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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존의 시대 3.

박세욱. 2023. 6. 15. 08:09

112. 공존의 시대 3.
인류의 진화는 물질문명의 한계를 넘어서고 있다.
소통과 공유에서 통신과 수송의 발전이다.
AI의 데이터 합성에 대응하는 생물학적 진화의 시대가 21세기 인류의 미래이다.
기계적 지식 데이터 통합과 합성에서 생물학적 존재의 대응이 아슬아슬하다.
인공지능의 진화에서 과거의 데이터로 미래를 어느정도 예지할수 있을지 불확실한 상상이다.
인류의 상상력 이상의 존재와 논리적 실체를 증명할수 있을지 미지의 미래는 무한하다.
데이터의 미래는 인류가 상상하는 범위 밖에 있을수 있다.

데이터가 인류의 생존을 보호할 것인지 지배할 것인지 아직은 모른다.
과정에서 생물학적 저항은 어떠한 결론에 이를지 예속의 우려가 현실이다.

생존조건에서 창의력과 노동의 생물학적 조건이 위태로운 것이다.
인류의 진화과정에서 AI와 데이터의 생산성은 시대에 의해 존재한다.
비로소 인류는 과거와 현재가 아닌 상상의 불확실성에 있는 미지의 현상에 주의하게 되었다.
시간개념에서 물리적 또는 가시적 상상의 범위를 초월하는 지식변화의 시작이다.
과거에 의한 지식의 예지를 초월하는 현상이다.
지식의 통합에서 AI에 의한 데이터의 지능적 진화이다.
탐욕이 전제된 생물학적 진화에서 데이터의 현실은 사과의 전설 이후 또다른 선택이다.
사과의 선택은 자본과 자유시장 경제의 경쟁으로 인류의 문화를 진화시켰다.
대립과 반목의 차별적 지배의 시대이다.

과정에서 선지자의 역할은 시대적 현상의 연속성을 위해 파괴의 시간을 지연하는 것이다.
결과론적 말씀이나 사과의 선택에서 인류는 선을 빙자하여 탐욕적 악을 행하는 역사를 반복하고 있다.
선지자의 가면을 쓰고 악을 행하는 시류의 위선으로 선과 악의 경계가 모호하다.
인류는 아직 생물학적 진화의 질서로 존재하고 있다.
그나마 선지자의 개입으로 지연되고 있는 악의 지배이다.
선을 일반적 개념으로 정의할수 없듯이 악의 개념도 일반적 형태가 아니다.
살인이나 강도가 악의 일반적 이해이나 이것은 탐욕과 감성의 반응적 형태에 지나지 안는다.
살인과 강도가 생명의 진화와 역사를 바꾸지 못한다.

악의 진정한 형상는 생명과 문명의 소멸이다.

악의 파괴적 재앙은 인류의 가시적 설정이 아니라 상상밖에 있는 미지의 현상이 발원하는 것이다.
지식으로 의식할수 없는 논리와 사건의 출현이다.
대자연의 재앙적 파괴가 될지 문명과 차별적 대립의 응력적 파괴가 될지 인공지능의 지식지배에 의한 
상실감이
될지 아직은 불확실한 영역이다.
인류의 미래가 물질문명의 불확실한 시대에 있다.
새로운 시대의 요구와 현상의 암시가 있다는 것이다.
인류가 자본과 시장경제의 무한경쟁을 의식하고 사과를 선택하였다고 볼수없다.
마찬가지 이다.

재앙적 환경과 핵의 피괴력과 데이터의 선택으로 인류의 미래가 암시되고 있다.

사과의 선택이 물질문명의 원시라며는 AI와 데이터의 영역은 지식시대의 원시이다.
무의식의 선택과 의식적 선택은 시작과 의지가 다르다.
선지자의 가르침은 생태계의 절대성에 의지하는 기적의 시간을 지나 증거적 지식과 문화의 시대이다.

지식의 오만은 선지자의 존재와 가르침을 시대적 논리의 한계로 이해한다. 
물질문명의 탐욕적 경쟁에서 선지자의 존재는 이단과 자본시류에 묻혀 아슬아슬하다.
가르침은 필요할때 꺼내쓰는 유물이 되었다.

선지자께서 지식의 오만과 데이터의 생산성으로 인류의 미래를 예지하였는지 불분명하다.
목자는 새벽닭 울기전에 세번 배신하고 깨달은 배드로의 교훈을 잊고있다.
이단의 방종은 노상 배신하다 결국 스스로 신이라 한다.

종교의 자유를 빙자한 탐욕적 지배력의 시류이다.
진리의 진실보다 표계산에 열중하는 민주주의의 방종이다.
고립된 정신으로 육신을 지배하는 신의 모방은 꺼꾸로 매달려 죽지도 안는다.
강요하여 약탈한 꽃가마 타고 요단강 건너 허무맹랑한 성지를 만든다.
오신다던 선지자는 작긋들 보기싫어 오시지 안는다.
요단강 건널 때 조심하시라!
떨어지면 지옥불 이다.

