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사사로움.
최고의 지성. 본문
141 최고의 지성.
예멘난민에서 리비아 홍수까지 이슬람에 소홀하지 안았다.
선을 지향하는 종교의 보편적 시각을 유지하려 애썻다.
최고의 지성이 민주주의 제도와 권력의 기득권에 있다면 안타까운 것이다.
국제질서와 물질권력의 시류에 예속되는 지성이다.
21세기 글로벌 지식과 문화의 공유에서 탐욕적 정치공학의 산수로 지성을 지배할수 없다.
인류공영에서 파괴적 현상을 염려하는 지성은 사사로운 권력의 절대주의를 지향하지 안았을 것이다.
상의 후보와 추천에서 최소한 후보의 알권리는 보장되어야 한다.
추천된 신분의 자유는 침해될수 없다.
후보의 신분이 자유를 상실했다면 시대를 대표하는 최고지성이 아니다.
최고의 칭호와 절대신분으로 포장된 상의 권위주의는 권력이다.
자유와 의지의 진실이 아니라 권력의 이기주의와 자본과 시장경제의 시류를 인정하는 지식이다.
지붕밑 인연의 관계도 자신없는 지식으로 세상의 이치를 판단하는 국수적 영역이다.
선의 주체에서 물질과 권력의 시류를 피하지 못하고 있다는 의혹이다.
최고의 지성에서 선택의 관점은 자유로울수 없다.
절대신분을 빙자한 자기도취의 권위주의는 권력이다.
지성의 가면이다.
주체의 모호함에서 후기의 실상이 있다.
심사과정에서 발표이전 알만한 계체는 알고 있는듯 하다.
대체로 국가를 운영하는 권력집단이다.
근자에 버마군부 쿠데타에 저항하는 민주주의 운동이 상의 후보로 추천되어다는 보도가 있었다.
군사문화의 억압과 폭력에서 인륜과 자유를 위한 대중문화의 저항이다.
인륜과 평화를 위한 저항에서 문화의 선명함은 지성의 안목이다.
잘못된 권력에 저항하는 것이 문화와 지성의 자유이다.
평화상의 원칙이다.
상의 권위가 지향하는 인류공영에서 최고지성의 선택이다.
국제질서의 방향과 권력과 자본의 시류가 아니라 역사와 지식과 문화의 시대적 이해이다.
무었이든 선지자를 모방하는 자는 반드시 망한다.
한반도 평화에서 지정학적 역사의 교훈은 필요하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신냉전의 국제질서에서 한반도 분단의 이분법적 경계를 우려하는 것이다.
역사의 교훈을 의식하는 방어적 개념이다.
나토의 우크라이나 무기지원 요청은 신냉전의 사선을 사실상 인정하는 것이다.
한반도 평화에 반하며 분단의 고착화이다.
서방과 대륙의 경계에서 선택의 강요는 한반도 비극의 원인이다.
중용의 실용주의 주장은 백성의 안목이다.
신냉전의 패권적 경계를 위한 한반도 분단의 현실적 시각형성 이라는 이해이다.
신냉전의 우려에서 어쩔수 없는 역사적 교훈의 선택이다.
앞으로도 냉전적 교훈의 선택에 주저하지 안을 것이다.
북쪽의 러시아 무기제공에서 같은이유로 반대한다.
그러나 결정에 개입할수 있는 체제적 한계가 있다.
태평양과 대륙의 대립에서 공존의 실용주의를 우선한다.
이짝저짝의 강요된 선택이 아니라 한반도 미래에 필요한 글로벌 사회의 공존이다.
이분법적 국제질서의 논리에서 자주적 선택의 이해를 구하는 것이다.
대한민국은 어떠한 경우에도 민주 공화국의 선택을 지킬것이다.
국민의 의지와 문화의 자유이다.
국민이 지킨다.
글로벌 정치사회경제에서 대부분의 나라가 지향하는 왕래와 교류의 생존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시작으로 형성되는 신냉전의 지정학적 사선에 대비하는 것은 생존적 교훈의 대응이다.
국제사회의 이해가 필요하다.
우리는 태평양이든 대륙이든 공존을 원한다.
