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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

박세욱. 2023. 10. 13. 14:43

143 팔레스타인.
이스라엘군의 가자지구 침공과 하마스 제거에서 110만명의 남부지역 피난은 팔레스타인의 선택이다.
팔레스타인의 역사와 문화는 존중되어야 한다.
좁은지역에 피난갈 장소도 없다.
의식주의 보호도 없다.
미래는 불투명하다.
민족과 문화적 말살을 의심한다.
평화는 가진자의 노력이 더하여야 한다.
21세기는 지배와 복종의 시대가 아니다.
110만명의 시한부 탈출은 힘의 지배에 있는 팔레스타인의 현실이다.

폭격의 위협과 파괴된 도로등 인프라에서 불가능한 강요이다.
인륜과 문화의 주체를 상실한 지배력의 비극적 경고이다.
민족적 경계에서 복종의 강요이다.
공존적 개념이 아니다.
물리적 저항의 당위성을 설정하는
지배와 예속이다.
통신과 글로벌 시대의 지적판단이 불가하다.
팔레스타인의 민족적 저항과 상징적 거점의 파괴이다.
시온주의 확장과 소외된 민족의 경시를 의심한다.
땅과 일상의 터전에서 대책없는 생존권 문제이다.

폭력적 선택과 집단주의의 책임에서 평범한 일상과 삶의 파괴이다.
정치적 목적에서 주류의 피해를 조장하는 인륜의 비상식이다.
정치가 민생을 파괴하는 행위는 신의 처벌이 있을 것이다.
시온주의는 특별하지 안다.
선지자는 인간의 운명적 선택에 개입하지 안는다.
인류의 역사와 유전적 진화에서 선지자의 선택은 없다.
가르침은 소외된 약자편에서 평등을 실현한다.

대자연의 질서는 부족함을 체우고 더하는 곳에서 진리를 요구한다.
신의 재림은 어둡고 낮은 곳에서 이루어진다.
 
시대적 문화의 주류는 안정되어 안주하는 삶의 일상이다.
시류에 특별하여 역사의 주체가 될수없다.
물리적 지배력에 우쭐하여 역사의 주류를 착각하는 것이다.
돌연변이적 창의력은 좀더나은 미래 즉 안정과 안주를 위한 노력이다.
역사의 주류는 앞선것이 아니라 평화의 안주이다.
힘의 지배와 파괴적 저항의 역사에서 선이 지배하는 문화적 주체의 의지가 세상을 바꾼다.
잘못된 지배는 평범한 삶과 일상의 실체를 의식하여 보호하지 못한다.

내것을 우선한다.
파괴적 저항만이 세상을 변화할수 있다는 사고는
혁명적 문화의 관성이다.

인류의 역사는 혁명적 파괴와 저항에서 존재의 역설이 필요하다.
평화로움에서 감성적 깊이의 변화이다.
안정과 안주의 평화에서 희노애락의 현상으로 진화의 주류를 형성하는 것이다.
민주주의의 주체 보편성의 이해이다.
대자연의 질서를 수용하는 의견수렴 절차이다.
지식과 문화의 공유이다.
힘의 지배적 선입견으로 시대의 주류를 이루는 평범한 삶과 일상을 파괴해서는 안된다.
황우가 유방에 패한 이유에는 저항의 불가에서 용서와 관용을 파괴한 민심이반이었다.
가진자의 여유에는 포용력이 필요하다.
 
하마스가 팔레스타인 전체를 대변한다는 논리와 증거는 없다.
깡패는 깡패하고 싸운다.
정치의 파괴는 민생의 괴롭힘이 아니라 정치로 해결해야 한다.
특정할수 없다면 다툼의 여지로 질서를 방어해야 한다.
글로벌 사회에서 세계인의 이목을 의식하는 정치가 필요하다.
불특정 다수의 피해를 의식해야 한다. 
하마스 침공의 댓가에서 가자지구의 피해는 작지안다.
가자지구의 정세에서 하마스 지도부의 책임은 시효가 없다.
비극적 참상에서 감성적 절제의 시간을 이해한다.

인류의 역사는 물리적 사고에서 존재의 역설이 필요하다.
희노애락의 감성적 회귀이다.
평화로운 삶과 인륜의 회복이다.
파괴와 지배가 아니라 평화의 주류에서 현상적 학습의 진화이다.

글로벌 문화의 공유이다.
경쟁으로 만연된 경계의 완화이다.
민족주의와 종파주의의 의식전환이다.
르완다와 코소보의 교훈이 있다.
기득권과 정치공학의 비극적 인륜과 민족차별이다.
 
인류역사에서 지배적 선입견의 무서운 결과이다.
선과 악의 분별력에서 죄와 벌의 무지이다.
세대의 순환은 역사의 비극에 소홀하다.
인륜과 전쟁범죄와 관련하여 국제 재판소의 언급이 있다.
하마스 침공의 참상을 규명하는 민주적 절차이다.
가해자의 이유가 필요하다.
은폐하여 저항하는 것은 이해의 저변을 확장하는 표현의 부제이다.
표현의 부제가 폭력으로 발전한다.
힘의 논리와 관계적 인습의 고립에서 자유의 구속이다.

자아의 폭력적 저항이다.
팔레스타인의 미래를 위한 문화와 역사의 진실을 규명할수 있는 절차이다.
국제질서의 문화적 합류이다.
인륜과 종교와 세계사에서 민족적 주체의 대의에 도전할수 있는 기회이다.
정치적 입지가 아니라 민족적 주체의 정체성이다.
인류의 평화와 민족적 대의를 위한 결단이다.
국제질서의 민주적 절차에 참여하여 팔레스타인의 자주성을 글로벌 문화에 알려야 한다.
파괴적 저항
이 아니라 지성과 진실의 투쟁이다.
민주적 절차의 수용이다.

21세기는 글로벌 통신사회이다
문화를 공유하는 세계인의 지성을 시험해 보시라는 것이다.
변화의 창의력은 돌연변이적 드리밀기 이다.
총칼로 시대의 진실을 밝힐수 없다.

역사는 드러나는것 보다 삶과 일상에 묻혀있는 야사에 진실이 있다.
민생에서 체험적 학습으로 이루어지는 현상의 실체이다.
고립을 자초할 필요가 없는 글로벌 문화를 공유하는 통신시대이다. 
문화적 주체의 진실로 세계사에 도전하는 것이 평화를 이룰수 있는 방법이다.
스스로의 집착이 아니라 글로벌 문화의 공유이다.

인륜과 정의의 지적 분별력이다.
평화를 파괴하는 폭력적 문제제기는 잘못된 것이다.
옳고 그름으로 판단하는 통신사회를 기억하시라는 것이다.
어떠한 경우에도 정치의 폭력과 물리적 시류에 저항할수 없는 인륜을 해쳐서는 안된다.

21세기는 선의 가르침을 공유하는 공존의 시대이다.
2013.10.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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