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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대계.

박세욱. 2023. 6. 29. 05:41

114 교육대계.
교육의 방향이 문제이다.
백년대계의 설계를 고쳐야 한다.
공동체의 구성과 운영에서 공익적 개념은 필수이다.
공익적 개념의 주장에서 일관성 문제이다.
사물의 이해와 정치는 다르다.
정치적 시각으로 사물을 판단하는 모순이 있다.
정치의 승패에 집착하는 이분법적 논리의 교육관은 잘못된 것이다.
물질문명의 시류에서 인륜과 정치의 이질적 교육관 이다.
경쟁과 수용에서 다르다.

교육은 긍정으로 수용하는 것이다.
이분법적 정치의 배타적 경쟁과 다르다.
자본과 시장경제의 경쟁적 사회와 차별적 문화의 개선이 필요하다.
인류의 역사가 경쟁을 위한 것인지 평화를 위한 것인지 뒤돌아 보아야 하는 시대이다.
인재양성에서 학습평가의 경제적 차별과 제도의 공익성 개선이다.
공익성은 공동체의 정체성을 충족하는 정의이다.
생산과 분배의 생존적 정의이다.
절대평가 확대는 진보가 주장하는 교육관 이다.

자사고와 특목고 등 교육의 본질을 벗어난 입시경쟁 서열화 개선이다.
인제발굴에서 생태적 논리의 주장이다.
경제력과 지식권력에 의한 기회편중 개선이다.

제도를 선점한 기득권의 기회독점 개선이다.
변별력 문제이다.
절대평가 확대이다.
같은조건에서 평가해야 생태적 창의성을 충족하는 우수한 진짜를 발굴할수 있다.
현실에서 AI와 데이터의 학습적 지식으로 미래를 예지할수 있는 한계가 있다.
생물학적 지식에는 꿈과 환상이라는 상상의 세계가 있다.

지식진화는 학습과 예지가 병행하는 생태적 결론이다.
선택에서 미래는 지식과 병행하나 창조적 예지력은 생물학적 능력이다.
입시조건의 절대평가 확대는 생태적 이해를 요구한다.
입시평가와 졸업평가의 비교와 제도적 이해가 필요하다.
학습평가의 대세에서 생태적 조건을 충족하는 창의적 능력의 인재발굴이 미래지향적 선택이다.
가로등으로 지천에 널려 있던 귀신이 사라졌다.
AI와 데이터의 지능화는 인류의 진화를 시험하고 있다.
역사의 과거보다 미래가 중요한 시대이다.
예지와 창의력의 필요이다.

교육의 책임은 쓸만한 떡잎 찾아내는 것이다.
돈 없어 일찍 포기하는 선천적 인재의 발굴과 등용이다.
다양성의 존중으로 분야별 생산성을 확대해야 한다.
전문성의 확장이다
행복을 위한 조건의 확대이다.
특별한 직업의 차별적 기득권 문제이다.
삶의 성취가 돈으로 평가되는 자본시류 이다.
타의의 시선을 의식하는 성취적 인습의 문제이다.
자아의 성취가 아쉬운 시대이다.

생산과 분배에서 이분법적 논리의 정치적 사고는 개선되어야 한다.
21세기는 지식과 문화를 공유하는 공존의 시대이다.
이분법적 사고의 대립적 피해를 경험한 지식이다.
기계적 학습의 진화가 빛의 속도이다.
정치에 구속되는 지식이 문제이다.
경쟁에서 평화를 선택할 시간이다.
생태적 합리성의 생산성이 필요하다.
직관과 경험의 형태적 감각에서 감성적 인륜의 회귀이다.
인공지능의 학습에는 미래의 데이터가 없다.

생명체는 암시적 미지의 미래를 선택할수 있다.
목자는 지구에 만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인간은 윈숭이의 유전적 선택에 개입할수 없다.

종의 생태적 선택에 이종의 개입은 불가능 하다.
종의 분화는 대자연의 질서에서 생태계를 공유한다.
생태계와 유전자의 연속성은 암시적 질서의 공유이다.

인간과 유인원의 유전적 분별력은 생태적 공존의 시간과 선택의 증거가 있다.
신과 인간의 분별력은 생태적 시간과 선택의 증거가 없다.
신과 인간 사이에는 생태적 또는 문명적 연속성을 의심하는 공간적 미지가 있다.

유전자 연속성에서 교육의 차별이 가장큰 문제이다.
내자식 귀한것 똑같다.
물질시류와 공동체의 공익적 관점에서 정당한 경쟁이 아니라는 것이다.
불필요한 입시경쟁으로 생산성의 차별적 한계가 발생하고 있다.
교육대계에 도움되지 못하는 즐세우기 사교육의 학습경쟁으로 경제적 조건의 소외가 있다.
행복해야 하는 아이의 미래가 불안하다.
자본시류의 인습에 지친 사회가 미래의 불합리성을 의식하는 것이다.
생존과 인륜과 유전적 미래의 위기이다.
경제적 차별의 사교육 문제이다.

돈의 기회차별 이다.
지나친 경쟁과 차별적 사회의 계층화 이다.
학교의 서열화 이다.
정치의 지배력은 무소불위 우선주의를 경계해야 한다.
정치는 전문성을 관리하는 것으로 절대성의 우선이 없다.
문화와 교육은 분야별 또는 전문성의 발전이다.
행복의 조건에서 저변을 확대해야 한다.
경쟁하여 이긴넘 만 행복하다고 주장하는 교육은 잘못된 것이다.
행복은 희노애락의 감성적 느낌이다.

교육은 희노애락의 감성적 깊이를 가르치는 것이다.
요사이는 이기는것 만 가르친다.
기득권의 집착이 지나치면 인심 떨어져 끝물에 아작나는 수가 있다.
가문을 빙자한 학폭에 초등의 전세살이 차별이 가관이다.
멍석말이가 아쉽다.
동학의 기운이 꿈틀데는 꿈자리 이다.
겨울철 대문밑 얼어붙은 멍멍이 밥그릇은 이성적으로 서글프다.
교육이 해결해야 하는 문제이다.
대한민국 교육의 현실은 중이 제머리 깍아야 한다.

관악산 터줏대감 말이다.
기득권의 요지부동 이다.
씨와 밭이 좋아야 작황이 좋다고요?
세상이 요모양 요꼴 이라서 교육개혁 하신다고 하신다.
종자 잘못 골랐다.
밭은 햇볕 잘들고 물길 가까워야 실하다.
알량한 지식으로 지맴데로 하니 아이들 농사가 귀하다.
입시에 막장드라마 써야 하는 자식들 고생이 무섭다.
교육의 시국은 돈 없는 운명적 체념이다.

돈 있는 분들 만 학부형 되게 생겼다.
대륙은 사교육 아작났다고 한다.
대한민국의 사교육 문제를 참고하였다는 전달이다.
도깨비 방망이는 사회주의의 장점이다.
어설픈 자본과 자유 때문에 교육의 미래가 어둡다.
21세기의 발현에서 시대적 지식과 문화의 성찰이 필요하다.
지식의 이분법적 사고는 옭고 그름의 생산성으로 진화해야 한다.
2023.6.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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