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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중심의 정치.

박세욱. 2023. 3. 24. 09:05

102, 자기중심의 정치.
정치의 극단적 사고가 역사와 가치의 분별력을 흔든다.
통신과 글로벌 사회의 지식정보와 문화의 공유에도 양극화의 승패적 관성은 오히려 고착화 되고있다.
정치적 선택에서 좌우의 선입견과 진영이 우선하는 흑백논리의 주장이다.
동서냉전의 이분법적 국제질서에서 민족분단의 상처와 전쟁의 위기는 일상이 되었다.
냉전의 국제질서에서 4,3과 6,25등 분단의 수많은 비극을 경험한 역사이다.
역사의 교훈에서 냉전의 이분법적 사고를 의식해야 한다.
불행하게도 대한민국의 정치와 한반도 정세는 역사의 교훈을 망각하고 있다.
아직도 국정운영의 주체를 좌우의 정치적 선입견으로 선택하고 있다.
2023년 21세기의 패권적 세계질서는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신냉전의 기류가 표면화 되었다.
 
태평양과 대륙의 국제질서 대립이다.
한세기전 시대의 흐름과 국제질서의 무지로 주체성을 상실한 역사의 재현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신냉전의 기류에서 지정학적 경계의 우려이다.
일상으로 무디어진 역사의 교훈을 기억해야 한다.
좌우논리의 정치적 선입견이 작용하는 일방적 선택의 피해를 의식해야 한다.
21세기 대한민국의 위상은 선택할수도 없었던 구한말의 속수무책과 다르다.
문화와 경제와 사회에서 세계의 선두를 형성하고 있다.
한세기전 외세의 침략에 주체성을 상실하고 국권을 찬탈당했던 역사는 교훈으로 남아있다.
이념적 선택의 신탁통치와 전쟁으로 민족분단의 비극적 상처를 경험한 역사이다.
 
아직도 동서냉전의 역사에 의한 분단의 비극은 혈육과 문화의 단절된 시간에 있다.
한반도의 허리가 두동강으로 갈라져 소통부재의 군사적 위기는 일상화 되었다.
인류역사의 이분법적 사회질서에 의한 패권적 대립의 피해이다.
21세기의 패권적 국제질서에서 한반도 분단과 적대적 대치는 또다시 지정학적 경계의 위기에 있다.
세계질서의 패권적 집착은 한세기전 동서냉전의 이분법적 역사의 비극에도 불구하고 한반도 분단을 경계로
군사적 위기를 고착화 하고 있다.
신냉전의 기류에서 한반도 분단의 역사가 또다시 선택의 위기에 떠밀리고 있다.
신냉전의 국제질서에서 이분법적 대립의 교두보가 될수 있는 정치적 선택의 신중함이 필요하다.
한반도 정세에서 역사적 교훈은 패권적 국제질서에 대비하는 정치의 단일대오 형성이다.
 
집구석 싸움만 단일대오가 필요한 것이 아니다.
국가의 주체성을 상실하고 국제정세에 기대는 좌우논쟁과 갈등의 정치는 구한말에 경험한 망국적 역사이다.
밥그릇으로 분열된 정치가 국가의 위상을 보호하지 못하고 외세에 끌려다니는 것이다.
정치가 역사의 교훈을 망각하고 신냉전의 패권주의에 끌려다니면 총알받이 되기 십상이다.
패권주의의 국제질서에서 정치적 안정으로 지정학적 교두보를 피해야 한다.
정치의 역할에서 국민의 동의가 전제되는 국가적 의지가 필요하다.
국가의 주체성은 개인이나 집단의 정체성이 아니라 국민의 의지이다.
국민의 의지를 규합하는 수단에서 정치적 역할의 필요이다.
대립과 갈등을 조장하는 이념적 논리의 선입견을 해소해야 한다.
 
역사를 기억하는 대외적 대의에서 정치의 공유이다.
집구석 오지랖 다툼에도 울타리 넘어오는 도적넘 있으면 먼저 나가 때려 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부부싸움 끼어들다 두둘겨 맞기 십상인데 우리나라 정치판은 이웃집 웬수 끌어들이고 있다.
속창시 없는 소갈머리 때문에 문지방 관리가 위태로운 것이다.
이짝이나 저짝이나 민심의 시선을 이탈한 나홀로 정치가 지멋데로 처신하는 것이다.
좌우논리의 관성적 선입견을 이용하는 양극화의 폐쇄적 울타리 정치가 민심을 오판한다.
내것과 우리편의 편협함이 민심의 대의를 소홀히 한다.
절대권력의 향수와 잘못된 팬덤에 의지하는 당심이 민심를 대변하는 의견수렴의 전부가 아니다.
민심의 이해는 시대적 문화의 주체성으로 다양성을 수용하는 것이다.
 
