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사사로움.
이념적 종파주의. 본문
134. 이념적 종파주의.
대한민국은 민주주의 국가이다.
사회주의나 철지난 공산주의 이론을 공부하고 때론 주장할수 있다.
패망한 조국을 위해 가족을 희생하고 식민 제국주의 군대와 전투에서 승리한 장군을 욕보이고 있다.
전쟁나면 도망가기 바뿐 사대부의 작태이다.
21세기에 또다시 한반도 백성의 주권을 염려해야 한다.
무었이 그리하는지 역사는 안다.
국운을 연명하던 식민시대 암울한 역사에서 청산리와 봉오동 전투의 자긍심이 있었다.
제국주의 군대가 민초들로 구성된 독립군에 패한 전투이다
미국인들이 자랑하는 민병대의 역사이다.
해방이전 역사에서 이념적 논쟁은 민초들의 경계없는 세계사적 지식의 이론이었다.
임시정부나 독립군 활동에서 이념적 경계의 갈등을 소홀히 하였던 시대이다.
김좌진 장군은 이념적 이해가 혼란한 시대의 정치적 이유로 공산주의자에게 암살되었다.
한반도 분단의 비극에서 이념적 경계의 현실은 삼팔선의 비극이다.
남과 북의 경계에서 신탁과 반탁의 국론분열이 시작이었다.
남한 단독정부 구성은 신탁을 반대하는 민족주의의 불행이다.
제주4.3의 봉기는 민족은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논리의 비극이다.
안타까운 것은 자유와 공산진영의 국제질서에서 현명하게 처신하지 못한 역사이다.
홍범도 장군의 흉상문제에서 청산리와 봉오동 전투를 언급하지 안을수 없다.
청산리 전투.
https://m.terms.naver.com/entry.naver?docId=1146636&cid=40942&categoryId=31658
봉오동 전투.
https://namu.wiki/w/%EB%B4%89%EC%98%A4%EB%8F%99%20%EC%A0%84%ED%88%AC
홍범도 장군 흉상과 정율성 공원으로 떠드는 좌우논리는 사리마다 사이로 삐져나온 볼성사나운 덩어리이다.
철지난 이념주의 이다.
21세기 신냉전의 국제질서에서 구한말 종파주의의 혼란을 되돌려 놓고 있다.
이념주의는 낮바닦 정치의 운신을 위한 판떼기의 위선이다.
50%의 확률에 기대여 울타리에 줄서는 기득권의 탐욕이다.
국민과 역사에 백해무익한 이분법적 정치의 패악이다.
당쟁으로 외세에 자유를 구속당한 구한말 망국의 재현이다.
패망의 역사에서 말종적 당쟁의 연속이다.
극단주의 정치는 논리나 행위에서 합리적 접근이 불가능하다.
집단화된 분별력은 자신들이 설정한 목적에서 이탈할수 없기 때문이다.
자신들의 논리를 수정하거나 양보할 생각이 없다.
비판과 반론의 자유에서 이념적 한계의 비타협적 구속이다.
여타의 개혁적 성향을 자신들의 논리에 예속시키려 한다.
민주주의 역사는 합리성이 결여된 치부의 차별에서 저항적 의지의 투쟁적 사고이다.
정당한 분배를 위한 기본권과 자결권의 설정이다.
문제는 이념적 갈등의 정치에서 국가보다 나와 우리편이 우선한다는 것이다.
좌우 진영논리의 승패적 지배이다.
민주주의의 합리성이 결여된 싹쓸이 절대권력의 파괴적 정치판이다.
민주주의 체제를 주장하고 공생하는 것이 이상할 정도이다.
이념적 정치는 다양성에서 답답하게 인색하다.
생태적 질서에 부합하는 논리적 합리성이 없다.
논리와 미래가 아니라 경계적 갈등으로 선택에 안주하려는 것이다.
양극화의 50% 확률이면 괜찬은 승부이다.
국가보다 정치인의 신분과 영달을 우선한다.
국민이 정치를 위해 존재한다고 착각한다.
말과 허세 뿐인 정치개혁이다.
국정에서 민생은 없고 오로지 나와 우리편이다.
이념적 종파주의 이다.
승패적 패권주의 이다.
이념적 정치의 선택에서 승패적 수단은 사회를 집단화 한다.
진영논리의 갈등적 경계이다.
정당의 주류는 극단적 강성론자 이다.
진영정치의 조직논리는 인격을 도구화 한다.
정치적 신념이 아니라 줄세워 충성을 시험하는 획일적 논리의 집단화이다.
인물론적 팬덤에 속수무책의 정치판이다.
국가의 정체성이 좌우논리의 정치에 선후가 없다.
이념적 종파주의의 획일적 주장이 합리적 논리를 예속시키고 있다.
다양성에서 민주주의 체제를 자의적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위임에서 정치가 아니라 사사로운 신분과 권력의 안주이다.
