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사사로움.
뼈다귀 없는 정치. 본문
135 뼈다귀 없는 정치.
속알맹이 없는 정치이다.
잘드셔야 힘내서 단식하신다.
독립운동 하면서 고스톱 치면 공산당 이냐?
공산당하고 고스톱은 철학적 시대적 이념이 다르다고요?
순수를 고집하면 자손이 귀하다.
역사는 엎어지고 뒤집어 지며 오만 잡것이 섞여서 애 배는 것이다.
통신사회에 새칠로 형광등 켜신 분들이 어두운 골목 헤메고 계신다.
하시는 일마다 손발드신 분들이 분위기 파악 못하고 단식으로 먹고 살겠다고 하신다.
민족사관 왜곡은 매우 잘못된 정치이다.
멀쩡한 계절에 주체없이 덩달아 춤추는 단식으로 협치하고 계신다.
이짝이나 저짝이나 굿판의 지성이 부족한지 처녀귀신 속것 훔쳐보다 들키신 분들이다.
자신만만 했던 문지방 내어주고 할일 없으신 분들이다.
역사와 문화에 무지하여 새칠로 섞어보는 이념적 실험도 정도가 있다.
색깔론으로 민족사관 갈라치다 헛다리 만지작 거리는 표정관리가 가관이다.
작금에 벌어지는 사건들은 이념의 승패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사대부의 고집이다.
정치가 민생의 실용을 외면하고 좌우논리의 울타리만 부여잡고 있다.
민생의 분별력을 상실한 공자왈 맹자왈이다.
신념의 절개와 말과 낮바닦 뿐인 권모술수에 능한사람은 다르다.
진보정당의 계보는 민심을 우선하는 국가관과 정치적 신념의 진심이다.
팬덤이 아니라 민심을 따르는 인격과 책임감이다.
사건의 유불리에 따라 거취를 결정하는 정치는 기회주의이다.
목적을 위한 권력의 수단에서 철지난 선동과 권모술수의 선입견은 지적시대의 착오이다.
민심은 알맹이 없이 굿판벌이는 낮바닦 정치의 진실을 안다.
실용적 가치를 상실한 깊이없는 정치이다.
양극화의 습성으로 깃발꽂으면 반은 우리편 이라는 판떼기는 잘못된 것이다.
공천권력으로 줄세우는 사당화는 가당치 안은 정치이다.
민주주의 체제에서 잘못된 팬덤에 의지하는 인물과 계파중심의 정당운영은 깃발의 독선이다.
공천권 횡포에 연연하는 정치생명이다.
민의를 대변하는 입법부 구성은 국민의 의지를 우선해야 한다.
인물론의 팬덤에 의지하는 당내경선에 전적으로 맏겨지는 공천권은 계파정치의 지배이다.
선택과 경쟁의 정당성에서 정당내 민주주의 실종이다.
나는 진보정당의 권리당원이나 당비를 직접 납부한 기억이 없다.
입당절차도 석연치 안다.
삼신할미에 현혹되어 진보정당에 입당을 시도한 적이 있다.
절차문제로 온라인 입당이 불가하였다.
재차 우편으로 지역도당에 입당을 시도하였으나 거절되었다.
직접방문 하라는 말씀을 들은 기억이 있다.
정치적 선택에서 그만큼의 노력은 불필요하였다.
이후 단체활동에서 집행부의 독선으로 진행된 조직의 정치화를 경험하였다.
오만단체에서 정치적 선택을 강요하는 매우 잘못된 위선이었다.
정당선택에서 책임없는 입당의 실체이다.
추진체의 인격이 급진진보 정치인과 가까웠다.
단체의 정당가입은 쉬웠다.
입당을 모집하는 위치에서 나는 선택하지 안았다.
의미없이 선택하는 위선이라고 생각하였다.
주체의 정치적 입지를 위한 조직과 지위의 압력이라는 제맛의 부정이었다.
그런데 어느날 홍두께 처럼 입당되었다는 연락이 왔다.
온라인 입당에 관해서 최민희 방통위 예비후보의 자화자찬으로 알수있었다.
온라인 신청의 소급적용 이었다.
무지하여 예초에 작성한 가입원서를 삭제하지 안은 것이다.
당원으로 구성되는 정당운영의 실체가 또랑에서 물고기 잡기다.
잡힌넘의 얄팍한 자화자찬의 기우에서 탐구적 이유의 정당한 논리가 있었다.
당비가 어느분 마음데로 자동결제 되고있다.
한꺼풀 벗겨지는 정치판의 신기이다.
당내경선에서 선거에 참여했으니 할말은 없다.
권리당원제도는 당내 개별적 조직이 관리하는 머릿수의 왜곡이 있다.
일장일단에서 대의원 제도나 대동소이 하다.
어차피 지역단위의 개별조직으로 관리된다.
공천권으로 당내여론을 좌지우지 할수있다는 논리이다.
