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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와 인륜.

박세욱. 2022. 12. 18. 18:09

93. 정치와 인륜.
한민족의 건국이념 홍익인간정신은 이웃의 배려이며 나눔이다.
햇고구마 삶아 바가지에 담아 울타리 건너 이웃과 나누었다.
돌아가는 바가지에 작은정성 담아 보내졌다.
여행길에 하루밤 신세는 어렵지 안은 인연의 배려였다.
민족의 동질성에 의한 이웃의 믿음은 하루밤의 동거를 인연으로 받아 들였던 것이다.
한민족의 끈끈한 생명력이다.
공동체의 사건과 사고는 십시일반으로 협력하여 해결하였다.
마을의 사건과 사고에 협력하는 동고동락의 공유가 그러하였다.
매사 긍정적 생명력은 "그만한 것이 다행이다."라는 산자의 이해가 우선하였다.

생산성의 어려움에는 스스로 찾아 챙겨주는 품앗이로 이웃을 배려하며 공존하였다.
살만한 집에 거랭뱅이 찾아오면 문간에 상차림으로 인연의 인정을 배려하였다.
탄생에는 산줄 앞에 흔적없이 필요한 물품을 가져다 놓았다.
탄생에 행여 부정하지 안토록 출입을 자제하고 덕담으로 말을 삼가하였다.
이승을 떠나는 길에 산자의 배려는 인정으로 나쁜것을 덜어냇다.
인연의 죄와 벌은 산자의 것으로 이해하였다.
이승의 인연은 죽음의 매듭으로 원한보다는 회한의 그리움이 되었던 것이다.
육십줄 과정에서 격으며 보았던 홍익인간정신 이다.
이것이 오천년 역사의 근본이었다.


사망은 공소권을 상실한다.
홍익인간정신은 죽은자에게 이승의 원한을 짐 지우지 안는다.
황망한 슬픔은 나누어져야 한다.
고립과 극한의 상황에서 인연의 배려와 감성적 나눔의 그리움이 필요하다.
오천년 역사의 줄기는 이웃과 나누는 수용적 민심이다
한민족의 정서에는 옭고 그름의 방어적 개념이 존재한다.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한다."고 하였다.
타의를 존중하고 인내하나 침해하면 치열하게 저항한다는 것이다.
말하기 어려운 이태원의 일백수십명 젊은생명이 구천에 있다.

망자와 인연을 위로하고 비극의 현장이 전이되는 피해를 막아야 한다.
책임과 위로가 필요하다.
국가와 국정의 책임에서 자유로울수 없는 커다란 상처이다.
국가적 사건과 사고에서 정치적 이해타산이 우선하는 역사가 안타까운 것이다.
국가의 성립과 통치는 인륜을 바탕으로 한다.
이웃이라는 관계의 성립에서 인륜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것이다.
공동체의 지배력은 인륜을 공유하는 민심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비극에서 슬픔을 공유하여 나누지 못하는 것은 홍익인간정신이 아니다.
책임의 소재에서 정치의 승패적 선입견으로 무시하거나 방관하는 것은 억압하는 것이다.

민주주의의 선택에서 대표권은 국가적 비극의 책임과 위로가 필요하다.
국가적 사건에서 정치의 양극화는 책임소재의 정치적 계산으로 진실에 우유부단 하다.
국민의 비극을 정치공학으로 우려먹는 실망과 또다른 방관의 실망이 대치한다.
비극의 주체를 상실한 무모한 인륜의 양극화 이다.
울타리 정치의 대결적 정치공학이 인륜의 비극을 우선할수 없다.
글로벌 지식과 문화를 공유하는 21세기의 국민정서를 무시하는 것이다.
비극의 해결에서 국민정서를 무시하는 선동과 방관의 정치적 권모술수는 문화와 지성의 판단을 받을 것이다.
민심의 선택은 지성으로 존중될 것이나 지나친 자기중심의 독선은 고립될수 있다.
세월호의 경험이 있다.

비극의 치유에서 양극화의 울타리에 집착하는 정치적 계산의 이해타산은 잘못된 문제의식 이다.

