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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륜과 노동의 가치.

박세욱. 2022. 10. 18. 02:17

 

85. 인륜과 노동의 가치.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온세상을 뒤덥은 시대에 인륜을 말하는 것은 절박함으로 생명을 지키는 것과 같다.
돈과 자본에 저항하는 것은 이미 신의 계시에 도전하는 것과 같은 것이 되었다.
인륜과 민주주의의 발전은 지배력의 폭력과 억압으로 부터 생명과 자유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인류의 역사와 문화는 선지자의 계시에 의해 발전되었다.
먹고,입고,자는 생명유지의 기초적 삶의 형태에서 정신문화를 발전시켜 왔다.
이러한 삶은 조건은 대부분 자연의 존재에서 물질과 질서를 구하는 것이다.
대자연의 섭리 인륜이 자본에 종속되어 잊혀지고 있다.
선과 악은 정신문화의 주체로 인륜을 지키고자 하는 선지자들의 배려이다.
선지자께서 인간의 지적 분별력으로 생명의 질서를 지키고자 계시하여 선처한 것이다.

자본과 권력의 탐욕은 물질의 자연순환에서 벗어나 경쟁의 생산성을 이유로 사유화 되었다.
자본의 영향력은 권력의 탐욕을 자극하였다.
사회질서에서 물질과 자본의 영향력은 지배력의 주체가 되었다.
물질문명의 진화에서 자본권력으로 대중을 움직일수 있는 시대에 이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산업화를 위한 도시화는 공동체의 생산성을 요구하였고 이것의 기초는 노동력 이다.
봉건사회와 왕정사회의 국가통제를 지나 사유 재산권이 인정되는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경쟁사회로 발전하였다.
경쟁을 통한 생산성 증대는 산업사회의 절정기를 이루었고 생존에 필요한 의식주의 조건은 발전되었다.
사회 구성원은 산업발전으로 인류의 윤택을 염원하며 자본주의 시장경제에 동의하였다.
기업경쟁력과 국가경쟁력 향상을 위해 희생하였다.

시장경제 경쟁을 통한 생산성 증대 요구는 자본 집약산업으로 발전하여 시대의 주체가 되었다.
문제는 과실공유에 있었다.
자본권력의 지나친 탐욕은 차별의 희생으로 생산성을 요구하고 있다.
자본과 생산성의 성장에서 과실의 분배는 인간의 지배적 욕망의 탐욕으로 동의와 희생의 대가에 인색하였다.
자연의 순리를 충족하는 선과 악의 분별력은 자본과 권력의 시류에 모호하여 정의로움을 선처할수 없게 되었다.
인륜은 차별의 불편한 시류에 민심으로 저항할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자본의 영향력과 노동의 분배에서 대중의 욕구를 관리하기 위한 합리적 지배력의 역할은 중요한 것이다.
비대해진 사회는 생산과 분배에서 평등한 질서를 위한 문화가 필요하다.
생산성 증대로 비대해진 사회는 물질의 생산성과 분배에서 민심이 이해하는 범위를 충족하는 제도가 필요하다.

선과 악의 분별력으로 인류의 생명과 자유를 보호하고자 하였던 선지자들의 염원은 노을빛 되어 어둠속으로 지워
지고 있다.
자본은 인류의 생명과 자유를 보장하지 않았다.
지배를 위한 권력유지 수단으로 이용되고 있다.
온세상이 자본집약 수단을 위한 시장경제 경쟁논리로 자본의 거대한 태풍을 만들고 있다.
국경이라는 경계는 자본경쟁의 촉매가 되고 있다.
국가경쟁력 향상과 자본의 낙수효과를 이유로 사회적 또는 경제적 약자의 희생이 강요되고 있다.
인륜의 내적 평화보다는 지배력의 우월감과 운명적 소외감의 불평등 한 차별이 용인되는 사회이다.
재벌과 대기업이 선과 악을 구별하는 이시대의 선지자가 되어있다.

