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사사로움.

지적사회의 민심. 본문

나의 글방.

지적사회의 민심.

박세욱. 2022. 10. 13. 20:42

84.지적사회의 민심.
진보와 보수의 순수성은 무었인가?
정치는 현실이며 진보든 보수든 민심으로 정치적 영향력을 가늠한다.
시대정신에 부합하는 논리와 행위로 민심과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 정치다.
우째튼 시대정신의 이해에서 옭고 그름으로 판단하는 민심의 동의가 합리적 합의의 주체이다.
진보든 보수든 민생과 민심의 대세를 도외시 하는 것은 진영과 지역정치의 조직사회에 의존하던 과거정치의
고정관념에 빠져있는 것이다.
정치의 고정관념에 억매인 획일적 사고는 민생을 우선하는 민심의 이해에서 시대적 감각이 둔한 것이다.
글로벌 정보통신의 발달로 변화하는 지식사회에서 진보나 보수의 개념적 유연성은 충분히 존재한다.
진영정치 라고 하여도 극명하게 구분된 경계가 아니 라는 것이다.

이념적 사고의 정치적 선택에 억매여 민심에 반하는 판단을 하는 것은 현명한 정치의 분별력이 아니다.
현실정치에서 민생에 기여하는 가치관 정립으로 비로소 정치적 신념을 가질 수 있다.
정치인은 학문을 통하든 일상의 경험을 통하든 민심에 의하여 개별적 생존으로 탄생한다.
스스로의 성취이며 이러한 신념의 자유는 순수한 것이다.
다양성을 수용하는 민주주의 체제에서 진보적 신념이든 보수적 신념이든 선택은 개별적 사고의 자유이다.
정치는 동질성의 구성으로 시대적 주체에 도전한다.
과정에서 정치적 신념의 표현은 방법의 디테일에 따라 민심의 방향에 역할을 할수있다.
대의 민주주의의 주체는 보편성을 추구하는 신념과 지성의 믿음에서 토론과 논쟁으로 설정한다.
민주주의는 하나의 가치관이 아니라 다수의 가치관을 존중하는 질서이다.

인류의 진화에서 올바른 분별력의 확보이며 심성이든 실학이든 민심과 동행하는 행위가 되는 것이다.
민생을 우선하는 올바른 정치적 신념으로 여타의 방법을 동원하여 민심을 설득할수 있는 인적자원 활용의
확장성이 정치적 저변이 된다.
이끌든 따라가든 주체이든 변방이든 신념에 따라 선택할수 있는 방향은 언제나 존재하는 것이다.
지식문화사회의 정치적 선택에서 분별력의 확장성은 필요한 것이다.
민주주의는 다양성을 기초로 하기 때문이다.
사회구성의 기초는 가족이란 공동체 이며 인륜은 가장 가까운 인연을 보호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사회구성의 원초는 어떠한 경우든 생명과 인륜이 우선되어야 한다.
보편성의 전제에서 로미오와 줄리엣은 집단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조직정치의 사고로 불합리한 것이다.

조직논리에 집착하는 울타리의 현실은 존재한다.

사안과 인물에 대한 이해의 범주에서 정치적 판단의 획일성은 과거의 관성으로 존재한다.
보편적 논리를 우선하지 안는 진영정치의 선택도 엄연히 존재하는 선택의 방향이다.
정치적 선택에서 조직논리를 우선하여 앞뒤 안가리고 무조건 우리편 이라는 고정관념은 개선되어야 한다.
문화적 진화에서 가치관을 지키려는 신념이란 것도 다양한 것이다.
나의 가치관이 사회의 대세에 부합하는 것일 수 도 있고 그렇치 안을 수도 있다.
가족이란 절대 책임감의 공동체에서도 나 라는 경계의 가치관은 다를 수 있다.
삶의 주체에서 확연한 차이가 안일 지라도 자기방어의 논쟁은 있는 것이다.
문화적 동의에서 나의 가치관을 따르라고 강제할수 없다는 것이다.

