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사사로움.
공존의 시대 4. 본문
115. 공존의 시대 4.
생명체는 암시적 미지의 미래를 선택할수 있다.
목자는 지구에 만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인간은 윈숭이의 유전적 선택에 개입할수 없다.
종의 생태적 선택에 이종의 개입은 불가능하다.
종의 분화는 대자연의 질서에서 생태계를 공유한다.
생태계와 종의 유전적 분별력은 암시적 질서를 공유한다.
인간과 유인원의 유전적 분별력은 생태적 공존의 시간과 선택의 증거가 있다.
신과 인간의 분별력은 생태적 시간과 선택의 증거가 없다.
신과 인간사이에 생태적 또는 문명적 연속성을 의심하는 공간적 미지가 있다.
생태적 증거에서 생명체의 진화는 필연이다.
생태계의 진화와 종의 분화에서 유전자의 시간적 분별력은 진리이다.
유인원은 손가락을 사용한다.
손가락 진화는 도구사용의 전조이다.
손가락으로 털을 골라주는 원숭이의 행위는 지식과 감성의 진화이다.
손가락을 사용하는 지구 생태계의 생명체는 인간과 유인원이다.
인간과 유인원 사이에 지적 생명체는 없다.
인간과 유인원의 생태적 공유와 진화의 시간은 하나의 공간으로 생각할수 있다.
종의 분화에서 생명체의 유전적 분별력은 시간을 충족하는 순서의 순리가 있다는 것이다.
유인원이 멸종하지 안는다면 선택에 따라 인류의 문명에 도달할것이다.
병행하여 인류의 진화는 현대문명으로 학습할수 없는 미지에 있을 것이다.
문명의 진화에서 상상을 초월하는 미지의 발현으로 미래를 예지할수 있다.
유인원이 인류의 문명에 도달하였을 때 생태계의 공유를 기억할수 있을지 의문이다.
신과 인간사이의 증거할수 없는 공간적 미지의 의심이다.
진화의 시간과 공간으로 이해하면 생태계와 문명은 유전적 선택의 연속성이 있다.
생태적 순서의 교훈에서 인류가 증거할수 없는 미지의 문명을 상상하는 것이다.
종의 분화에서 유전적 분별력은 끊임없이 진화하는 생명과 물질과 시간과 공간의 데이터이다.
지식진화는 태초에서 네발과 두발과 손가락과 불과 문자와 통신의 시간적 순리이다.
지구 생태계에서 문명의 미지는 인간의 순서라는 것이다.
미지와 진화의 순리에는 유전적 분별력의 순서가 있다는 증거적 논리이다.
증거로 미루어 신과 인간사이에 앞선문명의 시간을 상상할수 있다.
각각의 문명에는 진화의 선택에 개입할수 없는 유전적 분별력이 있다.
인류의 문명을 유인원에게 학습할수 없는 유전적 시간개념이다.
선지자는 인류의 운명적 선택에 개입하지 안는다 에서 개입할수 없다는 논리가 가능하다.
유전자의 시간개념으로 학습할수 없기 때문이다.
생명과 생태계의 공유에서 구원할수 있으나 종의 운명적 선택에 개입할수 없다.
인간과 유인원은 유전적 분별력이 있다는 것이다.
구원자는 생태적 연속성에서 인류의 문명을 이해하는 미지의 존재이다.
유전적 시간개념에서 신의 가르침을 전달하는 매개체이다.
빛의 형태적 또는 가시적 지배에서 발현된 현상으로 이해할수 없는 미지의 문명을 상상하는 것이다.
태초에서 두발과 손가락과 불과 문자와 통신 이후의 현상은 무었일까 미지이다.
생이 잛다.
진화의 시간개념에서 죽음으로 존재가 사라지는 것도 아닌것 같다.
시간에 의한 유전적 진화가 답을 찾을 것이다.
지배와 경쟁을 우선하는 전쟁의 조급함이 아니라 평화가 필요한 이유이다.
미지와 지동설에서 인간중심의 창조적 고립이 있었다.
