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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의 위기.

박세욱. 2022. 10. 10. 11:12

83. 21세기의 위기.

2022,8,2일 저녁 11시 43분 낸시 펠로시 미 하원의장의 대만방문으로 양안문제가 군사적  대치의 위기로 우려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태평양과 대륙의 지정학적 경계에서 벌어지는 최 강대국의 대립으로 군사적 대치의 위협이 증가하고 있다.

펠로시 의장의 대만방문에 대응하여 대륙은 SU-35 전투기를 발진시키고 인근해상에서 실탄사격 등 군사행동의

위협을 강화하였다.

태평양은 항공모함 레이건 함 전단을 대만 동부해상에 배치하였다.

오키나와 미 공군기지에서 전투기 8대와 공중급유기 5대가 의장을 호위하기 위해 대만해역으로 출격하였다.

냉전의 관성에 있는 정치적 이유의 우월적 동기에서 군사적 충돌의 위협이다.

대륙의 군사적 행위는  멱살잡이의 위기에서 한동안 대만해역을 에워싸고 주먹의 위력을 과시하였다.

 

양안문제에서 의장의 대만방분으로 인한 대륙의 강력한 대응이 오히려 시 주석의 정치적 입지를 강화시켰다는

평론이다.

냉전의 관성에 있는 지정학적 위치의 경계에서 정리되지 못한 정치적 문제의 군사적 위협이 상존하는 것이다.

우려되는 양안문제의 군사적 충돌은 한반도 정세의 불안과 균형에서 문제를 의식하고 있다.

펠로시 의장은 오밤중에 오산기지에 도착하였다.

민주주의의 거장은 외교적 영접절차 없이 구설수의 설왕설래를 남기고 일본으로 출발하였다.

한반도 정세에서 바다건너 최강국의 서열을 감안하면 여름철 8월의 한밤중에 찬바람이 써늘하였다.

세계정세와 관련하여 인물론적 행위의 정치적 이해득실에서 지도력의 저울추가 왔다리 갔다리 한다.

유라시아에서 발생하고 있는 21세기의 비극도 냉전의 경계를 고집하는 정치적 선택의 고민이다.

 

8월의 진흙 속에 빠져들고 있는 우크라이나 전쟁은 크림대교의 사고로 전쟁의 와중에서 태러의 명분을 찾고 있다.

인류의 재앙 핵의 파괴적 위협을 공공연하게 공언하는 21세기의 위협적 비극이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양안문제의 군사적 대치에서 정치적 평론으로 이해타산의 결과를 의식하는 문제가 있다.

군사적 대치의 일상은 양치기 소년의 기우적 의심에서 문제의 무의식이 확장되는 것이다.

금기시 되었던 핵의 파괴적 위력의 설정이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현실에 가깝게 느껴지고 있다.

16.9km에 달하는 크림대교는 모스크바 함과 같이 러시아의 자존심 문제라고 한다.

폭팔사고로 크림철도를 달리던 석유 운송열차에 불이 붙었다.

바다에 설치된 구조물의 윤곽에서 도로의 상판이 바다에 떨어지고 철도에서 불타고 있는 열차의 파괴적 그림이

핵 위협의 완성도를 높이고 있다.

 

핵의 파괴적 실상을 전장의 현실로 상상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파괴된 도시와 탱크에서 수많은 주검으로 비극을 전계하던 전쟁이 지배력의 자존심으로 확장되고 있다.

양치기 소년의 무의식 처럼 한발한발 파괴적 재앙의 시간으로 논리의 부정을 확장하고 있는 것이다.

정치의 현명함을 기대하나 소통의 부재와 명분의 딜레마는 개인의 의지를 벗어날 수 있다.

핵의 파괴적 위협이 전제되는 우크라이나 전쟁은 냉전의 지정학적 경계에서 대치하는 군사적 위기의 확장으로

전계되고 있다.

금기시 되었던 핵의 위협은 군사적 대치의 파괴적 수위를 확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핵의 파괴력이 공공연하게 군사적 위협의 수단으로 이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핵의 파괴적 무의식이 확장되는 것이다.

 

한반도 정세에서 핵의 파괴적 딜레마는 현실이다.

국제질서에서 지배력의 정치적 소통과 시대적 대의의 명분을 공유할수 없는 위협적 현실이 존재하는 곳이다.

UN과 국제사회의 재제에도 하루가 멀다 하고 미사일의 위협을 확장하고 있다.

10월4일 사거리 4,500km 짜리 중거리 탄도 미사일(IRBM)이 “슝" 하고 일본열도를 지나 태평양에 떨어졌다.

평양에서 괌의 미군기지는 3,400km 라고 한다.

한미 연합훈련을 마치고 돌아가던 레이건 항공모함 전단이 북측의 IRBM 발사로 동해를 향해 선두를 돌렸다.

이후 북측의 미사일에 대응하는 한,미,일 삼국이 독도에서 180km 떨어진 공해에서 합동훈련을 실시하였다.

태평양과 대륙의 경계가 한반도로 이동한 것이다.

한반도 군사적 대치의 위협이 확장되고 있는 것이다.

 

9월23일 한미 연합훈련으로 레이건 항공모함 전단이 부산항에 입항하였다.

