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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용의 규합.

박세욱. 2023. 7. 14. 04:06

118. 중용의 규합.
귄력에 따라 굿하는 행태가 대한민국 정치의 현실이다.
정치나 경제나 권력의 말뚝에 줄서는 오합지졸의 생존이다.
길은 국가의 백년대계 이다.
양평쪽 교통난을 해소하는 고속도로 이다.
이성이 없다.
우빨과 좌빨의 정치이다.
대한민국이 극단주의자들 세상이다.
잘된일 이든 못된일 이든 정치적 계산이 우선한다.
논리와 진실보다 선동하여 울타리의 경계를 이용하려는 구태한 정치이다.

십만 양병설의 어처구니 없는 역사가 도지고 있다. 
진실은 손에 쥐면 녹아 없어지는 어름처림 사라지는 것이다.
정치와 국정의 진실이 오리무중이다.

정권이 바뀔때 마다 고질병으로 발현하는 권력주변의 오얏나무와 갓끈의 교훈이다.
알아서 바닦 챙기는 하수인들의 국난이다.
줄서서 이권이나 챙기려는 얄팍한 전문성의 기회주의 이다.

때되면 오얏나무와 갓끈의 정서를 무찌르려는 낮바닦 정치의 오지랖 이다.
권력의 입신양명은 진실이든 협잡이든 상관하지 안는다.

민심의 판단과 논리의 이성적 고려없이 내것을 우선하여 드리밀고 계산하는 정치공학 이다.

좌우논리의 선입견이 우선하는 울타리 정치의 폐쇄적 사고이다.
대한민국 정치는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국민의 정치가 아니다.
권력에 줄서는 사대부의 사랑방 정치이다.
국민은 안중에 없다.
정치와 국정운영에서 대한민국 정체성이 모호하다.
위기나 문제에 대응하는 국가의 총체적 매뉴얼이 없다는 것이다.
좌우논리의 패권이 우선한다.
국민과 미래에 상관없이 넘에 떡이 커보이고 매사가 배아프다.
칼자루 색깔에 따라 분단의 비극을 이용하는 흙백논리의 선택이 강요된다.
 
지긋지긋한 이분법적 정서의 정치이다.
입법기관의 국정운영 견제는 케비냇 사정의 눈치가 보인다.
카르텔의 정보는 국민과 정의가 아니라 신분과 정치적 기득권을 위해 필요한 연장이다.
철지난 정권털어 수집하는 먼지의 법률적 효과로 정치한다.
이짝이나 저짝이나 좋은것이 좋다는 짝짝궁의 협치는 없다.
물어뜯고 늘어지는 협오적 외형의 극단성으로 울타리의 경계를 자극한다.
민심의 심판은 안중에도 없는 우리편의 절대성에 집착하여 모아니면 도이다.
후진적 정치형태이다.
21세기 문화와 지성에서 국민의 의지를 대변하는 정치가 없다.
 
국민은 막무가내는 정치현실의 위기를 경험과 직관으로 걱정하고 있다.
정치의 헌구헌 오지랖이 말살적 당쟁의 역사라는 불행한 인식이다.
민주주의 체제의 삼권분립에서 정권은 임기와 평가가 있다.
선택의 획일성으로 국가의 미래를 책임질수 없다.
국가의 대표권 위임에서 일의 성과는 국민이 판단한다.
이웃이 중요한 홍익인간정신의 역사와 문화가 이념의 갈등으로 대립과 반목의 고난에 있다.
인류의 역사는 전쟁에 익숙한 지배력의 다툼이다.
한반도의 사관과 분단의 비극은 냉전적 국제질서의 지정학적 이유이다.
한반도 국제정세와 미래에서 분단이라는 지정학적 피해의 비극적 역사가 고려되어야 한다.

냉전의 국제질서에서 견제의 합리성과 경쟁과 생존의 조건적 공유는 이성적 판단이 필요하다.
아니면 말고식 국제질서는 없다.
분단의 지정학적 경계에서 이분법적 사관에 구속된 한반도 교두보의 예속적 갈등이 있다.
태평양과 대륙의 정세에서 정권에 따라 정치적 선택의 경계를 형성하는 주체성의 혼란이다.
지정학적 이유에서 국경의 관계는 중요한 역사이다.
말씀은 K 문화이고 원전이고 방산이다.
글로벌 사회에서 대한민국의 문화적 위상이 시끌벅적 하다.
문지방 관리에 조신하지 못하면서 솟을대문 색칠에 열중하고 계신다.
정권이나 입법이나 선택되어다고 장땡이 아니다.

