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사사로움.

자연과 종교와 산업. 본문

나의 글방.

자연과 종교와 산업.

박세욱. 2023. 9. 28. 09:01

140 자연과 종교와 산업.
자연에 예속된 삶은 종교적 지배의 문화이다.
대자연과 신앙의 보편적 인식이다.
시대의 문화적 사고를 지배하는 정통종교에 국한되지 안는 이단 또는 미신이라는 토속신앙이다.
이러한 믿음의 의식과 의지가 지식과 문화를 형성하였다.
대계는 사람과 사람의 관계가 아니라 자연현상에서 숭배의 불가항력적 논리가 성립되었다.
논리라 함은 문자의 나열이 아니라 자아적 바탕이다.
진화의 시간과 시대를 가늠할수 있는 지식과 문화의 발현이다.
자연현상과 종교적 지식의 결합이다.
자연과 종교의 시대에 미지는 어두운곳으로 일상 가까이에 있었다.

어둠이 내리면 지천이 귀신이었다.
귀신의 내적의미를 미지로 이해할수 있었던 시대이다.
일상에서 사물의 공유와 견주어 미지는 생태계 대부분이었다.

천정과 다락에도 체험적 미지가 있었다.
지식의 시대적 한계에서 존재론적 이해이다.
삶의 영역은 자연의 일부였다.
문명진화는 학습의 범위를 벗어날수 없다.
현상의 한계이다.
산업사회 이전의 삶은 자연 생태계에 예속된 학습이었다.

산업혁명은 문명의 학습에서 중대한 사건이다.
자연에서 인위적 사물의 시대로 전환이다.
인류의 창조적 시대이다.
산업과 과학이다.
과학에 의한 생태적 미지의 발현이다.
전기와 가로등은 어두운 미지에서 빛에 의한 사물의 윤곽으로 현상을 규명하였다.
자연과 결합되었던 종교의 절대가치는 과학의 발현과 산업의 실용적 현상으로 희석되었다.

사물의 실용성과 생태계의 과학적 근거이다.
의식주의 이기는 산업과 노동생산성으로 기능성을 계량하였다.

인류의 삶이 자연과 종교에서 산업의 현상으로 전환되었다.
산업사회이다.
농경사회는 산업과 도시화로 시대적 주류의 위치를 상실하였다.
생산성을 위한 노동력 필요에서 도시화는 인구증가이다.
농경사회의 단순한 질서가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 의해 강화되었다.
공익적 제도와 규범적 질서의 필요이다.
자연과 종교의 개별적 관념에서 관계적 사회질서의 시대이다.
인류의 정신세계는 산업사회와 도시화의 시대에 지배되었다.
자연과 종교는 더이상 안주와 신비의 존재가 될수없다.

과학과 산업사회에서 자연과 종교의 물리적 미지는 수없이 발현되었다.
원자의 성질과 분자와 원자와 쿼크의 물질탐구이다.
핵의 파괴력에서 행융합의 시대를 예지하고 있다.
과학과 산업사회에서 인류의 상상은 미지에 머물러 있지 안는다.
더이상 어두운 미지의 신비는 존재하지 안는다.

성왕당과 격리된 상여집의 귀신이 사라졌다.
귀신의 시대를 과학의 발현으로 규명한 인류는 자연과 선지자의 예언에 오만해 졌다.
신비했던 상상의 미지를 창조하여 현상할수 있다는 자만이다.
과학과 산업이 사회와 정신을 지배하였다.

물질의 진실과 실용적 기능의 사실주의 이다.
직관과 경험의 감각적 사실주의는 인류의 지식으로 미지를 시험했다고 생각한다.
형이상학적 사고가 인류의 오만를 키웠다는 해석이다.
물질문명의 실체와 해석에서 진화의 시대적 필연이다.
자연과 종교의 학습에서 물질의 사실적 탐구에 의해 발현된 과학이다.
감각적 학습의 탐구는 생명과 물질의 결합에서 생존을 위한 진화이다.
생명의 투쟁과 자원탐욕과 우수 유전자 경쟁의 조건이 지식의 원초이다.
생명유지를 위한 진화가 지식과 문화의 발전이다.
물질의 현상에서 논리적 탐구이다.

생존에서 사물의 실체를 이해하려는 노력이다.
과학과 현상의 이기를 우선하는 실학이다.
산업의 실용성은 진보적 욕구이다.
삶과 정신세계는 종교와 자연에서 산업사회로 전환되었다.
현재는 산업과 도시와 제도와 사법적 질서의 시대이다
정신세계는 산업과 경쟁과 탐욕과 성취적 우월감에 예속된 사회의 지배이다.
산업사회의 지배이다.
일상의 모든것이 산업과 관련된 학습으로 이루어진다.
AI 헨폰 티비 자동차 인스턴트 가축 기계적 생산성 시대이다.