집단의 국수적 논리에 집착하는 추종적 정치의 잘못된 팬덤이 다양성을 해친다.
21세기 데이터를 기반으로 하는 신산업의 팽창을 외치며 먼넘에 기우적 믿음인지 먼산의 아지랑이 이다.
성왕당의 믿음으로 국가의 미래가 가물가물 하다.
절대권력의 폐쇄성과 대통령병의 집착이 기회의 보편성에서 정치의 정도를 왜곡한다.
인적자원의 순환과 능력의 활용에서 포괄적 검증과 기회가 필요하다.
평생을 말뚝박고 기회를 독점하는 인물론의 권위주의 시대는 지났다.
내것의 고집으로 울타리 사수해도 담넘어 민심은 어쩔수 없다.
선동과 선점과 기획의 권모술수는 민심의 동의에서 한계가 있다.
매사 수단과 방법을 우선하는기획의 정치로 진실을 포장할수 없다.
 
민심의 동의는 행위와 사고의 전계에서 감성적 동의의 진실과 진정성이 필요하다.
문화와 지성의 분별력을 지향하는 민주당의 정체성이 사라지고 있다.
2023년 국수적 논리의 투쟁적 집단이 민주당의 주체를 주장한다.
잘못된 팬덤은 집단 이기주의로 울타리 치고 반론과 다양성을 부정한다.
정치의 중용은 사라지고 극단적 선택을 강요한다.
나의 주장만 존재하는 양극화의 극치이다.
양극화의 승패적 관성에 빠져있는 획일적 사고의 집단화 이다
민주주의의 전제 다양성을 상실한 좌우논리의 정치와 일방적 선택의 강요이다.
대한민국의 현실정치이다.
 
늬편 내편으로 갈라져 헐뜻는 윤핵관과 친명은 같은 속성이다.
지성있는 오지랖은 남 애기할때 나의 거취가 필요한 것이다.
정치판의 들이밀기는 타의가 없다.
저지르고 들이밀면 장땡이라는 독선적 사고가 민심의 올바른 의견수렴을 방해한다.
대한민국 정치가 머릿수와 악다구리로 들이미는 논리부재의 판떼기 되었다.
문화와 지성의 민주당이 정체성의 분별력을 상실하고 있다는 것이다.
민심의 감성적 동의없이 내것과 기획으로 아사리판 만드는 선동과 권모술수의 정치이다.
정치적 생존에서 사법리스크의 악다구리 이다.
정치판의 냉혹함은 살아남아야 이유가 있는 것이다.
 
국가의 대표성은 일신의 영달이 아니다.
국가는 매사 국민이 중심이다.
국민의 동의가 전제되지 안은 울타리의 위임권 남용은 독선이다.
정치가 민심의 진실이 아니라 정치판의 이해타산으로 허물을 감추고 주고받는 구태의 카르텔 이다.
민심과 진실을 속이는 시류의 계산법이 작용하는 주고받는 정치판의 권모술수가 있다.
정치와 카르텔의 관계에서 법치와 정치공학은 민생과 다른세계 이다.
민심의 동의에서 조직논리의 관리를 위한 시류의 딜레마는 수단과 방법에서 논리의 이유가 없다.
조직사회의 관리에서 수단과 비용의 딜레마는 내지르고 운명에 따르는 선순환의 논리이다.
50억의 무리한 판단과 공생하는 카르텔의 의심은 어지간 하면 알수있는 정치판의 계산법이다.
 
민심의 괴리에 있는 정치의 불편한 진실이다.
국민들 시선에서 으르렁 거리다 화면 밖에서 형님 동생하는 공생관계의 카르텔이 현실정치의 정치공학이다.
밥그릇 공생의 믿는구석이 있으니 분별력 없이 쳐묵고 머시기 들이미는 것이다.
21세기의 지식과 문화와 통신정보를 공유하는 시대에 후진적 정치의 셈법이다.
정권을 잡으면 만사가 내것이 된다는 자기당착의 소갈머리 이다.
책임없는 정치로 민심위에 군립하려는 권력의 속성이다.
민생을 위한 정치보다 나를 위한 나홀로 정치가 역사를 왜곡한다.
잘못된 정치와 선택은 반드시 역사와 민생을 힘들게 한다.
21세기의 국제질서는 패권적 대립의 위기가 있을 것이다.
 