정치나 이단이나 독선적 권위와 폐쇄적 지배력의 억압과 구속이 생물학적 창의력을 방해한다.
물질시류의 질서에서 정의와 제도를 장악한 힘의 논리가 차별적 순종을 강요하고 있다. 
 
인륜적 순리를 선점의 기득권으로 지배하려는 권력과 자본의 권위적 차별이다.
선지자의 존재가 아슬아슬한 이유이다.
물질시류의 적라한 인간세계 이다.
데이터의 미지을 애기하다 잘못된 정치와 목자의 방종에 열 받는다.
국수적 선동으로 강요되는 의식의 자유를 위해 지식과 문화의 공유가 필요하다.
신의 재림은 인류의 존재와 인륜의 이해를 위한 소통이므로 시대적 문화의 의식을 충족한다.
가르침은 문화적 이해의 범위에서 미래를 예지한다는 것이다.
21세기 신의 재림은 어떠한 현상일지 형상으로 단정할수 없다.
인류의 역사는 자본에 눈먼 시류에서 또다른 선택으로 알수없는 미지의 불확실성에 있다.

문제의 의식에서 데이터의 생산성에 생물학적 대응의 시간이 필요하다.
데이터의 선택에서 자본논리의 관성적 집착은 돈으로 인륜을 깔아 죽일 생각들 뿐이다.
선지자의 부재에서 데이터는 돈의 집착을 초월하는 또다른 선택이라는 것이다.
선의 무감각은 물질 기득권의 경계에서 차별적 승패에 집착한다.
매사 이기고 지는것 뿐이다.
늬것 아니면 내것이다.
매사가 알량하고 무의미한 현상의 자존심에 매달려 조금이라도 손해보면 지는 것이다.
동무는 없다.
자본논리의 데이터 과욕에서 인류가 대응할수 없는 현상의 출현은 이미 역사의 영역에 있다.

물질탐욕의 관성적 절대성을 경계하여야 한다.
데이터의 합성은 새로운 진화의 단계에 있다.
인류가 협력하여 공존하지 못하고 경계의 경쟁을 고집하면 데이터의 진화는 상상의 범위를 벗어날 것이다.
기계적 사회는 기계가 기계를 만드는 것이다.
인류가 설정한 알고리즘은 시대적 한계를 염려해야 한다.
사과의 시작은 생산과 분배의 대립으로 분열하는 물질문명과 이데올로기의 역사이다.
산업혁명은 불과 이백여년 전이다.
물질의 탐욕으로 선지자의 가르침을 간과하는 것은 어둠을 밝힌 가로등의 이해가 부족한 것이다.

물질문명의 선악은 증거적 또는 형태적 판단을 우선한다.

어둠의 지배에서 빛이 선이었다.
빚에 의한 형태의 윤곽에서 심리적 안정이 선이다.
어두운 불확실성의 두려움이 악의 선입견 이다.
물질의 증거적 시각이다.

통신과 데이터 교류의 매개체는 지식의 빛이다.
데이터는 빛으로 공유되어야 한다.
인공지능과 데이터의 분별력 없는 경쟁은 계산서 없는 미지의 현상이 될수있다.
데이터의 진화가 지식의 빛이 될지 어둠이 될지 예지가 안타까운 선지자는 오시지 안는다.
선지자의 가르침이 필요하다.
 
가치의 분별력은 글로벌 지식과 문화의 보편적 사고이다.
통신을 통한 선의 공유가 가능한 시대이다.
인류의 문화적 진화를 살펴보면 선을 지키기 위한 노력이 안타까울 정도이다.
탐욕의 꺼죽뿐인 단절된 운명의 이단적 행위에도 생명의 연속성은 불멸의 존재이다.
지역적 고립에서 발전한 문화와 종교의 다양성은 생명과 생태계를 지키기 위한 노력이었다.

시대적 변화에서 생존의 수단은 물질과 지식과 문화의 공유이다.
경쟁의 완화와 협력이다.
21세기는 인공지능과 데이터의 생산성이 환경이며 문화이다.
생물학적 창의력과 노동력 상실에 대비해야 한다.


통신사회의 글로벌 지식과 문화의 공유는 의식의 규합으로 하나를 이룰수 있는 조건이다.
생물학적 생태계의 암시적 질서를 공유하는 것이다.
기계적 데이터 통합에서 생물학적 의지의 대응적 수단이다.
생물학적 존재로 우주의 끝에 가야한다.
문명의 진화는 시간의 자승에 비례한다.
AI와 데이터의 변화에서 인류의 생명력으로 진화의 방향을 설정할수 있는 예지력이 필요하다.
인류의 역사는 무한한 미지의 환경에 적응하며 진화하였다.
인류의 생명력은 AI와 데이터의 환경변화에 적응할수 있다.
생물학적 진화의 잠재력을 과소평가 할 이유가 없다.

생물학적 가능성은 무한한 것이다.
생명은 물질에서 생태계를 창조하였다.
2023.6.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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