시장경제는 모든것이 통하는 무한질주의 괘도없는 기관차 같다.
자본의 권력이 먹고,입고,자고 사고하는 모든 시간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눈 뜨면 자본주의 시장경제이고 재벌과 대기업 이다.
얼마전 실업률과 최저임금 문제로 말씀드렸다.

[최저임금 문제가 경제문제 인지 사회문제 인지 또는 인륜의 문제 인지 정리가 필요하다.
최저임금에 관한 토론이 6,13 지방선거와 계절적 또는 상황적 취업변동에 따른 통계에 뜨거워 지고 있다.
2018년4월 시각으로 우려할 측면이 있기는 하나 과거의 자료와 비교하여 볼때 미비한 점을 보완하는 정도의
개선이 필요하다.
최저임금 인상은 빈부격차 또는 비정규직 문제와 부의 세습 등 국가이익의 정당한 분배에서 시작한 것이다.
그동안 국가 생산성에서 기업이 노동의 가치를 자의적으로 해석하여 자본을 우선하였다.
산업화와 생산성 분배에서 형평성의 기준을 통일하지 않은 관계로 임금격차가 심화되었다.
제품의 생산성을 위한 노동의 가치에서 이해의 상충이 발생하고 있다.
정치와 사회적 영향력의 가치가 우선하여 인륜의 가치에 잘못된 영향을 끼치고 있다.

잘먹고 잘사시는 분들은 대대손손 풍족하시고 못먹고 못사시는 분들은 대물려 발바닦 땀나야 쓰겠습니까?
문제의 시작은 여기에 있었던 것이다.
애초에 가지신 분들께서 조금씩 양보하여 격차를 줄여 주셨으면 부작용 없이 자연스런 임금제도가 정착되었을
것이다.
그러하지 못하여 어린자식들 여유있는 분들 처럼 잘 먹이고 잘 입히지 못하고 학원 못 보내는 것이다.
전생의 잘못으로 자식들 보기 민망한 것 하소연 하는 것이 최저임금 인상이다.
중소기업 제품값에 사람답게 살수있는 노동의 가치가 인륜을 기준하여 평가되어 있지 않은 것이다.
대기업이 제품공정의 전부를 책임지고 생산하지 않는다.
비정규직 또는 열악한 환경에 있는 협력업체 납품받아 생산하고 있다.

국가 생산성의 이익분배에서 자본과 대기업의 선점은 제도적으로 지나치다는 것이다.
사람의 가치 노동의 가치는 태어날 때 기본값이 주어지는 것이므로 특별한분 몇분 빼고 별차이 없는 것이다.
노동의 형평성을 통제하기 위해 일부 귀족노동자들을 만들어 열악한 삶의 차별을 호도하는 것이다.
분배의 노심초사가 두려워 발등에 불 끄느라 초가삼간 불태우는 것이다.
최저임금 조정으로 임금격차 해소하여 남들 쓸때 구경만 하던것 흉내라도 내자는 것이다.
노동의 인륜적 가치에서 호주머니 사정으로 내수 활성화에 도움되겠다고 하면 영세업자 다 죽는다고 한다.
부자증세 하여 임금격차 해소에 쓰겠다고 하면 포퓰리즘 이라 한다.
차별의 생산성에 잔소리 말고 자본시류를 인정하고 운명으로 이해하라는 것이다.
자본과 권력이 하라는 데로 하고 살으라는 것이다.

어그제 최저임금 인상해 놓고 내수 활성화 효과가 없다고 한다.
보릿고개가 무었인지 모르는 분들 말씀이다.
빌려 쓴것 갑아야 하고 쌀 뒤주는 체워놓고 써야 되는 것이다.
그동안 바닦 긁고 살은것 모르는 것이다.
요사이 치킨값에 배달료 2천원 추가책정 하겠다고 한다.
이유가 있다.
기존의 산업구조에서 합의 하에 책정된 소비자 가격에 통신업자들이 제 멋데로 끼어들어 이익을 분할하였다.
통신의 도움으로 전체 치킨 판매량이 배달비 떼어주고 남을 만큼 증가하였습니까?
소비의 풍선효과와 배달앺 사용료로 열악한 소상공인 문제가 최저임금에 걸림돌 되고 있다.

