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사사로움.
척박한 땅. 본문
144 척박한 땅.
정치가 요구하는 피의 가시적 목적이다.
아브라함의 역사에서 혈연과 민족의 이해와 공존의 절멸이다.
성지의 가르침이 무었을 암시하는지 존재를 상실하였다.
피의 흔적으로 나의 의지를 표현해야 하는 강박적 정치이다.
선을 우선하는 긍정적 문화와 지적사고의 상실이다.
강대강과 극과극의 생존이다.
죽여야 산다는 약육강식의 원시이다.
이것이 팔레스타인인과 유대인의 민족적 요구인지 진실의 이해가 부족하다.
정치적 성취의 무의식 이라는 인륜의 불신이다.
근대사의 폭력적 지배와 소외에서 민족적 비극을 경험한 역사이다.
팔레스티나의 평화에서 지배의 차별적 피해와 공존의 설득은 다른것이다.
무리적 습성의 폭력적 지배와 소외의 악순환이다.
이웃의 공존이 안타깝다.
창조자의 가르침에서 땅은 누구의 것도 아니다.
젖과 꿀의 의미에서 상대적 조건의 작은땅이다.
팔레스티나의 역사에 집착하는 척박한 땅이다.
가르침의 공유에서 민족적 차별를 의식하는 문화와 역사이다.
떠날수 없는 아브라함의 자손이다.
그만 그만한 유전자의 확률이다.
지중해는 유럽과 이슬람 문화의 중심이다.
빙하기 인류는 따뜻하고 비옥한 지중해 연안으로 이동하였다.
민족도 문화도 아닌 생존을 위해 추위와 기아를 떠났다.
주거와 먹거리 찾아 이동한 것이다.
이렇게 모여 문화를 형성한 지형이 지중해 연안의 초승달 모양이라고 한다.
이슬람 국가에서 중요하게 인식하는 초승달 표식의 의미이다.
생존조건의 합류에서 물질의 이기는 늬것과 내것으로 경계를 형성한다.
고립된 진화에서 단절된 문화의 확장과 교류는 차별적 경쟁의 시작이다.
물질과 민족의 문화적 다툼은 관계에서 시작한다.
이웃이다.
관계가 없으면 역사의 공유는 성립하지 안는다.
가까운 것이 원수이다.
원수는 외나무 다리에서 만난다고 하였다.
산업과 사회성 확장에서 필연적 관계이다.
살이 부딧쳐야 피가난다.
자연에 예속된 생존에서 이웃의 생산성 경쟁이다.
교류와 운송의 소통부재에서 무리적 습성의 지배이다.
노동과 문화적 탐욕의 경계이다.
물질공존의 파괴이다.
기원전후 종교의 성립은 물질교류와 생산성 지배에 있었다.
기원후 역사와 종교에서 물질의 이동과 생산성은 중요한 사회문제였다.
선지자의 탄생은 생산성 분배의 가르침이다.
6~7세기 아라비아 반도는 이슬람과 유대교와 그리스도교의 교류와 공존이었다.
구원자 마호메트는 종교와 역사의 공존을 말씀하였다.
(후다이비야 조약)을 참고하시기 바란다.
그리스도의 가르침은 많다.
근대사에서 팔레스티나의 역사는 죽음과 파괴의 비극적 경계이다.
선지자의 성역에서 잔혹한 지배적 문화의 대립이다.
땅과 물질의 생산성을 공유하는 이웃의 파괴적 설정이다.
소통과 교류에서 잘못된 역사의 경계이다.
종교적 관계의 문화와 생산성 경쟁의 차별적 지배이다.
대자연의 질서는 다양성에서 합류의 합의이다.
공존에서 합류적 문화의 이해가 필요하다.
말씀은 민주주의 이나 민족적 차별은 단절된 시대의 원시적 설정이다.
진화의 순리적 결론을 위한 과정에서 내것에 집착하는 극단적 선택이다.
운명적 공간의 허무이다.
정치의 탐욕인지 민족의 생존인지 아리송하다.
애굿은 백성의 피로 역사를 만드는 정치이다.
선지자의 가르침을 잊은 인류의 선택적 운명이다.
진화의 필연적 결론에서 시대를 지나쳐 사라질 시간의 집착이다.
상대적 지배의 성취이다.
극단적 정치의 비극이다.
생존과 문화의 안정에서 백성과 미래의 예지를 상실한 정치적 탐욕의 불신이다.
피의 악순환을 정치의 결론으로 인식하는 성지의 자손이다.
선지자의 현상은 척박한 곳의 탄생과 재림이다.
성지에서 피의 댓가를 요구하는 선의 가면이다.
7세기 3일 동안 메카를 비워준 공존의 이웃이 있었다.
다양성을 인정하는 신앙의 자유이다.
인내의 기다림과 공존을 위한 존중은 천년의 문화를 이루었다.
파괴와 지배가 아니라 선의 전파이다.
뿌리가 같은데 가지를 탓한다.
팔레스티나의 운명적 선택이다.
시대와 문화는 영원하지 안다.
병원과 교회와 난민촌과 피난행렬과 민생의 핍박은 누구의 잘못이 아니라 전쟁의 폭력이다.
하마스의 악행이 전쟁범죄의 전부는 아니다.
비무장 민간인 살상은 전쟁범죄이다.
피의 악순환은 정치의 무의식적 폭력이다.
결론없는 자해이다.
하마스 괴멸을 위한 민간인의 무차별 공격은 범죄이다.
전쟁범죄는 특정하여 적용될수 없다.
어떠한 미래이든 가자지구의 비극과 견주어 보장될수 없다.
처참한 비극에서 모든것이 너의 탓이다.
그리스도가 짊어진 사함의 가르침을 잊었다.
생명의 비극으로 이어지는 민족의 대립과 정치의 악순환이다.
국제사회의 만성적 질환이다.
문제의 근본적 해결없이 비극적 희생이 전제된 정치적 타협은 지친인륜과 시간의 망각이다.
만성적 무의식에서 또다시 똑같은 목적의 갈등이 재현될것이다.
인륜적 관심과 이해에서 국제사회의 괴리이다.
종교인지 민족인지 정치인지 문제의 정의가 없다.
평화의 노력없이 처참하게 일 벌이고 국제사회의 관심과 관계를 요구한다.
역사의 만성적 한계에 고립되어 백성의 생명과 일상이 아수라장이다.
구원자의 가르침 인내와 공존에서 지배력의 긍정은 없다.
그리스도께서 선처한 사함의 죄값이 부활하고 있다.
지배의 차별과 소외의 저항에 집착하는 선입견이다.
고립의 문제해결에서 반복되는 비극으로 이웃의 동의가 불편하다.
강대강과 극과극의 만성적 피로이다.
야만적 정치의 불신이다.
2023.10.1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