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사사로움.
존재와 문화. 본문
82. 존재와 문화.
존재는 생명이고 문화는 증거이다.
10월 3일 개천절은 한반도 민족의 건국 기념일 이다.
한반도 주변의 생명과 존재의 증거에서 하늘의 뜻에 따라 새로운 시대의 문이 열렸다.
기원전(BC) 2457년 홍익인간(弘益人間)과 이화세계(理化世界)의 시작이었다.
홍익(弘益)은 널리 또는 크게 세상을 이롭게 한다는 인륜적 주체의 질서이다.
이화(理化)는 사물의 정당하고 당연한 논리를 우선하는 자연법칙의 질서이다.
최초 한반도 국가 고조선의 건국설화에서 생명의 존재와 공동체의 문화적 질서를 규범으로 정한 것이다.
시대의 지배력이 생명의 절대성과 이해타산의 보편적 가치에서 인륜을 우선하는 것이다.
오천년 전 한반도 인류의 역사가 필요로 하였던 가치이다.
달에는 절구통의 대칭에 있는 토끼 두 마리가 방아를 찢고 있었다.
암스트롱의 발자국에 놀란 토끼는 절구통 타고 다른 우주로 떠났다.
인류의 지식은 오천년 전의 상상과 다른 세계관 또는 우주관으로 무한 확장하였다.
선지자의 교훈을 우선하는 인류의 역사는 선의 역사이다.
오천년의 시간에 인류의 인륜적 시각은 사물의 정당하고 당연한 자연의 법칙으로 확장되어 있어야 한다.
사회의 진화에서 자유가 전제된 국가와 공동체의 질서는 보편성의 규범이 필요하다.
타의의 간섭이나 침해로 부터 나의 자유를 지키기 위한 합리적 합의 질서이다.
대자연의 질서에서 나 라는 존재와 공동체의 시대적 문화를 공유하는 한계의 설정이다.
공동체의 규범은 생명의 생존을 원천으로 이루어지는 문화적 합의가 된다.
지배력의 문화적 정의는 공동체의 다수에서 합리적 합의로 결정되는 최소한의 규범을 집행하는 것이다.
지배력에 위임된 공동체의 질서는 개별적 생존과 자유를 보장하기 위한 최소한의 규범이 되어야 한다.
선지자께서 말씀하신 선의 교훈은 어떠한 경우에도 생명이 우선하는 것이다.
공동체의 규범은 생명의 생존을 원천으로 이루어지는 시대의 문화적 합의가 된다는 것이다.
21세기 통신사회의 공유에서 정치적 경계의 지정학적 이유와 시대적 문화의 갈등으로 인륜의 문제가 있다.
시간 또는 사물과 사건의 이해에서 문화적 진화의 필연은 생명과 상호존중의 원천이다.
문화의 진화에서 과거의 시간은 교훈과 관성일수 있으나 시대적 문화의 대세가 될 수 없다.
선과 악 또는 옭고 그름의 경계는 문화적 이해에서 시간의 변화가 있다.
행위와 관습에서 문화적 이해의 범위는 변한다는 것이다.
생명의 절대적 존재에서 지식과 문화적 진화는 자유와 창의력을 위한 것이다.
미래는 규범의 강재가 아니라 진보한 지식과 문화적 역량의 사회가 된다는 것이다.
법치는 시대적 문화와 민심을 수용하는 것이다.
법치는 시시비비의 적용에서 최소한의 규범으로 민심의 지식과 문화적 자율성을 이끌어내는 것이다.
21세기 통신사회의 문화적 진화는 민주주의와 자유를 우선하는 글로벌 대세의 영향력에 있다.
냉전의 관성과 문화적 격리의 경계에서 무력과 억압으로 글로벌 문화의 대세를 막을수 없는 시대이다.
이념적 관성에 있는 지정학적 경계의 갈등과 문화적 격리의 시대가 아니라는 것이다.
21세기의 역사는 글로벌 지식과 문화의 공유이다.
홍익인간과 이화세계는 회자되어 21세기 통신사회의 문화적 소양으로 충분한 것이다.
세계의 위정자들은 선(인륜)을 우선하는 글로벌 통신사회의 문화적 대세를 이해하여야 한다.
인류의 진화와 역사에서 새로운 시대적 대의를 이해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생명의 진화는 영속적인 것이나 역사는 문화적 매듭으로 새로운 시대를 창조할수 있는 것이다.
21세기 초입에서 인류의 역사는 또 다른 매듭으로 새로운 시대를 요구하고 있다.
규범적 사회를 지나 대자연의 질서를 충족하는 자유와 창의력의 시대이다.
글로벌 지식과 문화의 공유에서 생태적 진화의 진리 합리적 합의의 선택을 존중하는 민주주의 이다.
자유의 의지에서 타의를 존중하는 이타적 문화의 공유이다.
21세기의 이타적 문화에서 다수의 합의는 기회의 불평등과 이분법적 차별을 보호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
생명의 존중에서 이분법적 문화의 관성은 개선되어야 한다.