 

정치는 시대정신에 부합하는 민심의 대세론이 필요한 것이다.
물질권력의 대세로 무한경쟁과 선점의 경제논리가 작용하는 시대이다.
시장경제 무한경쟁의 부작용을 개선하려는 것이 새로운 정치적 가치관의 신념이다.
차별을 용인하는 물질 지배력의 분배이다.
인륜을 우선하지 안는 물질의 획일적 사고를 개선하는 것이다.

토론과 논쟁에서 문화적 지성으로 반론을 수용하는 합리적 절차의 합의가 21세기 민주주의의 전제이다.
정치적 선택에서 울타리에 갇힌 집단의 정체성 만을 요구한다면 다른 책임감은 마련하지 말아야 한다.
국수적 집착은 가족이든 인륜이든 삶의 절대적 가치를 구속하게 되는 것이다.
불나방의 순수성은 양극화의 현실에서 모자란 오지랍을 표현한 극단적 선택이었다.

 

힘의 논리와 이념적 패권주의의 대립정치가 시대의 벽을 넘어 지식사회로 발전하였다.
치열한 경쟁을 수반하는 민주주의 정치체재에서 정치인의 신념은 가족의 동의를 구하는 것이 순리이다.
그렇지 안으면 자신의 가치관을 지키던지 가족의 요구를 따르던지 선택하여야 한다.
선택의 기로에서 물질에 억매인 잘못된 정치가 정치적 저변의 흥망성쇄를 결정하는 차별적 문제가 있었다.
국가와 민생을 우선하는 정치적 신념에서 물질과 가족의 동의를 구하는 것이 요건 이라며는 가혹한 것이다.
정치적 선택에서 대의를 위한 신념과 인륜을 우선하는 가족의 책임은 무관한 것이기도 하다.
천륜과 인연이라도 정치적 선택과 규범의 이해에서 개별적 분별력의 차이는 존재한다.
장발장의 교훈에서 인륜과 생존을 위한 규범의 모순을 선택의 유연성으로 이해한다는 것이다.
삶의 모순은 언제 어디서든 존재하는 것으로 생명이 무었보다 우선하는 선(인륜)이기 때문이다.

민심은 법리로 판단할수 없는 것으로 시대적 문화가 요구하는 인성과 인륜이 필요한 것이다.
민심은 삶의 과정의 모순에 대하여 언제나 이해의 범주를 설정하고 있다.
삶의 고단함과 단절된 연속성의 인정에 억매여 병마로 고생하는 가까운 사람을 해치는 경우도 있다.
의사로 써 또는 가치관의 신념으로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희생하시는 분들도 있다.
물질문명의 시대에 시장경제 경쟁의 현실을 모르는 바보가 아니다.
가치관의 신념으로 대의를 위하여 스스로를 희생하는 경우는 많다.
대의를 위한 희생과 가까운 사람을 위한 절박한 인륜은 민심의 동의를 얻을수 있다.
삶의 과정에서 현재의 행위와 미래의 설정은 나의 몫이고 책임져야 한다.
민심이 설정한 이해의 범주는 냉철한 것이기도 하다.

정치적 위치는 스스로 설정한 정체성을 시대정신에 따라 옭고 그름으로 민심이 판단하는 것이다.
요사이 진보논객이 중도인지 보수인지 획실하지 안은 신념으로 원한의 목표에 실탄 부어대고 있다.
과거의 인연 보다는 민심의 동의에 우선하여 자신의 정치적 신념을 고려하는 것이 순서이다.
자신의 정치적 미래가 무었인지 정체성의 진실을 국민께 고하는 것이 순리라는 것이다.
학자적 식견 이라며는 정치적 계산의 편견을 배제하는 전체적 이해의 충족이 필요한 것이다.
일부의 주장으로 지식과 지성을 호도하는 국수적 논쟁의 정치공학은 지적민심의 분별력을 시험하는 것이다.
시대적 성찰에서 주장의 본질이 확실하지 안으며는 민생과 민심의 대변이 아니라 집단의 이익을 우선하는 정치
공학적 선동과 권모술수의 산수가 있다는 오해가 있을 것이다.
비젼없는 비방은 정치적 울터리에 집착하는 획일적 정치이며 구태이다.