9월25일 한미 연합훈련에 대응하여 북측이 발사한 KN-23 추정 단거리 탄도 미사일(SRBM) 한발이 시작이었다.

28일 같은 것으로 SRBM이 동해로 두발이다.

29일 KN-25로 추정되는 단거리 탄도 미사일 두발이 날아갔다.

10월1일 대한민국 국군의 날에 KN-24와 25로 추정되는 SRBM 두발을 한미가 연합훈련 하는 동해를 향해 쐈다.

동해에는 한미 연합 해상훈련이 실시되고 있었다.

10월4일 문제의 중거리 탄도 미사일(IRBM)이 일본열도를 지나 훈련을 마치고 돌아가는 레이건 항공모함 전단

뒷퉁수를 향해 날아갔다.

끝물의 오지랖은 껄쩍찌근 한 뒷맛을 즐기는 것이다.

 

고기도 먹어본 넘이 잘 먹고 문지방도 넘어본 인간이 더 한다고 하였다.

반복되는 군사적 위협에서 관성적 무의식이 무서운 것이다.

핵의 파괴적 위협이 21세기의 비극에서 공공연하게 거론되는 뒷배의 확장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의 비극에서 전황과 관련된 핵의 파괴적 위협은 전례를 모방하는 위기를 조장하였다.

글로벌 지식과 문화의 시대에 존재하는 것은 공유된다.

4일 한국의 F-15K와 주한 미 공군의 F-16 연합공격 편대는 공대지 정밀 직격탄 사격훈련을 실시하였다.

평론가들은 킬체인의 부분전술 이라고 한다.

같은날 한,미 군사당국은 에이태큼스(ATACMS)와 현무-2 각각 두발씩 대응사격 하였다.

아쉽다면 파괴적 목표의 앞과 뒤는 정확해야 한다는 것이다.

 

5일 평양당국의 중거리 탄도 미사일(IRBM) 뒷 끝에 돌아가던 레이건 항모전단이 동해에  재진입 하였다.

한반도 정세의 오지랖에 불편한 태평양의 주먹은 한,미,일 삼국의 연합훈련으로 쌍심지 날렸다.

한반도 정세가 양안과 우크라이나 전쟁에 더하여 점입가경 이다.

10월6일 북측은 한,미,일 연합훈련 하는 동해로 단거리 탄도 미사일 두발을 쐈다.

그뿐 아니다.

한반도 휴전 후 군사대치에서 없었던 남북 전투기의 출격으로 휴전선을 사이에 두고 대치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북측에서 전폭기 4대와 전투기 8대로 편대를 이루어 휴전선 인근에 출격시킨 것이다.

150여 km를 비행하며 지상의 가상 목표물을 향해 사격훈련을 실시하였다.

남한에서는 F-15K등 항공기 30여대가 대응 출격하여 한동안 대치하는 상황이 전계되었다.

 

한반도에 상존하는 군사적 위협의 대치가 우크라이나 전쟁의 전례로 믿는구석의 수단이 확장되고 있는 것이다.

21세기의 전쟁에서 핵의 파괴적 위협이 공공연 하게 확장되고 있다는 것이다.

10월9일 새벽에 북측 강원도 문천에서 두발을 더 쐈다.

새벽에 발사한 것은 이례적 이라고 한다.

정치적 목적의 이해타산 이라는 사고의 한계를 위협하는 상황에 이르고 있는 것이다.

무의식의 관성으로 잊혀지는 파괴적 위험의 위기의식 결여는 순간의 오판에 집착할수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대만해협의 긴장에 더하여 국제질서의 연관성을 의식하는 한반도 정세의 현명한 판단이

요구되는 21세기의 암시가 있다.

국제질서의 균형에서 핵의 자제력을 상실한 파괴력은 무의식의 관성으로 확장될수 있다.

 

냉전의 경계에서 정치적 목적을 우선하여 핵의 파괴적 위협을 전제하는 것은 의식의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인류의 역사에서 비극은 문화적 이질감과 지배력의 경계에서 발생하고 있다.

지배력의 시각에서 아마겟돈의 현실을 상상하는 것은 위험한 역사의 시간을 암시하고 경고하는 것이다.

세계질서의 지배력 균형에서 시대적 대의를 위한 정치적 소통과 명분의 상호존중이 요구되는 것이다.

강대국의 이익구조에서 인륜의 존재를 우선하는 상호존중의 국제질서가 필요한 것이다.

지배력의 탐욕에서 모두가 도도하게 흐르는 강의 형태로 주도적 위치를 확인하려는 욕구가 있다.

역사에서 도도하게 흐르는 강의 본질은 강물의 속살과 어울려 이루어지는 여울의 희노애락이 되는 것이다.

전쟁의 파괴적 결론 보다는 인륜을 우선하는 삶의 디테일이 21세기 문화의 주체가 된다는 것이다.

통신사회의 태동은 인류의 문화적 동질성을 예견하는 것이다.

 

선지자의 계시에서 선의 문화는 동일성의 하나를 말씀하시는 것으로 이해할수 있다.

결국 우주를 염원하는 인류의 역사는 태초의 하나로 회귀되는 것이다.

과정의 노력에서 선의 본질적 이해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2022,10,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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