인륜의 절박함에서 집요한 선동과 의도적 방관으로 승패적 정치의 계산에 몰두하는 것이다.
전문적 시각에서 사건과 사고의 재발방지를 위해 진실을 정의해야 한다.
전문가의 개입으로 새벽닭의 진실과 부활의 의미에서 정리되어야 한다.
환생에서 구천의 원한은 이승과 저승의 관계를 암시하고 있다.
사고의 진실과 책임의 해결에서 생명으로 이해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국가적 사고의 관리에서 인륜과 정치적 책임은 미래를 위해 필요한 것이다.
반복되는 비극에서 제도를 만들고 관리하는 정치권의 직,간접적 책임도 물어야 한다.
21세기 지식문화사회에서 민심의 확인은 통신정보의 공유와 문화적 정서를 우선하여야 한다.

통신정보 시대에서 국가의 대표권은 일부의 논리로 성립되지 안는다.
다양성의 자유는 존중되어야 한다.
사건의 해결에서 민심의 인내는 국가를 우선하고 있다.
미래의 기대에서 문화와 지성의 충족을 인내하고 있다는 것이다
시대적 이해의 상실은 저항에 이를수 있다.
인내하며 소리없이 바라보는 민심이 무서운 것이다.
지성은 호수의 잔잔한 힘의 의지로 내제되어 있는 것이다.
터지면 막을수 없다.
용서와 관용에서 민심의 인내를 오판하지 말아야 한다.

시대와 운명을 이해하는 선비의 갓이 필요한 것이다.
살피고 또 살피라고 하셨다.
이것은 형벌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국정에서 정책적 승패의 개념은 매우 잘못된 것이다.
정치와 정책적 실무의 조율에서 합리적 결론을 위한 양보의 정도는 민심을 따르는 것이다.
의견수렴에서 이해의 확장은 국가의 미래와 선택의 기회를 인정하여 인내하는 것이다.
이것은 기대와 병행하는 것이다.
이득을 취하였으면 자신을 돌아보아야 한다고 하였다.

지나치면 옥쇄를 각오한 치열하고 처절한 반격의 운명을 감수해야 한다.

 

21세기에 지식과 문화의 독불장군은 없다.
비극과 해결에서 인륜과 지성의 인내를 강요해서는 안된다.
국정에서 선택과 위임은 책임이 따르는 것이다.
생명을 책임지지 못하는 통치의 개념은 없다.
인륜의 안타까움을 정치공학으로 계산할수 없다는 것이다.
국민적 사건과 사고의 비극에서 정치 공학적 집착과 방관의 권모술수는 잘못된 것이다.
선비는 민심에 따라 스스로 거취를 결정할수 있어야 한다.
양극화의 대결정치가 정치의 이성을 승패의 울타리에 가두고 있다.
민주주의는 다양한 정체성의 합리적 결론이 필요하다.

 

색깔이 분명하면 혼색의 결론이 쉽다.
이도 저도 안인 끼리끼리의 정치가 혼색의 명확성을 해치는 것이다.
만성화 된 양극화의 극단성으로 정체된 무의식의 울타리 정치가 정당의 모호성을 부추기고 있다.
승패에 집착하는 정치에서 민주주의와 정당의 정체성이 모호해 지는 것이다.
집권의 딜레마에 집착하여 늬것 내것으로 싸우다 모 하시는지 정체를 까먹는 것이다.
승패에 집착하는 양극화의 울타리 정치가 무리적 습성을 복원하고 있다.
무리적(깡패적)습성의 끼리끼리 하는 정치의 패쇄적 절대권력이 문제이다.
이것이 사건과 사고의 진실을 우려먹고 은폐하는 잘못된 선입견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국가적 비극의 해결에서 당사자의 문제해결이 무었보다도 필요하다.

 

전문지식의 개입이 우선하여야 한다.
진실의 정의와 상처의 치료이다.
정치적 판단은 마무리 후 민심에 맏겨져야 한다.
팽목항 사건을 우려먹다 민심의 지루함과 민망함으로 집구석 거덜난 경우가 있었다.
권위와 선동으로 민심을 끌고다니던 정치는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이다.
비극의 아픔을 길게 가져가는 것은 상처의 피해와 정치적 부담으로 남는다.
생명의 비극에서 일부의 선동적 막말이 한민족의 정서와 21세기의 문화를 해치고 있다.
자유는 이타적 절제가 필요한 것이다.
2022.12.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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