자연과 종교는 진화의 학습에서 주류를 상실하였다.
부정할수 없는 산업의 절대가치 시대이다.
삶과 정신이 물질과 자본과 생산성 경쟁에서 벗어날수 없는 사회이다.
종교 역시 산업사회의 시대를 인정한다.
커다란 교회당과 불상은 물질적 과시의 흔적이다.
사람들의 관심에서 경쟁심리의 시선이다.
관계적 사회에서 크고 번듯하고 있는듯 해야 살람들이 모인다.
모세의 예언은 하늘의 계시였다.
하나님은 우주선 타고 오시지 안았다.

초기불교는 감각적 또는 가시적 형태의 숭배가 아니라 정신이었다.
달마는 화장실에서 수도하였다고 한다.
선지자의 가르침은 물질적 가치가 아니다.
물질만능주의에
하늘과 땅과 천당과 지옥과 선지자의 가르침이 사라졌다.
종교의 선입견에서 가르침의 원초 선과 인륜의 존재가 불확실 하다.
무상의 가르침 보다 산업과 경쟁의 성취적 인습이 우선한다.
오로지 선과 인륜과 사회보호를 주장하는 종교의 집단주의 빼고 그렇다.

추수철 비온다는 뉴스에 "아이고! 하나님 우리집 추수 끝나면 내려주십시요."하신다.
다른집은 죽쓰던 말든 상관없다.

일상에서 종교의 정신적 가르침을 의식할수 있을지 자신이 없다.
온통 산업이고 구조물 이고 타의적 경쟁관계 이다.

인류의 정신세계는 산업사회에 세뇌되었다.
내면의 자아는 산업과 물질과 탐욕과 경쟁의 성취적 욕망으로 지배되었다.
체제의 주류가 산업이다.
산업의 지배이다.
산업이 선지자의 위치에 있다.

지연과 종교에 예속된 자아적 삶의 상실이다.
인류의 본질이 산업사회의 정신세계가 아니라는 저항적 의심이 자란다.

경쟁과 빈부격차의 기회상실과 부의 세습과 사유화의 지나친 치부와 비교 우위의 우월감이다.
끝없는 욕망의 한계에서 마약의 포기이다.
무디어지는 희노애락의 감성적 결핍이다.

인연의 책임과 인습의 경쟁적 조건에 억압되어 찾아갈수 없어 사라지는 추억의 미련이다.
산업사회에 세뇌된 정신적 억압과 지배이다.
관계적 또는 사회적 인습의 지배이다.
과학과 물질이기의 풍요로움에서 경쟁과 차별의 상대적 빈곤에 허덕인다.

까다로워진 산업사회의 상대적 생존조건이다.
목숨줄 부지가 아니라 지고는 못산다.

자연과 결합된 종교의 가르침이 인류의 정신세계를 지배할수 없는 한계에 이르렀다.
산업사회가 대자연의 질서를 지배할수 없다.
물질의 앞다툼에서 산업사회의 시간을 돌아볼수 있다면 인류는 지쳐가고 있다.
진화의 이해에서 문명의 학습은 시대적 한계를 넘지 못한다.
아직은 아닐지라도 인류와 산업의 관계에서 학습적 한계가 있을 것이다.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 전환의 이해이다.
인류의 정신세계에서 다음창은 무었일까 상상하는 진화의 관성적 문제이다.
또다른 창조적 발현이 필요하다.
인류는 다음시대의 미지를 모른다.

현상으로 존재하지 안아 학습할수 없기 때문이다.
앞선문명이든 선지자의 재림이든 또다른 세계를 위한 돌연변이적 창조가 필요하다.
AI와 공유경제 이든 기계적 생산성 이든 산업사회에서 학습의 변화이다.
물질문명의 또다른 차원이 될지 자연과 종교의 미련이 될지 모른다.
산업사회의 학습에서 예지할수 있는 것은 화석연료의 자연파괴와 노동력의 생존이다.
기후 온난화의 생태계 파괴는 가믐과 홍수와 산불의 피해를 증가시키고 있다.
기후위기에서 산업의 글로벌 경쟁은 국경의 경계에서 내것으로 무지하다.
문제를 알면서도 정치적 경제적 이유로 해결되지 못하는 산업경쟁의 재앙이다.
자본의 AI와 기계적 생산성 확장은 노동력 상실 우려이다. 

수십년 후의 문제일수 있다.
물질문명의 절대성 집착에서 절대가치를 성찰하는 지식과 문화와 지성의 필요이다.
공존의 시각이다.
노인들로 가득찬 교외로 가는 전철은 노동력을 상실한 미래의 예지이다.
산업과 자연에서 파괴적 현상의 대중적 관심이 필요하다.
인류의 정신세계는 학습에 의해 변화한다.
나의 존재에 벼슬 세워도 선택된 주류적 진화의 대세에 휘쓸리는 초개에 불과하다.
문명은 무한한 미지와 다음창의 시대을 이해해야 한다.
21세기 대부분의 사람들이 현폰에 고개박고 컴퓨터 앞에서 먹고 마신다.