의인화의 단순한 집착은 사물과 존재의 이해에서 인간중심의 해석이다.
인류의 역사를 뒤돌아 보아야 한다.
문지방의 패권이 아니라 시간과 공간의 순리로 미지를 이해해야 한다.
미지와 문명의 순리에서 지배적 선입견의 파멸적 선택으로 멸종하지 말아야 한다.
선지자의 가르침에서 인륜을 구원하는 말씀의 순화는 지배적 선입견의 다툼이다.
인류문명의 근본은 지구적 또는 인류적 선입견이다.
미지는 무한하다.
우주와 신의 존재를 증거하는 과정에서 목적없는 지배력에 목숨걸고 있다.
오공이가 웃는다.
남과 북의 국민이 잘먹고 잘사는 것이 한반도 평화의 목적이다.
방법은 교류와 협력이다.
고립과 붕괴의 파멸적 단절은 인륜과 민족사관을 살펴야 한다.
민족과 인륜과 인도적 양심에서 정치적 설정의 한계가 있다.
분단의 경계에서 체제의 우월성을 우선하여 기아와 질병의 인륜적 책임을 회피할수 없다.
정치우선의 대립적 선입견으로 퇴색하는 인륜과 민족의 동질성 이다.
국제정세에서 국경의 경쟁은 민족과 땅과 경제이다.
문화와 지식사회에서 아직도 국경의 경쟁력은 머릿수의 무리적 습성이다.
고구려의 기상에서 그나마 있는 것도 냉전의 역사로 갈라져 지정학적 딜레마에 있다.
국제정세의 패권다툼에서 한반도의 미래가 신냉전의 분쟁적 교두보이다.
민족적 자주성 문제이다.
양극화의 생산성 없는 정치가 넘에 집 문지방 기웃거린디.
벼슬만 내세우는 사대부의 폐쇄성과 합의와 협력을 모르는 말살적 당쟁의 관성이다.
동학의 자주성과 근대사의 사관을 망각한 학문과 정치이다.
패권적 국제정세에 줄서는 오천년 역사의 예속적 사관이다.
우리의 문제는 우리가 해결해야 한다.
국제정세에서 문지방 관리도 못하는 오지랖이 울타리 치고 족보 따진다.
때만되면 외세에 줄서서 족보 팔아드실 궁리나 한다.
이념적 문화의 정체에 고립된 통제사회의 폐쇄성을 글로벌 사회로 이끌어 내야한다.
땅과 민족과 경제와 문화의 정체성으로 국제질서의 존재가 결정되는 시대이다.
한반도 문제에서 오천년 문화의 정체성으로 자주성을 주장해야 한다.
한반도의 미래를 위한 민족적 동질성 회복과 통합이다.
남북 대표권의 대화가 필요하다.
냉전적 대립에서 역사의 시간을 이해하는 상호존중의 문제이다.
체제의 우월성과 이념적 대립에 지친 민심이다.
한반도 미래에서 이짝이나 저짝이나 혈육의 상식으로 이해할수 없는 정치적 이해타산의 고집이다.
만물의 영장께서 우물안 지식으로 선택한 이념적 역사이다.
21세기의 지식과 문화의 분렬력에서 가치를 상실한 시대적 모순이다.
세상이 변하여도 한반도 문제 당사자들의 사고방식은 내것의 사사로움에 집착하고 있다.
냉전적 국제질서에 구속되는 정치의 이분법적 논쟁이다.
역사의 사고방식이 국제정세의 지배력에 예속되어 있는 종속적 관성이다.
민족과 민주와 민생의 주체성 없이 이분법적 논리의 국제정세에 구속되어 있는 정치이다.
한반도 문제에서 민족적 자주성의 긍정을 찾을수 없으니 염원과 희망을 포기하는 것이다.
우리의 문제를 우리가 해결할수 없는 처지의 안타까움이다.
패권적 국제정세에 구속되는 한반도 역사의 원한이다.
사대부의 벼슬과 당쟁의 파멸적 역사에 얶매여 있는 울타리 정치의 고집이다.