별볼일 없는 내것의 입바른소리 집어 치우고 21세기의 국제질서에서 한반도의 미래를 성찰해야 한다.
먹거리 챙기고 민생과 경제에 관심이 필요하다.
가능하면 핵의 완전한 보유도 필요하다.
누구의 간섭없는 핵권리의 확보이다.
핵무기 없다고 누군가 시험삼아 장난칠수 있다.
사고의 비약이나 열강들의 대립에서 사선을 형성하는 지정학적 위치의 자기 방어적 주장이다.
핵이 없으면 신냉전의 총알받이 될수있다.
국제질서에서 어정쩡 하면 홍어 머시기 되는 것이다.
힘의 논리를 우선하는 국제질서에 기대지 말고 우리것으로 우리끼리 해보자는 것이다.
 
밥그릇에 눈돌아가 정치판 들이밀기는 잘하면서 70년 분단의 삼팔선에 들이미는 정치인은 없다.
베를린 장벽을 독일정부가 나서서 무너뜨리지 안았다.
멍석은 정부가 깔았을 지언정 국민의 의지가 분단의 장벽을 허물었다.
까짓것 천만명 쯤 트랙터 몰고 곡괭이 들고 휴전선 까부수로 가면 좋겠다.
국제질서의 패권주의가 힘들어서 기냥 우리끼리 하면 어쩔까 하는 것이다.
남북이 군사적 문제를 떠나 인륜과 문화적 소통이 이루어 진다면 동북아의 역사는 달라질 것이다.
현해탄의 역사에 목매달고 원전수에 수산물 우짜고 하실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보따리 싸들고 가시지 말고 싸가지고 오라고 하시면 된다.
정치개혁 하라는 민심의 요구가 현해탄의 몸살로 폼잡다 말게 생겼다.
 
한쪽은 당대표의 사법리스크에 구속되고 한쪽은 패권적 국제질서에 줄서서 정신줄 없는 것이다.
이짝이나 저짝이나 소갈머리의 밥그릇 챙기다 떵빼고 피빼고 남는것 없을것 같다.
정치개혁에서 비례대표의 견제는 지역구도의 양극화를 유지하려는 것이다.
지역적 구도에 기대는 진영논리의 완고한 설정이 울타리 정치의 기득권을 형성한다.
진영논리에 줄서는 울타리의 기득권이 불편해 하는 것이 분야별 전문성의 반론이다.
살펴보며는 분야별 전문성의 의견은 민생의 현장이 된다.
대한민국의 현실정치는 태평양의 대국처럼 지역구를 고집하는 성숙한 선진정치가 아니다.
양원제도 아니다.
입법과정에서 민생의 차별과 피해당사자의 의견은 수렴되어야 한다.
 
비례대표제의 견제는 기득권이 염려하는 분야별 전문성의 불편한 시각이다.
2차 세계대전의 역사에서 히틀러의 비극적 판단 중 의회주의 말살이 있다.
시끄럽다는 이유였다.
의회주의에서 토론을 시끄럽다고 사고하는 것이 사대부의 관성이다.
잔말 말라는 것이다.
노상 말씀하시는 민생의 이해가 어설픈 것이다.
물론 염려하시는 울타리에 줄서서 조직의 눈도장에 연연하는 총알받이 문제가 있다.
이것은 양극화의 기득권을 우선하는 승패적 정치의 문제이다.
비례대표제의 본질을 왜곡하는 울타리 정치판의 피해이다.
 
조직의 눈도장에 연연하는 총알받이는 본질적으로 비례성을 충족하는 민생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정치판의 자가당착적 소행을 고치는 것이 정치개혁의 이유이다.
상대를 인정하지 못하는 레닌주의의 말살적 사고가 독선적 자기주장의 함정에 빠지는 것이다.
문화의 시대성을 이해하지 못하고 인물론에 집착하는 추종적 자기중심의 정치이다.
판단과 선택에서 잘못된 팬덤에 집착하는 사고의 함정이 있다는 것이다.
조직논리의 선입견이 우선하는 승패적 정치의 사고이다.
대한민국의 미래는 옭고 그름으로 판단하여 선택하여야 한다.
정권 순환기에 발생하는 사정에 의한 생명의 비극이 울타리 정치의 법적 인륜적 현실이다.
정치판의 사법리스크가 법리적 무죄와 정황적 유죄의 혼란으로 피아를 형성하고 있다.
 
