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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지의 발현.

박세욱. 2023. 6. 18. 21:46

113. 미지의 발현.
인류의 지식진화는 이제 시작이다.
지식의 오만은 우물안 만물의 영장이다.
우주는 넓다.
지동설을 주장한 갈릴레이는 문화의 시대적 절대성에 의해 학문적 고초를 격어야 했다.
지동설은 진리이며 우주와 미지의 실체적 시작이다.
사백여년 전 갈릴레이의 지동설은 문화와 학문적 바탕에서 미지의 발현이다.
당시 천문학의 전문성은 우주가 움직인다는 설정에서 역설적 반론의 여지가 있었다.

창조적 지식은 미지의 두려움이 있다.
진리의 발현에서 문화적 수용의 차별적 문제이다.

선택적 지식과 미지의 발현에서 문화와 지배력의 수용적 문제이다.
선지자의 존재에 의지하는 문화와 학문적 지식의 두려움 이다.
지배의 절대성에 종속된 문화적 사고와 지적 분별력의 한계이다.
문명의 미래는 시대적 지식과 문화의 연속성을 충족하는 미지의 발현이다.

이천년 전 현대의 과학문명을 설명할수 없었다.
이해와 실현의 문화적 바탕이 없었기 때문이다.

진화는 시간의 법칙으로 연속성의 과정을 생략할수 없다.
새로운 물리적 법칙이나 사회질서 선택에서 역사와 경험에 의한 논리적 바탕이 전제된다.

현존하는 인류의 문화적 가치를 뒤돌아 보아야 한다.

뉴턴의 중력의 법칙에서 사과는 일상에서 수없이 벌어지는 현상이다.
일상의 이해에서 사과가 떨어진 것은 중력의 법칙이라고 말할수 있다.
논리적 이해가 아니다.
생태적 질서에서 무거운 것은 떨어진다는 현상적 이해이다.
일상의 체험적 수용이다.

만유인력은 미지의 발현이라고 이해할수 없는 일상적 현상의 논리적 발견이다.
생명이든 과학이든 문화이든 존재의 진리는 문화적 수용의 차이가 있다.

익숙한 것의 논리적 발견과 미지의 발원에서 문화와 지식의 경직된 절대성 문제이다.
수많은 물리적 법칙과 인륜적 학문은 이미 일상이며 주변의 현상에서 발견된다.

학문은 대부분 특별한 것이 아니라 일상에서 공유되는 사물의 논리적 정리이다.
어렵게 접근하면 귀한 것이고 쉽게 접근하면 지천에 널려있다.
학문과 미지는 차이가 있다.
미지는 상상밖의 현상으로 존재한다.
지식과 문화의 과거가 전제되어 있지 안다.
미지의 발현은 시대적 지식과 문화의 연속성을 충족하는 새로운 현상이다.
일상으로 설명할수 없는 예언적 실체의 증거이다.
문화에 의한 지식과 제도는 영원할수 없다.
진화의 필연에서 미지의 무한함은 조건의 충족으로 끊임없이 발현하기 때문이다.


존재하는 것은 시간의 충족으로 변한다는 것이다.
인류는 최소한 70억의 독립된 생물학적 사고의 생태계이다.
진화의 합리적 결론에서 지역적 단절의 소통부재에도 생물학적 공유가 이루어 진다.
유전적 본능에 내제된 암시적 질서이다.
21세기는 통신 데이터와 이동의 활동반경 변화의 시대이다.
지역적 단절이 해소되었다.
진화와 시간개념에서 접근의 용이함은 문화와 생물학적 교류의 활성화 이다.
사물의 소통과 공유이다.
통신사회의 지식과 문화의 공유는 사물과 존재의 본질적 이해를 확장한다.

통신과 정보시대는 광범위한 사물의 변화를 공유할수 있다.
정치와 사회에서 포괄적 의견수렴은 민심이 우선하는 민주주의를 성립시키고 있다. 
전제주의의 관성과 권위주의의 일방적 지배를 민심으로 판단할수 있는 질서의 변화이다.
민심이 동의하지 안는 부분적 지식으로 문명의 합리적 진화에 개입할수 없다.
21세기 글로벌 지식과 문화의 공유에서 독선적 지식의 혁명적 변화는 불가능하다. 
물질이든 지식이든 대자연의 질서를 충족하는 합리적 논리의 결론을 막을수 없다는 것이다.
미지의 현상적 발현에서 갈릴레이의 두려움과 문화적 수용의 한계는 사라졌다.
AI와 데이터의 출현은 새로운 생산성을 예지하고 있다.