별볼일 없으면서 내것이 우선이라는 도토리 키제기이다.
분단의 이분법적 현실을 이용하는 양극화의 쉬운정치이다.
습성화된 분단의 대립에서 이분법적 갈리치기의 선동으로 분열하는 정치이다.
나 아니면 답이 없다는 자기 당착적 사고이다.
권모술수의 야합과 앞과 뒤가 다른 선동의 거짓이다.
밥그릇에 연연하는 정치의 섞은 판떼기 이다.
미래는 없고 과거에 얶매이는 일신의 영달이다.
지지율에 연연하여 박수 받을곳 찾아다니는 골목대장의 뒷태이다.
낮바닦 드미는 곳에서 국민과 국가이고 뒤돌아 서면 민심을 잊은 밥그릇과 가문의 영광 뿐이다.
걸핏하면 분단의 비극을 물고 늘어지는 생산성 없는 정치이다.
조직에 줄서서 입신양명을 탐하는 미래의 불확실성 이다.
대의가 없다.
대북제재의 주체는 미국과 유엔이다.
남부교류에서 남한정부의 정책적 접근은 제한적 이다.
한반도 통합에서 우리가 할수있는 한계의 국제정세가 문제이다.
국가의 자주성과 경쟁력 문제이다.
남이나 북이나 이짝이나 저짝이나 내것의 울타리에 집착하는 이분법적 논리의 역사관이다.
한반도 통합에서 체제논쟁은 불필요한 것이다.
냉전의 역사가 전제된 남북정권 또는 정치의 한반도 주도권 기우는 동상이몽 이다.
진화의 시간개념을 의식하지 못하는 닭 벼슬 같은 지식과 지성의 한계이다.
한반도 미래의 주체는 오천년 역사의 합의와 동의이다.
2019년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결렬 후 2023년 보수정권에서 한반도 문제의 가시적 진전은 없다.
국제사회의 용인없이는 한반도 문제의 변화를 기대할수 없다.
불구하고 이념적 분단의 적대적 설정과 체제의 우월성을 강조하고 있다.
동서냉전의 관성에 있는 체제의 일방적 지배는 태평양과 대륙의 지정학적 이유에서 가능성이 희박하다.
제 잘나 울타리의 품생품사가 우선하면 남북문제 해결의 진전은 없다.
태평양과 대륙의 패권경쟁에서 체제의 일방적 예속과 강요는 지정학적 통제권 밖의 자결권이 될수있다.
예멘 통합의 휴유증이다.
문제는 분단의 비극을 이용하는 이분법적 역사의 선입견으로 고착화된 양극화 정치의 우려이다.
민족의 비극을 정치에 이용하는 구태이다.
아무것도 할수없는 상황에서 남북문제의 적대적 설정과 난무는 좌우논리의 정치공학이다.
분열과 대립의 경계를 이용하는 한심한 울타리 정치이다.
노상하는 것이 분단의 상처에 소금뿌리고 속빈강정 같은 울타리 부여잡고 내것의 우선이다.
백성을 위한 신념과 지식과 문화의 분별력은 물 건너가고 사대부의 헛기침 만 요란하다.
울타리 정치에 집착하여 국민정서의 염려는 개밥에 도토리 이다.
쌈박질에 논리없는 어거지와 시정잡배의 행실이 교육의 백년대계를 위협하고 있다.
위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
따라한다.
국민정서는 보이는 것을 우선한다.
국민이 요구하는 정치개혁을 위한 선거법 개정이 소리만 요란하다.
국민의 뜻에 따르는 정치변화가 필요하다.
지역과 조직논리의 밥그릇에 연연하여 일 안하는 입법부의 구성은 국민의 심판을 받을 것이다.
내년 4월 국민의 요구와 수용적 관점에서 민망한 대량해고의 국민심판이 있을 것이다.
계묘년 끝물과 갑진년 정초의 심보가 고약할것 같다.
테이터의 미래와 미지에서 아무것도 아닌 집착이다.
2023.7.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