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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죄.

박세욱. 2023. 11. 8. 15:52

146 원죄.
가자지구의 참혹함이 살육전으로 정치의 목적에 집착한다.
인륜의 처절함에도 언론의 이분법적 태도는 여전하다.
시온주의의 침략과 전쟁은 2차대전 후 국제질서의 책임이 있다.
팔레스타인의 문제가 아니다.
21세기 국제질서에서 팔레스타인의 비극이 방치되고 있다는 불균형적 참담함이다.
무었보다 원죄의 복수에서 전쟁을 당연시 하는 역사이다.
도시는 부서지고 희생자가 일만이 넘었다고 한다.
대부분 어린이와 여성이다.
정치적 명분의 가시적 조건이나 당사자의 대화는 없다.

주검으로 존재의 교훈을 얻어야 한다.
땅과 민족적 지배와 예속의 관계이다.
팔레스티나에 내것의 온전한 평화는 없다.
죽은자의 대부분은 무었을 위한 희생인지 알지 못한다.
인류의 경계 민족주의로 설명할수 없는 처참한 파괴와 무차별 희생이다.
죽은자의 무덤에서 산자의 민족주의 이다.
성지의 가르침은 잊혀지고 훼손되었다.
이웃의 죽음으로 삶과 평화를 지켜야 하는 비극이다.
수백만명을 난민으로 전락시킨 국제질서의 허울에서 민족과 문화와 땅의 경계이다.

2차대전후 팔레스타인 110만명이 이스라엘 건국으로 2천년 동안 살아온 땅에서 쫓겨났다.
당시 70만명의 난민과 1.5만명의 희생자가 발생하였다.
비극 희생에 책임이 없다.
어떠한 역사관으로 이해해야 하는지 한반도 역사와 무관하지 안다.
문화와 지식을 공유하는 글로벌 사회에서 가자지구의 참상은 탐욕이다.
문명으로 비교할때 75년전 보다 더하다.
하마스 이후에서 평화유지군과 사우디군에 이어 이스라엘군의 무기한 주둔이라고 한다.
무었이 답인지 칼들고 설치는 힘센넘이 장땡이다.
국제질서는 우리편의 허울이다.
 
경계의 갈등을 지키고자 나서는 자의 의지와 상관없이 파괴되는 민생 즉 평화의 주류이다.
하마스 괴멸을 팔레스타인의 죽음으로 해결할수 없다.
하마스가 무었을 지키려고 하였는지 작금의 비극이 필요하였는지 방법의 교훈이 있어야 한다.
정치로 인륜과 민생 희생시키지 말라는 것이다.
공존의 부재에서 소외된 민족의 처참함에 저항하지 말라고 할수도 없다.
경쟁의 시류에서 없어 보이면 시험에 빠져야 한다.
쉬워 보이면 동물적 유희의 우월적 충족을 시험한다.
철저한 소외에서 표현을 우찌해야 하는지 막연함이 안타깝다.
파괴와 생명의 처절함으로 비극을 피해 떠밀려 떠나라는 무자비한 논리이다.

21세기의 국제질서는 아니다.
종교와 문화와 문명의 진보로 이루어진 평화가 무었인지 알수없다.
평화는 지배의 전유물로 전쟁만이 내것을 위한 수단이 되었다.
죽은자의 비극은 과정의 필연적 결과이다.
당연한 원죄의 역사이며 악의 확장이다.
민족주의의 경계는 뺏기고 뺏앗는 전쟁의 역사이다.
지배와 피지배의 승패적 문화이다.
인류의 진화는 약육강식의 한계에 있다.
동물적 진화의 육식적 지배이다.

진화와 생태계에서 먹히는 자와 먹는자의 관계이다.
먹는자의 승리하고 먹히는 자는 패자인가?
진화는 불편함의 개선이다.
먹히는 자는 잡아 먹혀도 종족번식의 평화를 유지하는지 의문이다.
잡아 먹히는 것은 불편한 경계이다.
숫자로 종족과 평화를 유지한다는 논리는 생태적 의식이다.
인륜은 개별적 존중이다.
인류의 역사를 죽는자와 산자의 비극적 균형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초식동물은 잡아 먹혀도 종족 번식의 생산량을 유지한다.

인간의 시각에서 불행하게도 먹이감으로 후대를 생산한다.
평화의 먹이감이다.
초식동물의 생사적 경계가 불편할것 같다.
같다라고 하는 것은 지배에 의한 죽음이 일상이라는 것이다.
사자도 불편할 것이다.
먹는것이 고기뿐 이라서 그렇다.
초원에 살아있는 동물의 살과 피가 없으면 굶어 죽는다.
인간은 고기도 식물도 먹는데 살자고 동족을 죽인다.
지며는 안되니까 죽인다.