사물의 공유와 생산성 확장에서 만민의 평등은 현대문명의 갈증이다. 

생산과 분배의 대립에서 질서의 새로운 이해가 요구되는 불확실한 물질문명의 시간이다.
물질문명의 시류는 알고리즘 즉 문화적 절대성의 지배이다.
물질문명의 시대적 역할은 중요한 것이나 무한에서 선택한 인류진화의 과정이다.

물질적 생존에서 생산성의 탐욕은 치부의 한계가 있다.
가진자와 가난한 자의 시류는 다르다.
차별적 시류에서 가진자의 이유와 가난한 자를 위한 배려가 필요하다. 
삶의 직관과 경험에 의하면 익숙한 것의 의식에서 배 부르면 다른생각 한다.
체워도 체워도 곳간은 허전하다.
위만 보고 들이밀다 자빠지고 떨어지기 십상이다.

시간의 지루함에 목메는 삶의 인내는 스스로 성취적 한계를 충족해야 한다. 
물질문명과 경쟁의 문화에서 가진것과 상관없는 자아의 상실이 만족의 허무이다.
문제는 물질시류의 지배에서 생명의 근원적 이해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안는 것의 차이이다.
학문과 미지의 분별력이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안는 것은 별개의 문명이라고 주장하는 학설이 있다.
정신과 물질의 이분법적 주장이다.
직관이나 경험과 변증론의 논리는 시대적 문화의 영역에 있다.
미지 또는 선지자의 존재는 문화와 지식의 직관이나 경험으로 증거할수 없다.

아프리카 밀림에서 원숭이와 생존하다 발견된 14세로 추정되는 소년이 있었다.
등이 굽었고 음식이 아니라 나뭇잎을 먹었다.
인륜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문명과 글씨를 깨우치지 못했다.
소년은 문명에 적응하지 못하고 몇년후 사망하였다.
인류의 직관과 경험은 후천적 지식이다.
문명은 생명의 동행이 아니라 문화와 지식의 체험적 연속성 이다.
생명 즉 신의 영역은 형상과 물리적 지식으로 증명할수 없는 미지의 영역이다.
지구의 생태계에 한정된 인류의 문화와 지식으로 우주를 규명할수 없다.
존재는 수용하는 것이나 선택은 예속되는 것이다.

생명은 무한한 존재이나 문명 또는 육신과 문화는 선택된 것이다.
진화는 멈추지 안는다.
미래는 시대적 지식과 문화가 요구하는 새로운 현상을 수도없이 경험할것이다.
인류의 직관과 경험으로 증거할수 없는 실체적 현상의 출현이다.
인류가 생명으로 선택한 태양계의 진실도 오리무중 이다.
현재로 썬 물리적 법칙이나 역사와 문화의 지식으로 미지의 영역을 단정할수 없다.
선택된 사물의 형태적 결과와 미지의 존재는 다르다.
진화의 이해에서 현재가 최상의 결과이나 미지의 무한함은 언제나 시작이다.
역사와 지식은 시대적 문화의 변화를 수용한다. 

AI와 데이터는 21세기의 시대적 출현이다.
데이터의 합성과 지능적 진화는 미지의 존재를 실체적 진실로 증명하고 있다.
선지자의 예언과 선을 증명하려는 형이상학적 노력은 하나가 되었다.
문명의 진화는 시간과 조건에 의해 무의식의 내면이 끊임없이 발원하는 현상이다. 
진화의 암시적 잠재력은 무의식의 내제이다.
현대문명의 문제는 가시적 절대성에 집착하는 지나친 현상의 확장이다.
물질의 소유와 형태적 성취를 의식하는 경쟁과 차별적 문명의 부정적 시각이다.

만민의 평등에서 생산과 분배의 대립적 경계와 차별이다.
지배와 피지배의 기회차별 이다.