국정의 수단과 방법에서 민생을 우선하는 책임을 상실하였다.
신념을 상실한 장치적 선동과 권모술수가 정치의 주류이다.
합리성이 결여된 이념적 갈등은 승패에 집착하여 투쟁적 사고를 양산한다.
국정운영에서 합의는 없고 적대적 관계의 수단에 집착한다.
정권순환에서 국가의 정체성과 국정의 연속성을 상실하는 이율배반적 현실이다.
야당의 위치에서 공격하던 문제가 집권하면 문제가 없다.
정권순환에서 공수의 주객이 전도되는 내로남불이다.
정치가 목적의 신뢰는 없고 눈가리고 아웅하는 수단뿐이다.
사건과 타협에서 지식과 문화의 진보를 수용하지 못하는 것이다.
여전한 좌파의 선동과 우파의 기회주의이다.
세상이 자기들 것이라는 오판이 백주대낮에 버젓하다.
드러내고 자본과 권력의 우선주의이다
제도의 장악에서 민생은 없고 차별의 저항은 무시되고 있다.
국정운영은 이념적 관성의 갈라치기 이다.
정권의 거취에서 국민화합과 미래는 없다.
말씀은 민주주의이고 다양성이나 이념에 구속되어 타의를 인정하지 못하는 정치판의 생리이다.
지배의 독선을 위해 민심을 갈라치는 것은 통신사회와 지적문화의 무지이다.
민심을 울타리의 고집으로 왜곡하려는 잘못된 정치공학의 선입견이다.
민심의 수용이 아니라 울타리의 색깔로 끌고 가겠다는 매우 잘못된 생태적 결론의 무지이다.
민주주의는 대자연의 합리적 질서를 수용하고 존중하는 체제이다.
한반도 분단의 이념적 문제는 국제질서의 근대사에서 시작하였다.
공산체제는 생산성 문제로 붕괴되어 존재하지 안는다.
남북문제는 민족문제이다.
한반도의 미래가 이념적 체제에 머물러 있을 이유가 없다.
민주화를 이룩한 대한민국 국민은 권위주의 체제를 절대로 용납하지 안는다.
대한민국의 위상으로 남북문제의 주체적 시각을 형성해야 한다.
글로벌 생산성에서 산업의 걱정은 지나친 염려이다.
산업사회가 인륜을 지배하고 민족의 역사와 문화를 우선할수 없다.
흉상은 우파적 이며 공원은 좌파적 논리의 잔해이다.
철지난 이념논쟁은 이분법적 선택의 확률에 집착하는 정치의 노파심이다.
민생보다 좌우논리의 울타리를 우선하는 구태이다.
공산전체주의는 대한민국의 의식에서 사라진 역사이다.
대한민국의 자유와 미래에서 공산주의는 존재할수 없다
반국가주의는 민주주의의 다양성을 부정하는 적대적 설정이다.
오염수 방류문제는 국가의 주체성과 인접국의 위치적 선입견이 있다.
생태적 위기의 문제이다.
한미일 군사협력은 태평양과 대륙의 대립에서 지정학적 역사가 고려되어야 한다.
신냉전의 사선에서 우리의 문제가 아니라 동아시아 정세의 위기가 상존하고 있다.
대륙과 태평양의 경계에서 동아시아 문제에 개입하는 것은 국민의 동의가 필요하다.
치우쳐 개입할 경우 한반도 정세의 위기는 불보듯 하다.
러시아와 우크라 전쟁에서 수십만의 젊은이가 희생되고 있다.
의미없는 진영논리의 희생이다.
대한민국 국방에서 경계의 설정이 궁금하다.
강감찬 장군은 귀주에서 을지문덕 장군은 살수에서 권율장군은 행주산성에서 싸웠다.
이순신 장군은 남해에서 양만춘 장군은 안시성에서 싸웠다.
홍범도 장군은 청산리와 봉오동에서 조국을 위해 싸웠다.
민족과 국경을 위해 싸웠다.
태평양과 대륙의 경계에서 신냉전이 현실화 되고있다.
대한민국 국방의 방어체계에서 국민의 알권리가 있다.
휴전선으로 경계를 한계하여 설정하는 것은 국방의 책무가 아니다.
동아시아 정세에 대비해야 한다.
국방은 국민의 생명과 재산과 국토와 역사와 문화를 지켜야 한다.
사사로움으로 국민을 위태롭게 하는 것은 국방의 책무가 아니다.
일련의 사건에서 좌우논리와 관련된 선과 악의 경계가 설정되고 있다는 암시적 예지를 부정할수 없다.
국방은 국토를 침범하는 누구도 응징해야 한다.
군인정신으로 정치하면 안된다.
국제정세의 변화에서 주체의 정의가 필요한 싯점이다.
정치적 탐욕으로 민족의 의지을 해치는 행위는 시대의 오판이 될것이다.
2023.8.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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