게임산업은 문명의 휴식과 노동력 상실과 과련이 있을것 같다.
반도체와 정보통신의 데이터 산업에서 헨폰과 검퓨터의 일상은 뇌세포의 진화를 예지할수 있다.
대자연의 암시적 질서는 무인가 인류의 미래를 대비하고 있다는 것이다.
결국 학습의 한계에서 현재로 미지를 예지할수 밖에 없다.
내나이 육십중반이다.
나의 기억에는 자연과 종교가 신비했던 기억이 있다.
체험적 학습이다.
현대의 탄생과 젊은이들에게 시멘트와 아스팔트에서 자연과 종교의 체험적 학습이 있는지 궁금하다.
산업사회에서 태어나고 자란 학습의 관념적 우려이다.

자연과 종교적 의미를 상실해 가는 유전자의 시대적 격차에서 선대의 사고이다.
인류는 먼훗날 까지 자연에 예속된 삶을 살아야 한다.
산업사회의 상상과 미래에서 인류의 문명적 한계는 종교적 의지가 필요할것이다.
산업의 지배에서 자연과 종교의 학습이 필요하다.

문명은 탄생이 아니라 학습으로 연속성을 유지한다.
가령 자연과 종교의 학습이 전무하다면 대자연에서 발현한 문명의 원초는 사라진다.

자연과 종교의 자아적 실체는 잊혀진다.
대자연의 질서는 파괴된다.
자연과 산업에서 파괴적 재앙에 대비해야 한다.

문제의 학습이 필요하다.
불가항력적 재앙에 의한 학습단절은 문명단절이다.
특별하지 안으면 생태적 연속성에서 생명은 유지될것이다.
지구 또는 태양계의 소멸정도가 아니라면 말이다.
걱정할 이유는 없다.
생태계가 살아있다면 문명은 어떠한 형태로든 재현될것이다.

존재에서 인류의 절대성은 겸손해야 한다.
산업사회의 물질경쟁으로 파괴되는 자연과 노동의 체험적 학습단절에서 이후의 우려이다.
유행은 돌아온다고 한다.

윤회와 전생의 가르침도 있다.
영생은 물리적 존재가 아니라 생명의 연속성 이다.
산업사회에 지친 인류가 자연과 종교의 나눔으로 돌아오지 못한다는 가르침은 없었다.
안정하여 안주할수 있는 휴식의 필요이다.
자연과 종교의 기억에서 산업사회의 다음창이 재앙의 포맷이냐 안정적 탐구이냐 하는 문제이다.
[기계가 있으면 꾀하는 일이 생기고 꾀하는 일이있으면 꾀하는 마음이 생기고 꾀하는 마음이 가득하면 순수한
마음이 없어지고 순수한 마음이 없이지면 정신과 생명이 안정되지 못하고 정신과 생명이 안정되지 못하면 마침내
진리를 상실한다.]
자연과 종교와 산업사회에서 자아의 자유는 극단적 설정의 배경이 있다.

심리적 만족에서 내면의 수성과 사회적 표현의 외적문제이다.
내적 자아는 스스로 설정한 통재의 한계를 이탈하지 안는다.
지성이다.
수도나 일상을 최소화 하는 내적 삶이다.
반대로 외적성향은 폭력적 표현을 사용한다.
내면의 심적억압을 외적요인에서 찾는다.
대체로 자아는 내적심리라고 생각하나 의외로 외적표현이 상당하다.
폭력적 또는 자학적 사건의 부분적 진실이다.
산업사회의 정신지배를 우려한 은둔의 혁명자가 있다.

산업 또는 사회의 창의성에서 진화의 바탕은 현재이다.
현재는 학습을 통한 발현된 현상의 완성이 된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는 공존한다.
진화에서 학습의 학문적 완성으로 다음시대을 발현할수 있다.
현실에서 안정되어 상주하는 시간이 존재의 주류이다.
산업과 제도와 체제의 완성이다.
이러한 안정의 무료함이나 학습의 포화상태에서 미지를 발현한다.

인류 또는 문명진화의 시각에서 현상된 학습의 완성이 주류이며 안정된 영역이라는 것이다.
문명의 학습된 안정으로 미지를 발현할수 있다는 것이다.
 
산업사회의 경쟁적 삶에서 개개인의 디테일은 시간의 치열함으로 표현할수 있다.
통신사회의 글로벌 지식과 문화의 공유는 독립적 사고의 시대이다.
경쟁과 성취에서 개인의 능력을 중시한다.
개별적 의식이 대세를 이룬다.
사회의 경쟁적 개념이 체제에서 개인의 성취로 변화하였다.
문제는 소홀할수 있는 공익적 개념이다.
공익적 개념의 확장이 공존이 된다.
인류와 자연과 산업은 문명의 휴식이 필요하다.
공존의 개념이다.

지구의 수명은 수십억년 남았다.

산업사회의 절대성에 정신줄 빼앗긴 인류의 미래를 걱정들 하시라는 것이다.
2023.9.28일.






 

'나의 글방.'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젖과 꿀의 땅.  (0) 2023.10.13
최고의 지성.  (0) 2023.10.11
좌파적 집단주의.  (0) 2023.09.25
이념과 사법 리스크의 고집.  (0) 2023.09.20
뼈다귀 없는 정치.  (0) 2023.09.02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