이짝이나 저짝이나 사랑체 관리 잘못하시면 시정잡배들 출입으로 문지방이 위태롭다.
양극화의 울타리에 줄서서 낮바닦 처신으로 한밑천 잡으려는 사고는 근본의 화근이 된다.
정치의 행태가 운명적 죽을넘과 점쟁이의 낙점이 필요한 살넘의 경계이다.
손바닦 침이나 동전의 앞뒷면 가치를 신봉하여 줄 잘서는 기술이 정치이고 민생이다.
종교와 철학과 정의와 공존은 낮바닦 분칠의 가면에 불과하다.
어찌하다 세상이 헷갈려 종잡을수 없는 지경에 이르고 있다.
"지금 고치지 안으면 멀지안아 나라가 망할것이다."
선생의 말씀이 새삼스럽다.
국민과 국가를 우선하는 신념의 정치가 아쉽다.

사람에게 충성하지 안는다는 말씀의 진실은 알아서 챙기는 낮바닦 정치의 반론이다.
말씀의 정의가 실현되어야 한다.
K 문화의 주목에도 불구하고 한반도를 국제정세의 교두보로 착각하는 우빨과 좌빨정치에 국운이 위태롭다.
사물의 이해가 편협하고 협소하여 중용이 부족한 이유이다.
글로벌 사회에서 솟을대문 치장도 중요하나 민생은 무었보다 우선하는 부뚜막 안정이다.
대한민국 정치의 질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이분법적 관성의 양극화 해소이다.
울타리의 획일적 판단을 개선하는 제삼의 정치세력이 필요하다.
지치고 식상한 양극화의 구태를 옭고 그름의 큰그릇으로 담아내는 정치개혁이다.


방법에서 전체적 규합과 희생의 감내를 평가하여야 한다.
정치적 시각확장의 시도는 이해한다.
군불의 시각확장에서 목적의 대의를 확실하게 하라는 것이다.

양당정치의 시각적 형태에 익숙한 선택의 믿음이 필요하다.
확실하게 양극화의 폐단을 개선할수 있는 비젼을 제시해야 한다.
정국을 주도할수 있는 큰그림의 그릇을 보여주어야 민심이 동의한다.
말뚝박고 울타리 치려는 사대부의 족보가 아니라 들불처럼 일어나는 시대의 대의이다.
제삼세력의 대의와 주장에서 하나의 목적으로 민심의 동의를 구해야 한다.

정치개혁의 진의에서 여기저기 개인의 정치적 계산으로 드리밀 대사가 아니라는 것이다.

개인기에 앞서 하나의 그릇에 담을수 있는 주장의 대의이다.
군불의 시도와 주장에서 개혁적 논리의 함수가 필요하다.
대한민국 정치의 모순은 논리의 성립과 대화의 순리가 없다는 것이다.
이것의 병폐를 해소하자는 것이 중재를 위한 중간지형의 제삼세력 이다.
군불의 시간적 사고에서 대의를 우선하는 대화의 상호작용이 필요하다.
민심은 정치적 계산의 국수적 선입견을 의심한다.
중도의 대의는 국수적 의견제시와 울타리의 경계적 논리가 아니라 극단적 정치를 개선하는 것이다.
큰그릇의 정치적 역량을 보여주어야 민심의 동의를 얻을수 있다.
과감하고 확실하며 희생의 전체적 각오이다.

희생과 존재에서 정치의 비젼을 크게 제시하여야 한다.
민심은 양당정치의 불확실한 시각을 충족할수 있는 비젼과 행동을 요구한다.
좌우논리를 우선하는 절대성의 편협한 판단을 견재할수 있는 현실정치의 충분한 균형적 믿음이다.
새로운 시도에서 민심이 요구하는 대한민국의 미래와 정치적 영량의 확인이다.
대사에서 주체나 기득권의 동상이몽은 미래가 없다.
전체적으로 시작하고 옭고 그름으로 판단하면 된다.
이것이 민심이 요구하는 새로운 정치형태 이다.
제삼세력이 요구하는 정치개혁 의지는 부분에서 전체적으로 확장되어야 한다.

확장성은 민심이 기대하고 요구하는 주체적 의지의 역량이다.

민심의 삼분의 일을 충족하는 주문이다.
군소정당 난립으로 제삼세력의 대의를 성립시킬수 없다.
각각으로는 사대부의 사랑방과 가문의 영광이다.
전체적 의지를 충족하는 비젼이 없으면 민심의 동의는 어렵다
중용의 미래는 시작이 어려우나 새로운 기회이다.
의지를 규합하는 믿음이 필요하다.
2023.7.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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