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사사로움.
생명과 문화의 공유. 본문
86. 생명과 문화의 공유.
고립된 문화의 격리에서 소통의 한계로 발생하는 자유의 억압과 인륜의 비극이 있다.
민족과 국경의 경계에서 문화적 이질감으로 발생하는 경쟁과 차별의 시대적 문제이다.
냉전과 지정학적 이유의 역사와 문화적 격리의 이질감은 지배력의 분산이며 우월적 경계의 대립이다.
경쟁의 전제를 이유로 발전한다는 논리는 자유와 창의적 의식의 문제이다.
탐욕의 차별은 의식주의 충족에서 부족한 물질의 생존경쟁이다.
인류의 진화에서 물질문명과 산업사회는 생존에서 부족한 물질과 지식의 충족이다.
의식주를 해결할수 있는 자원의 확보에서 기후와 노동의 위기에 대응할수 있는 저장의 정신적 만족이었다.
물질문명의 관성과 집착은 탐욕과 치부의 차별에서 상대적 만족의 우월감을 우선하는 시대이다.
인류의 진화에서 필연적 욕구 생존조건 해결은 가능한 것이다.
태초의 물질은 생명에 비례하여 풍족한 것이었다.
물질은 생명의 물리적 다변성에서 존재를 위해 마련된 신의 배려이다.
인류진화의 진리는 우주와 생존조건의 만족에 있다.
물리적 생존조건의 잡착은 탐욕의 정신적 만족으로 시간과 감성의 지루함을 충족하려는 것이다.
인류의 정신세계가 생명에서 물질을 우선하는 문화의 시간에 있다.
정신적 성취의 만족에서 물질에 집착하는 시대이다.
인류의 진화와 문화에서 물질은 생명의 가치부여로 존재할수 있다.
생명으로 존재하는 생태적 환경의 물질충족에서 육신의 만족은 물리적 한계가 있다.
물질을 우선하는 성취에서 영원할수 없는 정신적 만족의 지루함이 존재한다.
생명은 영속적인 것이나 물리적 욕망은 쇠락의 순환으로 존재한다.
생명이 필요로 하는 물질과 물리적 현상은 생태계의 질서와 요구에 의해 변화하는 것이다.
육신은 영원할수 없다.
물질의 존재에서 형이상학의 시각과 감각적 논리에서 물리적 존재의 절대성으로 생명을 규정할수 없다.
물리적 실체는 결국 생명에 의해서 존재한다는 것이다.
생명은 영원한 것이며 감각적 실체의 모든것을 수용하는 것이다.
우주와 생명은 물질의 감각적 결론으로 존재하지 안는다.
생태계에서 물질로 존재하는 가치는 생명의 요구로 변하는 것이다.
생태계의 물리적 현상은 대자연의 합리적 질서에서 생명의 가시적 또는 감각적 실체를 위한 자원이다.
생태계는 물리적 현상의 존재가 아니라 생명을 공유하는 질서의 상호작용 이라는 것이다.
생명과 진화의 진리이다.
생태계의 질서에서 인류 또는 형체로 유지되는 생명체는 독립된 절대성의 개체가 아니라는 것이다.
아마존의 나비 날개짓이 태풍이 된다고 하였다.
지구 생태계는 다양성을 수용하는 유동적 존재로 진화의 절대성이 있다.
감각과 문화의 실체는 변한다는 것이다.
감각과 문화는 동행하는 진화의 실체이다.
대체로 인류의 지식은 문화를 공유하여 진화하나 동식물은 암시적 질서의 감각으로 진화한다.
생태계는 생명의 원초적 감각을 공유하여 진화하고 인류는 지식이 수용하는 문화를 공유하여 진화한다는 것이다.
도구와 문자의 역사가 그렇다는 것이다.
인류가 상상하는 한계에서 존재하는 것은 변한다는 것이다.
선지자께서 이천년 후 재림을 말씀하셨다.
생태계의 질서와 문화의 진화를 말씀하신 것이다.
죄와 벌이 아니라 시간의 변화에서 새로운 신의 규범이 필요하다는 암시가 되는 것이다.
21세기 인류의 문화는 글로벌 통신사회에 진입하고 있다.
인류의 진화와 역사에서 지역과 민족적 폐쇄성을 해소하는 글로벌 지식과 문화를 공유하는 시대에 있다.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경쟁과 패권주의의 관성으로 민족과 국가의 존재감을 의식하는 문화가 현세이다.
지식과 문화의 진화는 단절되지 안는다.
오히려 진화의 관성은 과거의 시간과 비교할수 없는 속도에 있을 것이다.
인류의 21세기는 미래시대의 문명을 상상할수 있는 시간이 되어야 한다.
물질의 총족을 우선하는 문명의 집착에 벗어나면 다른선택의 시간에 존재하게 된다는 것이다.
신께서 사과나무를 심어 인간세계에 선택을 맏긴 것이다.
신의 영역은 생명체가 선택할수 있는 우주의 다양성을 창조하는 것이다.
신의 창조에서 인류의 선택은 운명으로 이해할수 없는 무한에 있다.
물질의 형이상학과 신의 선처를 기대하는 운명에서 생명의 기우적 믿음이 있다.
생명의 존재는 선의 지배를 요구하는 종교와 문화의 실체이다.
현세에서 인류가 선택한 기우적 논리의 운명으로 우주의 존재 즉 신의 영역을 이해할수 없다.