존재의 진리에서 불평등의 차별을 해소하여 널리 또는 크게 이롭게 하라는 것이다.
생명과 사물의 존재에서 정당하고 당연한 자연의 법칙을 존중하라는 것이다.
정치,경제,사회에서 인륜의 바탕이 되는 민생과 민심을 우선하라는 것이다.
지배력의 문화적 정의로 냉전의 지정학적 경계와 문화적 격리의 차별을 개선하라는 것이다,
민초들의 삶의 일상에서 국경의 무력적 경계는 글로벌 문화의 공유로 가까운 시간에 해소될 것이다.
역사의 진화에서 국경의 경계는 영속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단절된 생명에 집착하는 역사의 성취는 한 세기를 넘지 못할 것이다.
21세기 초입에 새로운 시대의 진통으로 인륜의 저항과 고통이 있다.
버마, 아프가니스탄, 우크라이나, 요사이 이란에서 글로벌 문화의 요구가 고통을 받고 있다.
자유와 창의력을 요구하는 민주주의의 대세에서 이념과 문화적 격리의 불평등이 충돌하는 것이다.
역사와 문화적 진화의 필연으로 불어오는 바람은 막을수 없다고 하였다.
문화적 진화의 대세는 울타리 치고 악다구리 하여도 시간의 절대성을 막을수 없는 것이다.
새로운 시대의 요구를 무력과 폭력으로 억압하는 것은 내것에 집착하는 고립된 문화의 조급함 이다.
인류의 진화에서 21세기의 문화적 변화는 하늘의 문을 열고 있다.
버마(미얀마)의 비극은 시간의 흐름에도 해결책이 나오지 안고 있다.
쿠데타의 오판이 글로벌 지식과 문화를 공유하는 시대적 흐름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인류의 자유는 미지의 진화에서 여행의 본능으로 표현하고 있다.
진화는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자유로운 창의력의 욕구이다.
지식과 문화의 진화에서 강제와 억압으로 통제된 규범의 욕구불만은 본능으로 저항할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것이 진화의 진리이다.
진화하는 지식과 문화를 내것에 집착하는 편협한 권력의 울타리에 가두려 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글로벌 지식과 문화를 공유하는 지성은 폐쇄된 권력과 문화적 격리의 불평등을 이해하고 있다.
세월에 미루어 생명과 인륜의 고통을 방치하는 것은 민족독립의 주체를 자처하는 지배력의 덕목이 아니다.
21세기의 지성을 풍선에 가두어 누르면 터진다.
남녀의 이분법적 갈등도 마찬가지 이다.
불평등의 저항과 희노애락의 감성은 남녀의 차별이 없다.
사회가 책임질수 없는 생명의 잉태에서 사랑의 책임은 같은 것이다.
2천년 후 재림을 예언하신 것은 죄와 벌이 아니라 새로운 시대의 정립을 위한 계시가 필요한 것이다.
생명의 선택과 탄생의 숭고함에서 지식과 문화의 분별력은 필요한 것이다.
혈육의 집착에서 씨앗의 문지방 경계와 옴 박지(웅자배기)의 분별력은 신중함이 필요한 것이다.
가족의 인연은 하늘의 뜻에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아프간의 인륜이 역사의 소비를 요구하는 시간에 이란에서 권력의 억압으로 생명이 희생되었다.
그리움의 상처와 인연의 단절은 누구에게나 아픈 것이다.
이란의 역사에서 40년 전 히잡의 착용은 자유였다고 한다.
시대의 문화적 욕구를 충족할수 없는 규범으로 자유를 억압하는 것은 불평등의 이유이다.
선악과 죄와 벌이 아닌 옭고 그름의 문화적 규범은 최소화 되어야 한다.
자유와 욕구의 충족에서 글로벌 지식과 문화의 공유를 이해하여야 한다.
문화적 대세의 욕구는 개인의 사사로운 선택이 아니라는 것이다.
지배력의 존재에서 문화적 이해의 범위를 이탈하는 규범은 민심이 저항하는 정치적 이유의 갈등이 된다.
선을 우선하는 종교의 이해에서 이분법적 갈등은 시대적 문화의 요구로 희석되어야 한다.
선지자의 계시에서 새로운 시대는 시간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우크라이나의 전쟁은 통치권의 실리보다 냉전의 경계에서 정치적 명분의 딜레마에 있는것 같다.
무력의 경계는 민초들의 삶에서 글로벌 문화의 공유로 희석될수 있다.
우려되는 것은 현실에서 생각할수 없었던 파괴적 핵무기의 사용이다.
고립과 위협의 감정적 설정이 인류의 비극에 이른 역사가 있다.
역사는 시간을 필요로 하는 것이기도 하다.
21세기는 글로벌 지식과 문화를 공유하는 새로운 시대로 하늘의 문을 열어야 한다.
2022.10,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