선점과 치부를 우선하는 차별의 문화가 상업 또는 산업의 생산성 공유를 무시하는 것이다.
고등학교 졸업하고 대학 말고는 선택할수 있는 삶의 방법이 협소하다는 문제도 있다.
지식의 필요는 문화발전을 통한 사회발전 이란 큰틀에서 이해한다.
지식과 문화의 대세에서 늘어난 욕구를 만족할수 있는 삶의 터전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책으로 20년 살면 학자인데 자장면 20년 만들면 중국집 주방장 이다.
둘다 도사인데 도사 대우도 직종 나름이다.
존재에서 규범의 이해를 충족하는 행복의 조건이 다양해야 선택이 자유로울 수 있다.
한정된 직업만이 삶을 윤택하게 한다는 고정관념이 있다.
우리사회를 구성하는 수많은 직업과 삶의 사고방식은 존중되어야 한다.

공공일자리 80만개 만들어 청년실업 해결한다니까 모두 그곳에 만 눈 돌아가고 있다.
중소기업 전문직 육성하여 국가관리로 대기업 수준의 성과급 제시하면 어떨까요?
눈 돌아올까요?
무모한 경쟁의 피해를 감수해야 하는 젊은이들의 기회와 미래를 수용할수 있는 사회 씨스탬이 절대 부족하다는
것이다.
직종별 최저임금 제도와 지역별 최저임금 제도는 최저임금 제도의 기본설정 하시고 하는것이 옭은 것이다.
기피직업과 지역갈등의 문제가 있다.
주유원과 경비원은 나이드신 분만 하라는 법 있습니까?
농촌일 힘들다.

가초 인프라 또는 산업에서 절대성의 관점으로 부담할수 있는 방법을 찾아봐야 할것이다.
건물 임대료도 고정식 말고 입주한 업체의 소득비율로 하면 어떻겠습니까?
건물주 라고 장사가 되든 말든 뒷짐지고 임대료 만 챙겨가면 되겠습니까?
임차인은 건물주 고객인데 같이살고 같이 죽어야 하는 것이다.
최소한 건물 앞에서 홍보지 라도 나누어 주는 성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오죽하면 이렇게 라도 하겠다고 하시겠습니까?]

위 문제제기에 대해 어떠한 이해가 있었는지 잘 알지 못한다.
공감하셨다면 이싯점에서 노동과 인륜을 뒤돌아 보셨으면 한다.
삶의 윤택은 자본 또는 물질이 절대가 아니라 내제된 인륜의 잠재력이다.
민심의 인륜은 공정과 형편성과 차별의 불편함으로 평등을 요구하는 것이다.
최저임금 문제는 사람보다 자본이 우선하는 시대의 제도나 삶의 차별에 대한 경고이다.
일상의 모든것이 힘들고 피곤한 물질의 경계에 놓여 있다.
물질과 권력의 사슬에 구속되어 공유와 공존은 없다.
권력과 탐욕의 이기주의와 물질적 욕망에 지배당하는 인륜의 저항이 있다.
이시대가 요구하는 헤어날수 없을것 같은 물질과 인연의 책임감에서 자유로울수 있기 바라는 것이다.

가능하면 많은 사람들이 발전된 경제적 혜택을 누릴수 있는 제도가 필요하다.
공유와 공존에서 새로운 제도의 요구는 지나친 시장경제의 무한경쟁에 지쳐 고단한 삶의 여유를 찾고자 하는
지적요구 이다.
문화적 욕구에서 대다수가 요구하면 그렇게 사고하고 타협하는 것이 민주주의 이다.
자본의 분배에서 개별적 경제력 또는 경쟁력 향상은 기업이나 국가 경쟁력에서 나빠질 이유가 없다.
안정된 사회가 발전한다.
자본과 권력에 집착하는 과거의 관성에서 대중의 이익이 주체가 되는 새로운 사고의 제도개혁이 필요하다.
사회개혁에서 주춤거리는 것은 일방적 기업 지배구조의 획일적 운영과 기업의 윤리적 사고를 잊은 것이다.
자본의 지나친 시장경제 선입견 이며 편협한 자본의 기득권 유지이다.