생명의 물리적 결합에서 최소한의 자원으로 자아의 정신적 만족을 우선하는 선의 진화가 잊혀지고 있다.
물질경쟁의 시대에 자아적 정신의 만족이 소외되는 것이다.
물질 지배력의 우선에서 차별의 상대적 만족에 집착하는 것이다.
생존과 물질에서 공존의 실용주의 보다 경쟁의 차별을 우선하는 성취적 만족을 의식하는 것이다.
현세의 삶에서 대자연의 질서 보다 차별과 우월적 인습의 평가를 우선한다.
내면의 자아를 우선하는 선의 가치 보다 물리적 또는 형태적 시각의 차별에서 만족을 성취하는 것이다.
선을 행하는 것이나 물질의 차별로 만족하는 것이나 행복은 정신적 성취에 있다.
탄생에서 움켜쥔 손의 이기는 죽음으로 놓여진다.
생태계에서 물리적 형태의 결정은 대자연의 암시적 질서를 공유하여 존재하는 것이다.
죽음에 이르러 물질의 형태를 벗어나 생명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문명은 지식과 문화의 시대적 대세에서 시류와 인습의 관계로 합리적 주체를 설정한다.
인류의 미래는 내가 아니라 역사와 문화의 공유에 있다.
내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 하였다.
일상에서 불가의 가르침을 따르며는 생명의 진리를 얻는다고 하였다.
그리스토께서는 선의 진리를 말씀하시고 사랑과 회계의 용서에서 악의 행위를 벌 하였다.
부처께서는 무의 비움으로 선의 생명을 말씀하셨고 문수보살의 예리한 칼날은 악의 만행을 경고하였다.
선지자께서는 선(인륜)의 하나를 말씀하신 것이다.
내가 생명이요 가르침의 진리가 선이라는 것이다.
인간의 탐욕이 악을 빙자하여 선을 침해하고 울타리에 가둔 물질문명의 시대를 돌아보아야 하는 시간이다.
물질을 우선하는 시류의 성취에서 인류의 존재와 진화의 근본 선(인륜)의 존재가 미약한 것이다.
물질문명은 반드시 생명의 시간으로 진화한다.
생명의 시간은 물질의 탐욕에서 벗어나 정신의 충족으로 감각의 지루함을 해소할수 있다.
선지자께서 인간의 운명에 개입하지 안는 것은 선택에서 다양성의 무한한 창조가 있다는 것이다.
물질은 탐욕과 치부에서 생존의 조건을 충족하는 분배의 만족으로 공유되어야 한다.
물질의 보편성은 필요한 것이다.
진화의 법칙에서 물질문명의 관성은 시간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종교의 관점도 태초의 탄생에서 인류의 존재와 선의 지식으로 진화하는 문화의 보편성을 고려해야 한다.
문명의 진화에서 글로벌 사회의 지식과 문화를 공유하는 것은 생태적 합리성의 확장과 충족이다.
생태계의 암시적 또는 감각적 진화와 인류의 문화적 진화는 시간의 개념을 이해해야 한다.
문화적 진화의 시간에도 생태계의 감각과 암시적 질서의 개념은 생명의 절대성으로 존재한다.
격리된 문화의 고립은 생태적 질서의 합리적 결론에서 다양성의 충족과 의지의 자유를 구속한다.
생명의 개념에서 합리성이 결여된 규범의 강제는 문화의 공유와 생명의 자유에서 욕구의 한계가 있다.
고립과 이질적 문화의 경계는 감각과 암시적 생태계의 순리를 지배할수 없다는 것이다.
지배력의 통치에서 규범의 시대를 지나 문화적 질서의 이타적 이해가 필요하다.
다양성의 존중과 자유는 생태계의 합리적 질서에서 생명의 의지를 표현하는 것이다.
지식과 문화의 진화는 생명의 의지와 다양성의 합리적 결론을 위한 생태계의 개념을 수용하는 것이다.
민주주의는 생태계의 합리적 질서를 수용하는 체제이다.
공동체의 규범은 타의에서 자유의 보편성을 지키기 위한 방법이다.
글로벌 문화의 타의는 선지자의 가르침 선(인륜)을 기준하는 것이다.
물질문명의 정점에서 물질 또는 물리적 만족과 정신적 만족의 이해는 확장되어야 한다.
생명의 이해에서 시류의 대세에 집착하는 물질의 정신적 만족은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물질의 존재에서 생명의 가치를 우선하여 공유하는 문화적 아쉬움은 미래를 위한 진화의 조건이다.
우주와 신의 가르침에서 생태계와 생명의 존재를 이해하여야 한다.
생태계의 다양성과 존재의 자유가 진화의 합리적 결론에 이르는 조건이 된다는 것이다.
인류역시 생태계에 예속된 생명체 이다.
민주주의는 다양성과 표현의 자유에서 체제의 합리적 결론을 유지할수 있다.
획일적 문화의 격리와 자유를 침해하는 의지의 강요는 생태계의 합리적 질서를 왜곡하는 것이다.
21세기의 초입에서 지배력의 패권과 물질탐욕의 성취적 인습으로 차별의 인내를 시험하고 있다.
전쟁과 격리된 문화의 이질감과 생태계의 합리성이 결여된 지배력의 독선으로 다양성과 자유가 힘들다.
기우적 운명에 기대여 사랑과 회계와 자비와 용서의 인내를 시험하는 것이다.
적당히 하시라는 것이다.
2022.10.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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