한반도가 신냉전의 진영으로 갈라져 파괴적 살상무기 생산지로 휩쓸릴 문제의 대비이다.
한반도의 파괴적 대치에서 공격무기를 통한 간접충돌의 우려이다.
적대적 관성의 확장이다.
앞서 말씀드렸드시 북쪽의 러시아 무기제공을 우려한다.
이것은 우크라이나 전쟁이 제공하는 원인이다.
한반도와 나아가 국제사회의 평화에서 우크라이나 전쟁은 끝내야 한다.
물론 당사국의 이해관계가 있을 것이다.
여기에 더하여 전쟁 지원국의 정치적 입지도 무시할수 없다.
그렇다고 목적과 결과를 상실한 전쟁의 희생을 방치할수 없다.
관련하여 평화를 위한 지성의 주장은 필요하다.
통신사회를 생각해 보자.
패권적 권력과 조직사회의 기득권적 차별을 해소하는 지식과 문화의 대중적 가치이다.
통신사회에서 집합을 이루는 의견수렴은 민주주의의 체제에 부합하는 절차의 확장이다.
민주주의의 다양성을 주장하며 패권적 집단주의를 조장하는 정치의 개선이다.
민주적 절차를 왜곡하는 조직정치에서 파생되는 권위주의 개선이다.
특별한 계층이 아니라 비슷함의 공존이다.
집단주의가 아니라 독립된 지성으로 판단하는 옳고 그름의 선택이다.
통신을 통한 의식공유에서 선과 분배적 개념의 확장이다.
통신사회는 산업과 지식으로 예견되지 안은 암시적 미지의 발현이다.
대자연의 질서에 의한 진화의 순리적 현상으로 지속적 발전이 필요하다.
통신사회의 주류는 다양성에서 선의 합의를 전제하는 논리의 성립이다.
진실이 왜곡된 편중된 권력이나 집단 이기주의는 비판의 대상이 된다.
선과 대중적 가치를 외면할수 없다는 것이다.
오프라인에서 민주주의 정치가 추구하는 보편적 가치이다.
통신사회에서 권위주의나 집단주의는 주류를 형성할수 없다.
내것과 우리편의 집단주의 정치를 해소하는 문화이다.
글로벌 지식과 문화의 공유에서 옳고 그름으로 접근하면 누구나 주류가 된다.
냉전적 국제질서의 패권적 논리로 지배할수 없다.
정치와 사회의 새로운 개념이다.
21세기의 문화이며 미래사회의 주류가 될것이다.
아직 통신사회는 완성되지 안았다.
새로운 질서에서 초기 주류의 이미지는 중요하다.
할일은 많고 육신은 세월을 걱정한다.
어떠한 경우든 통신사회의 정체성은 연속되어야 한다.
개인적 욕심이라면 팔자개벽으로 불가능한 인연의 미래와 의식주 해결이다.
더하여 대한민국 양극화 정치를 해소하는 충격적 조건의 흔들기 이다.
제삼지대의 영향력 확대이다.
의도와 계산에서 순전히 내안의 집착이다.
세상사 가볍지 안은 눈과 귀가 있다.
직관이라면 스치는 바람결에 천군만마와 서슬퍼런 장검에서 핏빛계절을 암시한다.
최고의 지성이 철없는 권세의 벼슬에 속수무책이다.
모질은 세상사 뒤집어 쓴 집세기 밟고간다.
가르침을 따르는 순진한 중생의 안타까운 삶이다.
권세의 탐욕과 울타리 저울질에 행여 지나간것 다시올까 두려웠다.
21세기 통신사회에서 사대부의 권세가 하늘 무서운줄 모른다.
철없는 오지랖에 세상의 이목이 두렵다.
2023.10.8일.
'나의 글방.' 카테고리의 다른 글
| 팔레스타인. (0) | 2023.10.13 |
|---|---|
| 젖과 꿀의 땅. (0) | 2023.10.13 |
| 자연과 종교와 산업. (0) | 2023.09.28 |
| 좌파적 집단주의. (0) | 2023.09.25 |
| 이념과 사법 리스크의 고집. (0) | 2023.09.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