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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구성의 비례성.

박세욱. 2023. 1. 29. 12:32

96. 국가구성의 비례성.
전문가는 매사 일의시각으로 판단하여야 한다.
분야별 전무성이 정치에 줄서서 판단하면 국가구성의 비례성이 사라진다.
작금의 코로나19 방역방법은 과정의 노하우이다.
미지의 바이러스 방역은 국민의 피해를 최소화 하며 새로운 면역체계를 구축하는 것이다.
생존에서 새로운 면역체계는 무었보다도 우선하는 자원이 된다.
과학방역은 몇칠 후 실내에서 마스크 벗는다고 상황점검하고 있다.
현재상황에서 국가를 봉쇄하여 경제교류를 중단하고 해외교표를 외면하고 대구를 봉쇄하는 것이 옭은
방역이라고 볼수없다.
코로나 초기 국가를 봉쇄한 국가의 면역체계 구축과정을 살펴보시라!

우리나라가 전세기 띄우니 다수의 나라에서 봉쇄를 풀고 하늘길 열었다.
해외교포의 특정지역 국내수용을 동질성과 참여의 설득으로 이끌어 내었다.
글로벌 사회에서 격리자의 생계보호와 생필품 공급은 찬사에 가까운것 이었다.
대한민국의 공공 의료체계는 확진자 치료에 개별적 부담이 없다.
관리주체의 투명한 정보공개와 현장의 실용적 공유는 방역성과와 비례하였다.
국민이 주체가 되는 인륜적 방역의 참여의식은 대한민국이 제시한 바이러스 위기대응 수단이다.
공동체의 위기에서 이웃과 함께하는 홍익인간정신 이다.
방역의 성과에서 정치적 개입을 최대한 차단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퇴임한 질병관리청장 인선에 우여곡절이 있었다.

신념과 전문성의 사명감으로 일해 놓으면 권력에 줄서서 숟가락 올리려는 작태는 비생산적 행태이다.
방역의 책임은 검은머리 팟 뿌리는 아니여도 흰서리 정도는 되었다.
위기관리에서 의료 전문분야의 지식공유는 국가구성의 비례성을 이해할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미지의 막연함에서 방법을 찾아 노력하고 선택하는 과정에서 시행착오의 질책도 있었다.
본능적 욕구가 아닌 지식의 활용에서 선택하여야 하는 미지의 막연함은 책임과 비례하여 두려움이 있다.
예지가 필요한 시간이나 경험치의 한계는 확신할수 없는 선택이 필요하다.
생존의 선택에서 어려울 때는 인륜과 역사(제도)의 정의를 고려하는 선택이 확률을 증가시킨다.
해외교포의 국내이송과 격리자의 생활안정은 제도의 활용과 인륜을 우선한 것이다.
격리자 수용에서 특정지역의 문제해결도 결국 방역방향의 정의가 작용하였다고 이해할수 있다.

바이러스의 대규모 전파에서 예산의 한계가 있었으나 격리자의 생계보호는 초기조치에 도움이 되었다.
사스와 메르스 방역에서 가족의 생계 때문에 격리시설을 이탈하는 문제가 있었다.
제도의 미비로 발생하는 인륜의 문제이다.
행정력의 확진자 관리도 송파 세모녀 사건 이후 구축된 민생현황 파악 씨스템의 활용이었다.
바이러스의 미지에서 주어진 여건을 최대한 활용한 것이다.
글로벌 사회에서 비교우위에 있었던 방역정책의 선제적 대응과 인륜을 우선한 것이다.
마련된 제도의 활용과 홍익인간정신의 동질성이 국민의 의지를 모으는 노력에서 성과가 있었다.
부연하여 한말씀 드리면 탄핵의 역사가 섞여있는 시간에 제도를 마련하였다는 것이다.
기억으로 격리자 생계문제는 과학방역의 중심에 계시는 분의 우연하지 안은 조언으로 마련된 제도이다.

민생 씨스탬 마련은 송파사건 후 방대한 행정조직은 무었때문에 존재하는 것이냐는 문제제기 였다.
두 제도의 마련은 SNS의 문제제기를 국정운영의 주체가 수용한 결과이다.
역사는 정사의 기록보다 야사의 디테일이 훨씬 극적이다.
종교단제의 비협조적 위기에서 대구봉쇄를 피하기 위해 의료진과 자원봉사 하시는 분들의 노력이 있었다.
자율적 질서의 참여의지는 위기를 공유하는 공동체의 새로운 개념으로 사회질서의 커다란 성과이다.
사회질서에서 미지의 창조라고 하여도 과한것이 아니다.
방역의 일선에서 확진의 위험을 감수하고 의료의 의무를 수행한 노력은 인륜이었다.
발품팔아 확진자의 동선을 파악하는 행정력의 운영도 희생이 전제된 것이다.
전파의 실체를 파악하기 위해 바이러스를 따라 다니는 위험한 관리였다.