산처럼 쌓아놓은 물질의 사고에서 내적사고의 행복추구 욕구는 인륜의 순환적 이고 필연적 요구이다.
지식과 문화의 욕구는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무한경쟁으로 발생하고 있는 기회와 빈부격차의 피해를 개선하기
위해 새로운 시대를 요구하는 것이다.
전체 1~2%의 행복보다는 보통의 삶으로 보편성을 충족하는 다수의 만족을 요구하는 것이다.
다수의 성취적 만족을 추구할수 있는 실용주의적 삶의 진화이다.
이것이 인륜의 욕구이며 진화의 잠재력이다.
생명의 존재를 기준하는 인륜은 인류전체의 생존과정에서 필연적 조건으로 공유되어야 하는 문화이다.
인륜의 공유는 인류의 진화와 역사에서 삶의 원천이다.
사회개혁에서 시간의 시험은 있을수 있으나 본질적 원천 인륜은 대중의 삶으로 지켜지는 것이다.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역할은 물질충족으로 인류발전에 기여하였다.
물질문명은 영원하지 안는다.
문명의 진화는 보편성을 충족하는 민심의 요구와 시간을 성찰하는 문화적 역사로 미래를 준비하는 것이다.
대다수가 개선을 요구하는 불편하고 부당하고 불합리한 문제들이 진화의 촉매가 된다는 것이다.
지식과 문화발전으로 증가하는 삶의 질 향상 요구가 무었인가 냉정한 시각으로 살펴봐야 한다.
문제는 제시되었다.
정신과 물질의 공유와 공존이다.
자본의 관성과 권력의 인습으로 정신과 물질의 공유와 공존이 자라잡기 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
진보한 지적수준으로 사회개혁의 시간은 충분하게 극복할수 있는 것이다.

물질의 공유는 자본의 순환을 의미하는 것이다.
자연과 물질에서 생산성의 공유이다.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충분한 생산성을 정보통신을 통하여 공정하게 분배될수 있는 관리정책이 필요하다.
공적자금 인프라의 확장이다.
자본관리를 통해 시장경제의 모순인 사유자본의 사회지배를 완화해야 한다.
통신을 통한 정보공유로 최적 또는 최대 생산성 유지가 필요한 공유경제의 데이터 산업이다.
자본권력 다툼의 완화 내지는 해소하는 것이 자본 대중화 이며 공유경제의 목적이다.
정보통신 발달로 5G나 블랙체인 등 기업체제에 의존하지 않는 자본의 무한관리가 가능한 시대이다.
인류가 탄생하고 생존하여 문화를 진화시키는 것은 미래가 준비되어 있기 때문이다.

경제주기 환율주기 처럼 인륜과 문명의 진화도 앞으로 나아가는 매듭의 주기가 있는 것이다.
존재에서 발명하는 것이 아니라 발견하는 것이다.
인류의 미래는 존재하는 것으로 무었을 어떠한 방법으로 선택하여 나아갈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인류가 공감한다면 시간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물질지배에 저항하는 문화와 지성의 선택은 인류의 미래를 암시하는 사고이다.
인습은 평화로움과 불편함으로 변할수 있다.
부족할 때와 충분할 때의 사고가 같을수 없는 것이다.
행복과 불행의 척도가 상대적 이든 절대적 이든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인류의 행복을 실현하지 못 하였다.
차별의 불편함을 개선하는 부의 절대평가 범위는 확장되어야 한다.

시장경제 경쟁논리의 자본집약 산업이 물질개발과 생산성 증대에 지대한 기여를 하였다.
물질문명은 나누어 지키는 공유하여 공존하는 미래를 위한 진화의 역사이다.
시장경제의 생산성 확대는 공유와 공존의 미래를 위한 준비였다는 것이다.
공유하여 공존하는 것은 여유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2022.10.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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