곤하다.
누가 만들었는가?
형이상학의 증거적 주장인가 사과를 선택한 인간의 운명인가?
물질과 자본시류의 지배는 모두가 정신으로 행복할수 없다.
우라질 생각으로 백지에서 다시쓸수 있다면 좋을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이백년 이면 생태계는 회복된다.
물론 처지의 판단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일방적 사고의 번민은 아니다.
성취적 인습에서 차별적 시류를 고려하고 내것의 충족을 감안한 비율적 사고이다.
힘없고 가난한 정신주의자의 내것은 작다.
인습의 지배에 있는 물질시류의 차별적 시각과 증오의 두려움이 무섭다.
지배에서 지성의 인내는 한계가 있다.
역사라는데 할말은 없다.

2 정치.(제삼지대)
새로운 정치지형 요구는 양당제의 선택적 협소이다.
제삼지대는 좌우논리의 극단성을 완화하는 독립된 정체성이다.
승패적 정치를 개선하는 중용의 정치지형이다.
대한민국 정치에서 삼분이상을 차지하는 중요한 정치적 요구이다.

세월따라 계절따라 왔다가는 손님이 아니다.
의견수렴에서 양당제의 이분법적 논리에 울며겨자먹기로 끌려가는 중도의 선택지가 필요하다.

선택에서 확대되는 중도의 요구를 수용할수 있는 정치적 대변의 필요이다.
현싯점의 여론과 의견수렴 추이에서 중도의 저변은 진보나 보수의 영역을 넘어서는 경우가 많다.
3.3.4와 삼분에서 정치적 선택지의 필요이다.
 
민주주의의 근간은 다수의 존중에서 소수의 포용이다.
최대다수가 될수있는 국민의 선태지가 없다는 것이다.
민주주의 체제에서 다수원칙의 절차를 망각한 정치이다.
의견수렴에서 최대다수의 선택지를 마련하지 안는 것은 정치의 직무유기이다.
2.3등이 1등을 분할하여 지배하는 형국이다.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 것은 민주주의 체제의 파괴이다.
의견수렴에서 최대다수의 의지는 민주적 절차와 순리로 보호되어야 한다.
다수의 원칙에서 중도의 확장과 대변은 정치권이 지형으로 수용해야 하는 의무이다.
종용과 제삼지대이다.
 
정치개혁은 국민의 요구이다.
정치의 의무에서 국민의 요구는 수용되어야 한다.
확장되고 있는 중도의 대변이다.
좌우논리에서 완충적 역할의 필요와 선택이다.
이분법적 진영논리의 승패주의에서 중용의 합리적 합의체를 요구하는 것이다. 
국민께서 승패적 정치의 비효율적 심판을 요구하는 실용주의이다.
이분법적 울타리 정치의 패악을 개선하는 것이다.
개인과 신분이 아니라 민주적 절차와 순리이다.
양당제의 좌우논리나 밥그릇과 신분문제의 갈등으로 인식되어서는 안된다.
 
양당제의 피해를 개선하는 뚜렸한 정체성의 정치지형 요구이다.
중용의 실용주의는 이념적 정치를 요구하지 안는다.
좌우논리의 관성이나 기존정당의 이해타산으로 치부하는 신분적 도피의 시각은 매우 잘못된 것이다.
새로운 정치를 요구하는 중도적 민심을 소홀히 하는 무지이다.
정치적 갈등이나 소외의 피난처 라는 주장은 중도적 요구를 매도하는 것이다.
좌우논리에 집착하는 울타리 정치의 밥그릇 주장이다.
수틀리고 꼴아지 나면 한쪽발 담그고 땡깡부리는 지형이 아니다.
정치 기득권의 피난처나 거취를 저울질 하는 갈등에서 대칭의 수단이 아니라는 것이다.
새로운 정치지형 시도에서 중용의 정체성 동의 없이 수용할수 없다.

국민께서 엄연하게 요구하는 독립된 정체성이다.
기존정치의 분할이 아니라 국민이 요구하는 중용의 정치를 대변하라는 것이다.
문제의 근본적 인식과 변화없이 현재의 정치지형을 분할한다고 달라질것이 없다.
의견수렴에서 지속적으로 드러난 다수에 대해 절차적 순리를 마련하라는 것이다. 
확장되고 있는 중도적 민심을 수용하라는 것이다.
정치적 변화에서 인물 또는 몇명이 민심보다 우선할수 없다.
기존정치의 사사로움으로 접근하시면 안된다는 것이다.
신분적 이해타산의 정치판 분할이 아니라 민심을 대변하는 새로운 정치이다.
이분법적 경계에서 합리적 합의의 완충적 역할이다.

정치에서 계보의 역사는 연속성의 형평으로 존중되어야 한다.
한계에서 새로운 요구를 수용하는 인적자원의 저변이 필요하다.
새로운 인제의 광범위한 참여이다.
중도적 민심을 지키고 구하는 방법이다.
국민적 요구의 수용이다.
민생과 민심을 올바로 이해하는 새로운 사고의 정치이다.
정치가 의견수렴에서 드러난 다수를 대변하는 문제이다.
민주주의의 체제를 주장하는 정치판의 의무이다.
다수의 민심을 대변하는 선택지의 충족이다.


정치의 중도적 역할을 요구하는 시각은 기득권을 우선하는 이분법적 주장에 주의해야 한다. 
냉전적 시각의 고집은 내것을 우선하는 습관적 무지의 자기당착 이다.
중도의 정체성 요구하고 지켜야 한다.
선택에서 지킬것은 지키시라는 것이다.
기득권의 구태와 승패적 정치의 고집으로 고추가루 뿌리는 분들과 인연을 신중하시라는 것이다.
표의 등가성에서 사표의 문제만 있는 것이 아니다.
표의 가치에서 비율적 선택의 강요이다.
좌우논리에 강요되는 중용의 비효율적 선택이다.
중도의 선택지 부재에서 좌우논리에 흡수되는 의지와 표현의 가치이다. 

중용의 의지에서 정치참여의 조건적 부실이다.
중용의 의지를 확인하고 대변하는 것은 이념적 사고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정치의 고정관념이 되어버린 좌우논리와 울타리 정치의 구태를 개선하는 것이다.
무소불위 절대권력의 폐해를 민심우선으로 개선하는 것이다.
기존정치의 이해타산을 우선하는 누구누구의 이합집산으로 대사를 소홀히 해서는 안된다.
목적의 분명한 태도로 시작하여야 민심의 동의를 구할수 있다.
우찌되었든 중용의 요구는 다수로 존재하는 것이고 정치에서 정의와 진실은 표현되어야 한다.
의지의 예속은 자유가 아니다.

2023.12.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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