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사사로움.
젖과 꿀의 땅. 본문
142 젖과 꿀의 땅.
모두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다.
참상이 딱하다.
처절하여 말할수 없다.
보도되는 하마스 침공 희생자의 인륜이 처참하여 무어라 표현하기 어렵다.
극단주의의 경계에서 민족적 증오로 죽이고 죽어야 하는 참상이다.
기원전 부터 일만년을 이웃으로 살면서 죽이고 죽어야 하는 역사가 참담하다.
인류의 비극은 역사를 공유하는 이웃에서 발생한다.
인류는 원래 하나이다.
민족이란 단어가 문화적 경계를 형성한다.
내것으로 족하지 못하는 지배와 차별적 침략이 문제이다.
생산성의 순리에서 넘에것 커보이는 탐욕이다.
지배해야 직성이 풀리는 동물적 공격성이다.
평화와 민생을 도외시 하는 정치의 극단성 문제이다.
보도에 의하면 축제현장과 농촌지역에 침투하여 무차별 증오의 학살이다.
민간인 이다.
무었을 어떻게 설득해야 하는지 풍전등화의 이백수십만 가자지구 주민들의 생사가 고통스럽다.
이스라엘 희생자의 소식이 처참하여 인륜을 말하기 딱하다.
시간을 멈추고 사건을 원래로 돌려놓을수 있으면 좋겠다.
아이와 어린이의 무차별 희생과 납치는 변명할수 없다.
팔레스티나의 근대사에서 가해자와 피해자의 구별이 모호하다.
정치는 누구나 의식하는 만인의 전유물이 아니다.
인륜의 평범한 일상은 코딱지 만한 땅에서 나와 가족에 의지하는 삶이다.
민생의 평화는 정치에 집착하지 안는다.
처마끝 햇살 걸리면 소키우고 논밭갈아 해질녘 서산노을에 고은손 찾아 구들에 군불지피는 정성이다.
정치의 지배적 집착이 파괴적 경계를 만든다.
지배와 증오에 집착하는 극단주의자들의 성취이다.
21세기 글로벌 지식과 문화를 공유하는 시대에 극단적 민족주의 또는 종파주의이다.
과정에서 무고한 백성들의 생명과 일상이 파괴되고 있다.
불가항력적 인륜의 사지에서 인연의 절박한 감성이 처절하다.
아이와 어린이가 민족의 경계에 기여하고 상대적 증오의 가해자 일수 없다.
무었을 위한 파괴인지 끝이 보이지 안는 증오이다.
민족적 경계의 사지에서 애꿋은 백성들 목숨만 위태롭다.
예초 지구의 자원은 인류공영의 가치이다.
이천년 지식과 문화의 탄생에서 선지자의 가르침 나눔은 사라졌다.
선지자(구원자)가 탄생한 성지에서 증오와 파괴가 난무한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피의 처절함으로 생명을 망각하고 있다.
무었을 위한 행위인지 위대함의 모방이라면 잘못된 것이다.
민족과 문화의 고립에서 무력의 지배(군대)에 저항하는 것이라면 안타까운 일이나 팔레스타인의 문제적 의지이다.
무차별적 민간인 살상은 충격이다.
세계대전후 역사와 문화적 피해자의 인격으로 이해될수 없다.
삼십만 군대와 탱크가 가자지구을 포위하고 있다.
참상에서 이집트의 시나이 반도 탈출도 불가하다.
전기공급이 차단되고 식수와 식량이 절박하다.
끝임없는 포격과 공습으로 도시는 폐허로 변하고 있다.
양측에서 이천오백 이상의 생명이 희생되었다.
부상자도 일만에 이른다.
신생아와 어린이 부상자가 많은 병원에 전기가 없다.
좁은 땅에 물러날 여유없이 궁지에 몰리는 형국이다.
이백수십만 생명이 위태롭다.
인도적 지원을 위한 통로가 필요하다.
인질은 무조건 석방되어야 한다.
민족적 또는 정치적 문제와 관련없는 평범한 사람들이다.
일만년 이상의 이웃에서 또는 진화의 혈연에서 증오의 선택은 멈추어야 한다.
참상으로 저질러진 치유의 시간이 인륜적 이해의 불편함으로 안타깝다.
인류의 역사가 아직도 죽이고 죽어야 하는 지배와 증오의 시간에 있다.
21세기 문화에서 무었을 근거로 가자지구의 참상을 이해해야 하는지 막연하다.
인륜을 말살하고 민생을 파괴하는 가시적 참상으로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려는 위정자의 잘못이다.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침공은 신중해야 한다.
가자지구의 참상은 국제질서 이든 지역정치 이든 정치의 범주에서 끝내야 한다.
적대적 공생의 정치 공학적 오해가 있다.
인륜의 처참함으로 정치적 목적을 달성할수 없다.
분노의 증오를 또다른 희생의 처절함으로 해결할수 없다.
하마스가 저지른 증오의 참상은 변명될수 없다.
평화에서 방법론의 문제이다.
좁은 땅과 민족적 문제의 설득에서 세계의 이목이 소홀했던 것이다.
힘의 지배로 문화적 증오를 억압할수 없다.
하마스 침공의 참상이 잔인하여 평화를 말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또다른 참상을 보고만 있을수 없다.
가자지구의 문제에서 세계인의 관심이 필요하다.
증오의 반복에서 생사의 궁지에 몰리는 생명과 평범한 일상은 보호되어야 한다.
정치와 지배에 의한 근대사의 인륜적 박해이다.
처절한 참상의 처벌은 필요하나 정치에 국한되어야 한다.
이스라엘 국민의 비통한 분노와 가자지구의 일상은 병행되어야 한다.
진화에서 고립된 문화의 경계와 21세기 통신사회의 교류를 이해해야 한다.
글로벌 문화의 공유에서 민족주의 문제는 개선되어야 한다.
공존적 개념의 필요이다.
지배와 파괴의 역사에서 피해자와 가해자의 화해이다.
탈무드에서 가진자는 베풀수 있어도 가난한 자는 베풀수 없다고 하였다.
행위의 운신에서 여유의 인내가 필요하다.
이스라엘은 공격할수 있으나 팔레스타인은 방어할수 없다.
말하기 어려운 안타까움이 있으나 가자지구의 참상은 인륜적 인내가 필요하다.
죄와 벌의 갈등으로 인륜이 절박한 생존문제를 해결할수 없다.
국제사회의 자제와 평화적 관심이 필요하다.
처참한 안타까움은 통신과 국제사회의 노력으로 치유되어야 한다.
상대적 증오가 아니라 세계인를 의식하는 정치가 필요하다.
선의 문화와 세계인의 관심으로 처참한 참상의 인내와 관용을 기대한다.
인질은 조속히 석방되어야 한다.
2023.10.1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