선지자께서 용서하신 원죄가 성지의 주검으로 뚜껑을 열었다.
죽여서 존재감을 명시해야 그제사 문명의 서열이 드러난다.
무리적 습성에서 우수하다는 것이다.
힘 없으면 같은 인간이 아니다.
나에게는 희노애락이 있으나 너에게는 없다.
팔레스티나의 비극은 저항하고 까불면 무자비하게 죽인다는 논리이다.
국제질서 우짜고 서당개 삼년으로 어림도 없는 규정이 버젓하다.
21세기에 선과 악의 분별력이 혼란스럽다.
종교와 문화와 지식의 문명사회에서 죽음의 교훈으로 지배해야 산다는 것이다.

확실하게 잔인해야 복종과 예속의 역사가 이루어 진다는 논리이다.
만민의 평등을 따르는 선의 가치는 아니다.
다양성을 추구하는 민주주의도 아니다.
민족주의이다.
공존은 어불성설 이고 다 내어놓고 근근히 목숨줄 부지하라는 것이다.
원죄의 허물로 신의 재림을 피마르게 외치며 죽어야 하는 민족주의의 비극이다.
이웃이 힘세면 불안하다.
국제질서는 내것과 우리편의 이해관계이다.
공정과 정의 또는 공유와 공존은 우리편의 성립이다.

너 아니면 나의 이분법적 역사에서 넘에편은 무조건 괴뢰이다.
생태계의 질서에서 잡아 먹히는 것은 불편하다.
진화의 논리에서 언젠가 사자와 사슴은 생태적 위치를 바꾸어야 한다.
시간의 문제이다.
인류가 집착하는 힘의 역사는 생태적 진화의 시간으로 이해할수 없다.
문명의 진화는 문화와 지식을 공유하는 속도이다.
75년 전이면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이다.
21세기 통신사회는 불균형한 힘에 대응하는 선의 규합이다.
글로벌 사회에서 독불장군의 없다.

가자지구의 처참함과 병행하여 서안지구의 불행도 참담하다.
팔레스타인 거주지역 보다 정착촌이 더많다.
거주자가 있는 지역에 무단으로 들어와 살면서 저항한다고 총을 쏘아 사람을 죽인다.
식민사관의 역사가 그러한 것이라면 저항은 필연이다.
팔레스티나 문제해결의 최종 결론이 무었인지 알송달송하다.
생명과 거주지를 파괴하고 위협하여 달성하려는 목적이다.
점령지 정착촌 건설은 국제법 위반 이라고 한다.
국제질서 우짜고 떠들어도 힘센넘이 장땡이다.
핵무기 사용하겠다고 했다는데 관련 국제기구는 정치의 시류에 적극적 이시다.

지식의 오만이 창조한 힘의 논리이다.
파괴하고 위협해야 존재감의 말빨이 먹히는 어쩔수 없는 역사이다.
불편한 사람들이 뭉쳐서 글로벌 사회의 의지로 선을 지켜야 한다.
팔레스티나 전쟁으로 세계의 여론이 분열되고 있다.
아랍권의 분노는 정치적 영항력을 확대하고 있다.
인류의 역사가 설정한 힘의 선택과 소외의 비극이다.
반복되는 비극적 전쟁의 역사가 민심의 통제수위를 위협할수 있다.
민심의 관성에서 정치가 정치인의 의지데로 움직이는 세상이 아니다.
선의 주체에서 옭고 그름의 혼돈이다.

말씀의 교훈적 의미는 가진자의 선택이 되었다.
인륜과 정치의 이율배반적 양면성이다.
가르침은 인륜과 민생이나 역사는 언제나 정치를 우선한다.
역사의 먹이감으로 전락한 인륜이다.
패권주의에 흔들리는 민주주의의 분별력이다.
정치가 승자의 전리품에 기대하는 문제이다.
죄와 벌에서 원죄의 기억이 반복되는 지배자의 문화이다.
글로벌 사회의 주류 민주주의에서 민심의 분별력이 세상을 바꾼다.
역사는 평화보다 전쟁과 사고의 기록을 우선한다.
 
평화의 평가를 우선하여야 한다.
선지자께서 원수를 사랑하라 하신것은 원죄의 용서이다.
공유하여 공존을 외치는 것도 반복되는 복수의 원죄를 우려하는 것이다.
지키지 못하여 죽어야 하는 비극의 경계가 많다.
민족과 문화와 땅의 경계와 체제의 이분법적 갈등은 해소되어야 한다.
대화상대가 없는 일방적 참담함 이라서 무어라 말하기 어려운 논리부재가 있다.
국제사회의 분열을 잉태하는 비극은 중단되어야 한다.
국제사회와 이스라엘의 합의가 필요하다.
2023.1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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