당대표에 목숨거는 이유일 것이다.
입법부 구성에서 후보경선은 지역구 유권자의 판단이 필요하다.
상향식이 아니라면 일반국민의 참여를 상당부분 고려해야 한다.
타당의 방해공작은 후보지정 유무에 영향을 끼치는 정도가 아니다.
지역의 당내경선을 양당이 동일한 시간에 하는 국가가 있다.
중복선택 방지이다.
지식과 문화의 보편성을 확장하는 통신시대이다.
비민주적 정당운영에서 도도한 역사의 강물은 없다.
시방도 사법 리스크의 또랑에서 허욱적 거리는 간판이다.
케비넛 정치에서 빈자리의 위기를 의식하는 것은 계파정치를 믿지 못하기 때문이다.
빈약한 인물론의 설레발이는 빈자리는 금방 체워진다는 증거이다.
사법 리스크의 거취에서 승패적 운명에 집착하는 정치공학의 계산이다.
대권에 도전하는 인물론의 도덕적 덕목은 필수이다.
진보정당의 수단과 방법에서 낮바닦으로 하는 치열한 공정과 정의는 허울이다.
다수의 사건으로 구겨지는 사법 리스크가 있다.
국정운영 책임에서 눈가리고 아웅할수 없는 도덕적 국민정서이다.
케비넷 정치에 구속되어 연명하는 의지의 구태는 정의가 아니다.
신분에 당당하지 못하면 무었도 할수없다.
드밀든지 발가 벗든지 죽든지 살든지 진실의 당당함이 필요하다.
의혹과 변명의 설 만으로 민심의 믿음을 구하기 어렵다.
내년 4월 정치적 선택 이전에 결말을 지어야 한다.
또랑 치우고 새칠로 하시라는 것이다.
선당후사 이다.
공천권 놓치면 대권가도가 불안하다는 자기중심의 사고는 같이 죽자는 것이다.
선별적 사정 케비넷 정치도 국민의 시선을 피할수 없다.
케비넷으로 허물을 따지자면 세상사 오만가지이다.
늬가 죽어야 내가사는 정치판에서 오고 가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초저녁 굴뚝 연기에 노을을 걱정하실 이유가 없다.
정치적 성취에서 한솥밥 인연이 무서운 것이다.
영웅호걸의 성취에 눈돌아간 정치판 빈자리는 금방 체워진다.
정치적 기로에서 진실에 따라 행하면 된다.
사법 리스크에서 같이 죽지안을려면 울타리 방어에 예속되라는 주문은 협박이다.
일신의 위기에서 울타리 보호를 기대하는 것은 제잘난 사대부의 한계가 있다.
매사 자기정치에 목숨거는 자는 전체를 책임질수 없다.
허물의 고집으로 같이 죽자면 어쩔수 없다.
경계에서 한발짝 내디디면 선택할수 있는 길은 많다.
때만되면 간판들고 나타나 설래발이 치는 표리부동한 정치도 끝내야 한다.
울타리의 간판에 의지하는 관성적 숟가락 정치이다.
급진진보로 중용을 거스르는 정치는 애초에 설정한 탐구의 주체가 아니다.
예초가 있으니 정사의 길을 애써 돌아갈 이유가 없다.
급진진보의 계획된 치열함에 중도진보의 정체성이 예속될 이유가 없다.
정당의 주체는 나와 팬덤의 주구가 아니라 정체성의 동의를 충족하는 선당후사이다.
절대자를 꿈꾸는 자는 정치하면 안된다.
국가운영 책임에서 도덕적 완성은 반드시 필요하다.
꽁무니 실타래 같은 사건에서 부딧쳐 해결하지 못하는 이유는 평가된다.
역사와 국운을 책임지는 대권은 쉬운길이 아니다.
정치개혁에서 제삼지대도 기존정당의 개혁도 필요하다.
정치는 정체성의 합리적 규합이 필요한 생물이다.
다당제에서 선택의 경계는 유동적이다.
조직의 권세를 우선하는 사랑방 정치의 개혁이다.
중용은 논리의 합리성이며 인물에 의지하는 정치가 아니다.
울타리가 아니라 실용적 방향의 문제이다.
이념으로 갈라진 정치의 개혁이다.
진보정당의 계보와 철학은 중요하다.
국가와 민심과 정당의 정체성을 우선하는 진심이 확인되지 안으면 선택할수 없다.
개딸이든 수박이든 양극화의 고착에서 중구난방으로 할수있는 것이 없다.
수신제가 치국평천하이다.
진보정당의 정체성을 확실하게 하라는 것이다.
정치개혁의 시각이다.
삶이든 선택이든 새길은 얼마든지 있다.
새판 짜는데 구태여 말도많고 탈도많은 색깔을 입힐 이유는 없다.
새로운 질서는 중용의 실용주의 이다.
시대적 선택이다.
제삼지대가 하나로 협력하면 좋을 것이다.
2023.9.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