울타리의 국수적 논리에 집착하는 권모술수와 선동의 정치는 지적사회의 분별력을 오판하는 것이다.
민심을 구하는 동질성의 구성에서 시대적 문화의 지성으로 지지를 얻을수 있다.
정치는 개인이나 집단의 분별력이 시대의 요구를 어떠한 방법으로 관철 할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집단의 이론이나 개인적 분별력으로 정치의 정체성을 실현하는 것은 민심의 저변을 필요로 한다.
정치적 목표의 성취에서 민심의 동의를 확보할수 있는 각고의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끊임없이 주장하고 노력하여 물증으로 과거에서 현재를 변화시키는 인내가 우선하여야 한다.
지적사회에서 민심의 동의는 미래지향적 새로운 사고의 인적자원 활용이 필요하다.
우리사회의 변화는 집단지성에 의하여 새로운 지식사회에 접어들고 있다.
정치가 국민을 이끄는 것이 아니라 국민이 정치를 변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인물이든 집단이든 구성원의 감성과 이성의 동질성 확보로 정치적 위치를 결정한다.
정치인은 민심의 대세에 동행하는 동일성으로 지배와 견재의 역할에 충실하여야 한다.
지적사회의 역사는 시대적 문화의 요구로 결정되는 것이다.
생각이 같다면 대세에 따르는 것도 순리이며 울타리에 갇힌 획일적 지배력의 확보만이 답은 아니다.
시대의 문화적 욕구를 충족하는 집단의 정체성은 수용적 의미에서 민심의 동의를 구할수 있는 것이다.
대의 민주주의는 정치의 순환으로 국가 지배력의 형평성을 유지하고 있다.
민심으로 위치가 주어지는 정치는 가치관의 신념과 믿음의 저변으로 존중을 확보할수 있다.
통신사회에서 울타리 넘어 대세를 판단하는 계산서 나오는 시간이 길어지면 민심의 오해가 있을수 있다.
오류의 수정과 판단의 시차에서 지성이 요구하는 옳고 그름의 진정성을 확보할수 있는 시대이다.

세파를 이겨내지 못하며는 대세를 얻을수 없는 것으로 옭고 그름의 분별력은 부딧쳐야 답을 찾을수 있다.
타의의 수용과 반론이 울타리에 갇히는 것은 지식사회의 분별력을 과소평가 하는 것이다.
정당의 정체성을 지키는 것은 예초의 설정과 판단이 중요한 것이다.
지식문화사회의 민심은 도발적 자기주장의 집착이 안이라 수용적 정치형태에서 이해의 범위를 확장한다.
울타리 치고 문 걸어 잠그는 것은 토론과 합의에 충실한 균형적 사고방식이 아니다.
신념의 순수성이 전제된다면 대의를 위하는 부분적 판단이라도 과정의 인내와 설득으로 민심의 동의를 구할수
있을 것이다.
정치적 논쟁에서 소수라도 국민과 국가의 이익이 우선한다면 긍정적 평가가 있다는 것이다.
정치와 정당 또는 정권은 대의를 위하여 노력하여야 하며 때로는 정당의 존립에 관한 희생도 필요한 것이다.

민심의 동의에서 증거하여 진실과 순수성이 전제되는 실용적 의지의 표현은 필요한 것이다.
정보통신 사회에서 민심의 분별력은 광범위한 것으로 대세의 흐름을 빠르게 판단할수 있다.
현실정치의 대세는 통신을 통한 지적사회의 문화을 수용하는 것이다.
2022,10,13일.

'나의 글방.'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한반도 핵실험.  (0) 2022.10.22
인륜과 노동의 가치.  (0) 2022.10.18
21세기의 위기.  (0) 2022.10.10
존재와 문화.  (0) 2022.10.03
엘리자베스 2세.  (0) 2022.09.12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