21세기 데이터 시대에서 기우적 운명에 매달리는 정권의 정황적 의심도 혼란스럽다.
기우적 믿음의 예지력으로 이태원 참사를 막을수 없었는지 아리송 하다.
의식의 괴리가 발생하는 판단과 선택은 제대로의 현실적 시각에서 가치관의 혼란이 있다.
사람이 살지 안는 빈집에 귀신이 든다.
사람이 액운을 막아주는 것이다.
공동묘지에 아파트 짓고 잘산다.
재벌가의 본택에서 공사중 다수의 유골이 발견되었다.
잘먹고 잘사는 것은 사람에게 달려 있다는 것이다.
막무가내는 현해탄의 역사는 민족의 주체성이 우선하여 필요한 것이다.
3.1절 축사에서 거론하신 민족의 주체성 이다.
 
대통령의 위치에서 한반도 역사의 비판과 성찰로 이해한다.
부연하면 민족의 주체성은 국민의 의지로 성립한다.
개인이나 집단의 획일적 정체성으로 국가의 주체성을 주장할수 없다.
민심의 존재를 무시하는 편협한 사고의 정치가 민주주의를 왜곡한다.
널리 이롭게 하라는 홍익인간정신은 인간의 한계에서 협력하라는 것이다.
국가의 대의에서 민심의 동의없는 나와 정당의 이기주의가 우선하고 있다.
21세기의 한반도 정세는 신냉전의 국제질서에 대비해야 한다.
구한말의 교훈이 필요하다.
정조사후 세도정치의 사대부 울타리가 민심의 의지를 구속하였다.
 
배떼기 따시면 어깨 힘주고 치졸한 권세로 사람 비하하며 군립하려는 속창시 문제가 발생한다.
가져다 붙이기 좋아하시는 분들께서 한반도 위기의 백년주기를 말씀하신다.
정조사후 한세기 만에 식민사관의 비극적 역사가 발생하였다.
백년이 지난 현재 신냉전의 기류는 현해탄의 문제로 구한말의 역사를 복원하고 있다.
밥그릇의 이기주의로 난립하는 대립과 반목의 자기주장과 입신양명의 일신에 집착하는 정치가 현실이다.
구한말의 역사를 기억해야 하는 현실적 조건이다.
3.1절 축사에서 말씀하신 오천년 역사의 주체성이 필요한 것이다.
민심은 안중에도 없는 양극화의 울타리 정치가 대의보다 나의 존재를 우선하는 인물난에 허덕인다.
말과 압가림의 오지랖이 판을 치는 민주주의의 실종이다.
대한민국의 미래는 국가의 주체성을 우선하는 중용의 정치가 필요하다.
 
패권에 집착하는 이분법적 국제질서에 대비해야 한다.
이념적 선택과 분열로 전쟁을 경험한 역사의 기억으로 우크라이나 전쟁의 비극을 목격하고 있다.
이분법적 선택을 고집하는 패권적 국제질서에 대비하는 중용의 주장이 필요하다.
태평양의 군사동맹은 역사적 교훈에서 태동적 목적의 진의와 진실이 필요하다.
태평양의 협력에서 식민사관의 민족감성 해결은 우선하는 조건이다.
지정학적 경계의 위험과 역사적 피해의 배려는 협력의 조건이다.
국정운영은 역사와 현재와 미래를 고려하는 민심의 동의가 필요한 것이다.
검증되지 안은 일부의 주장으로 민주주의의 절차를 왜곡할수 없다.
더민주의 당대표 기소에서 당헌 80조 적용절차가 왜곡되었다고 한다.
 
민주주의의 의결에서 합리성의 충족은 절차의 순리에 있다.
머릿수나 힘의 논리로 밀어붙이는 방식이 민주화의 투쟁으로 저항하던 권위주의의 독선이다.
민주화의 주체를 주장하는 정당의 정체성이 들이미는 권세의 독선으로 왜곡되고 있다.
절차의 합리성과 중용의 요구를 무시하는 극단적 세력의 준동은 추종적 자기중심의 정치이다.
민주주의의 다양성을 주장하며 내것으로 들이밀어 규범적 절차를 왜곡하는 것이다.
민심의 정의는 없고 수단과 방법으로 계산하여 기획하는 정치이다.
정치도 가슴으로 느끼는 인륜과 인격이 필요한 것이다.
정치.사회.경제에서 썩은사고를 정리하여 중용을 성립시키는 정치개혁의 필요이다.
2023.3.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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