코로나 방역에서 작금의 상황에 위기를 느끼는 국민은 찾아보기 어렵다.
엔더믹 초기 불안한 방역완화에서 현재는 바이러스에 의한 사회불안 요소는 많이 사라졌다.
면역체계의 자원화가 위기를 의식하지 안을 정도로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방역의 격리와 문화의 자유가 대립하는 시간을 슬기롭게 인내하였던 것이다.
현재의 방역은 수많은 시행착오의 시험과 자유를 인내하는 과정에서 마련된 경험으로 진행되고 있다.
방역의 초기대응에서 무었이 잘못되었다는 것인가?
미래의 위기적 대응에서 문서의 주문을 충족하는 이론의 획일적 성과는 존재하지 안는다.
생존과 민생에서 우선하여야 하는 것은 결과이다.
미지의 바이러스 창궐과 방역에서 정권이 바뀌어 관리주체의 사람이 바뀌었다.

양극화의 진영논리에 집착하여 방역의 공과를 논하는 것은 의료의 전문성을 망각한 하찬은 지식의 망종이다.
스스로 전문분야의 비례성을 정치에 예속시키는 매우잘못된 국가구성의 이해이다
의료의 전문지식과 인륜을 양극화의 편협한 정치로 판단하는 잘못된 정체성이다.
바이러스 위기에서 방역의 격리와 문화의 자유는 충돌할수 밖에 없는구조이다.
대립하여 충돌하며 인내하는 시간으로 면역체계를 완성하여 나아가는 것이다.
과정에서 국가의 정체성을 활용하고 지키는 위기관리의 실제적 상황이 된다.
집구석 불나 봐라 행위의 앞뒤는 경황이 없는 것이다.
밭갈아 씨뿌려 놓으니 딴것 심었다고 탓하고 자빠지는 지식이다.
막연한 방역의 성과에서 의료적 수단의 한계가 있다.

바이러스 위기는 국가의 총체적 역량을 동원하는 관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방역에서 무었보다도 우선하는 것은 공동체의 질서를 의식하는 국민의 참여의지 이다.
팬더믹의 시간에 대한민국은 국민이 주체가 되는 방역으로 글로벌 사회가 인정하는 방향을 제시하였다.
일상화된 방역의지는 마스크를 벗으라고 하여도 안벗는다.
대한민국은 코로나19의 두려움을 이겨내고 일상을 회복하고 있다.
면역체계 없는 바이러스 방역에서 잘하고 잘못하였다는 정치적 선입견의 판단은 잘못된 것이다.
미지는 최선의 방법을 찾아 선택하여 나아가는 것이다.
국가봉쇄 만이 답이라면 글로벌 사회에서 한반도 북쪽이 최고이다.
요사이 70년 분단의 한반도 비극을 빨대로 해결하시겠다고 하신다.

분단의 염원을 원한으로 계산하시고 멀쩡한 인연 문지방 넘었다고 쥑일인간 취급하시면 살아남을 종자없다.
진영논리를 우선하는 양극화 정치의 대립은 사사건건 표계산에 열중하는 말꼬리의 산수가 작용한다.
오천년의 역사를 현해탄의 역사와 비교할수 없는 것이다.
줄거리에 끼워넣어 정신의 이완을 노리는 작업은 콜롬보 형사에게 배웠다.
작금의 방역은 구축된 제도와 경험으로 면역체계를 관리하는 수준이다.
과학방역에서 코로나19의 출구적 시각은 조만간 실내에서 마스크 벗는다는 진행이다.
크로나19 방역의 주체는 국민이다.
바이러스가 창궐한 막연한 초기 방역의 바탕을 마련하기 위해 고생하신 분들 많다.
나이팅게일의 정신으로 남에 떡 커보이면 진다.

요사이 귀떼기 피 안돈 귀한사회에서 머시기 드리밀먼 장땡 잡는다는 산수는 사라졌다.
드리밀어 될성 싶어도 지식과 문화의 휴유증이 만만하지 안은 것이다.
21세기 지식문화사회의 지성을 폄하하는 손가락 산수로 세월보내지 마시라는 것이다.
울타리에 줄서서 국가구성의 분야별 비례성을 배신하지 말라는 것이다.
요사이 인연의 경계가 살벌하여 살아남을 종자 없다고 하여도 생물학적 본능은 살아있다.
이불밑 간섭말라는 노심초사가 육신의 히열적 디테일을 기뻐하는 모텔사장들 배만 불렸다.
이불밑 법치이탈이 언제인데 규범을 충족하는 동의서 구비하라는 것인지 씨앗의 조건이 힘들다.
뿌리는 데로 거두리라는 말씀의 진리가 아리송 하다.
급한데 이분법적 경계의 동의서 때문에 어먼짓 바이러스 창궐로 문지방과 후대의 안위가 걱정이다.
2023.1.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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