물질은 정신 또는 생명과 별개라는 존재적 착오의 지식이다.
종교와 지성은 무의식에 내제되어 있는 존재의 참에 미련이 많다.
물질시류에서 선을 증명하기 위해 애쓰는 이유이다.
미지의 현상에 대한 본원적 의식의 이해가 필요하다.
인류의 존재는 태초와 진화에서 내제된 생명의 본질적 이유가 있다.
생명으로 존재하는 것은 의식하여 인지하지 못하는 미지와 연결되어 있다.
대자연의 질서이다.
현존하는 인류의 문화는 물질의 절대성에 집착하여 인륜의 참을 절대가치로 의식하지 못한다.
종교와 철학의 논리는 물질적 탐욕으로 가려진 무의식의 본원적 미련이다.

물질문명의 집착에서 생명으로 돌아갈수 있는 처절한 노력이 있다.
지배력과 물질의 차별에서 인륜의 회귀이다.
형태적 물질시류에서 지성의 저항은 생명의 근원을 문화적 의식으로 끌어내는 인륜적 한계의 분노이다.
정신과 물질의 균형에서 물질의 가치를 우선하는 지식의 우려이다.
돈으로 저승(천당)행 기차표를 예매하였던 분별력의 무지가 엇그제 이다.
굶어 죽으면 선지자를 만날수 있다는 목자의 직관과 경험의 비극이 있다.
AI와 데이터의 시대에 벌어지는 만물의 영장 인류의 역사이다.

현상의 번뇌를 버리면 무의식에 도달할수 있을지 물질시류는 빛줄기의 틈세가 없다.
인류는 생명의 참으로 돌아갈수 있을지 지성이 안타까운 것이다.

최악에서 생명의 무의식적 최선이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망가져 넘에집 문지방 넘지 말아라!
물질과 형태에 얽매여 사는것이 그짝이나 이짝이나 도끼의 격렬한 자극이 필요하다.
의식하여 악을 자처하고 고행하며 고립되어 처절하다.
무의식을 찾는 의식의 한계에서 불상을 해체한다.

미지의 실체를 의식하기 위한 기도이다.
AI와 데이터의 합성으로 직관과 경험의 상상밖에 있는 존재의 현상이 발원되고 있다.
선지자의 예언은 시간의 필연에 의한 미지의 현상적 발현이다.
일상에 충실하여 애써 증거할 이유가 없다.

산업과 체제의 혁명적 변화는 지식과 문화의 요구에 의한 조건적 진화이다.
미지의 현상적 발현은 지식과 문화의 경험적 직관으로 의식하지 못하는 선택된 시간의 필연이다.
미지의 존재를 의심하는 지식의 생명적 불확실성이 물질 또는 물리적 현상의 형태적 감각을 요구한다.
물질의 절대성이 정신과 분리된 진화와 문명의 본원적 의미가 될지 미래가 궁금하다.
생명의 미지를 증거하려 애쓰다 AI와 데이터의 새로운 현상에 화들짝 놀라는 지식이다.
미지의 현상적 발현이 선지자의 예언적 증거이다.
지식의 오만에 의한 이데올로기의 이분법적 비극의 역사가 지척이다.
물리적 지식의 진화를 소홀히 할수없으나 미지의 영역을 과학으로 증거할수 없다.
과학적 논리는 진화의 시대적 역할에서 이해할수 있다.

술의 습성은 상한음식의 진화라고 한다.
존재하는 것은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진화의 역사에서 생명으로 생태계와 문화가 성립된다.
생명이 요구하는 생태계의 필요에 의해서 물질의 가치가 정해진다.

물질은 가치의 분별력이 있다.
생명이 사물의 주체라는 것이다.
선지자의 존재는 영원한데 물질시류에 예속된 지식과 목자의 거취가 문제이다.
염라대왕과 지옥불은 꼭 필요한 저승길의 알고리즘 이다.
탄생의 신비는 잊혀지고 죽음에야 비로소 죄값으로 인연과 물질에서 벗어난다

물질과 자본의 관성에서 데이터와 공유경제의 실현은 가능한지 관전의 흥미가 있다.
죽기전에 직관과 경험과 변증론의 지식으로 태양계를 여행하고 싶다. 
물질과 물리적 현상으로 선지자의 미지를 증거하겠다고 하시니 드리는 말씀이다.
나의 취향은 고즈넉한 산사에서 성경과 코란을 읽는 것이다.
2023.6.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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