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사사로움.
엘리자베스 2세. 본문
79. 엘리자베스 2세.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1926년 4월 21일 조지6세의 후계자로 태어났다.
엘리자베스의 첫기록은 "오 하얀피부와 예쁜금발의 작으마한 나의 아기야"라는 메리왕비의 일기이다.
메리왕비는 엘리자베스의 할아버지 조지5세의 부인이다.
엘리자베스는 2차대전 막바지에 아버지 조지6세를 찾아가 조국을 위해 봉사할수 있도록 허락을 요청한다.
소위 계급장을 달고 구호품 전달 부서에서 자유로이 또래의 친구들과 어울리며 봉사하였다.
기획과 통제로 짜여진 권력서열의 통치권 부담에서 자유로운 시간을 가질수 있었던 시간이다.
여기서 부군 그리스 왕자 필립공을 만나게 된다.
성의 권세에도 불구하고 역사는 자유로운 울타리 밖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1947년 11월 20일 웨스트민스터 성당에서 거행된 결혼식으로 필립과 엘리자베스는 부부가 되었다.
전세계에 전해진 결혼식 소식은 영국왕실의 미래였다.
글래런스 대저택에서 결혼생활 하며 찰스3세가 태어났다.
1951년 아버지 조지6세의 건강이 악화되면서 왕실의 역할에 한계가 있었다.
엘리자베스는 왕실행사에서 조지6세를 대신하여 대표권을 수시로 대행하게 된다.
시간과 기후와 풍토에 적응해야 하는 국외순방은 건강이 필수조건 이다.
엘리자베스는 아버지 조지6세의 대표권을 대행하며 국외순방 중 케냐에서 국왕의 서거소식을 듣는다.
슬픔에 잠겨 은둔하던 엘리자베스는 영국왕실의 역사에 따라 운명을 선택하였다.
1953년 6월 2일 웨스터민스터 성당에서 웅장한 대관식을 거행하였다.
전세계 2,500만 명이 TV를 통해 지켜보는 가운데 영연방의 수장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즉위하였다.
웅장하고 화려한 대관식의 배경에는 전후 위측되어 있는 대외적 위상과 국민의 자긍심을 배려한 처칠수상의
의도였다고 한다.
대양의 지배권을 확보하여 해가 지지안는 대영제국의 기틀을 마련한 엘리자베스 1세의 역사를 고려한 것이다.
처칠의 고려에는 대전후 대외적으로 정치,경제상황 변화로 영연방의 구심점이 흔들린 이유가 있었다.
내적으로는 복지국가를 지향하는 시류에서 영국국민은 왕실의 존재를 의심하기 시작하였다.
여왕은 왕실의 변화를 이루어 국민과 영연방으로 부터 존재의 이해를 구하고자 노력하였다.
1953년 11월부터 6개월 동안 영연방에 남아있는 국가를 순회하며 세계사의 흐름을 공유하였다.
1977년 즉위 24주년 축하연에 영연방 35개국 지도자들이 참여하는 결실이 있었다.
전쟁의 상처와 이데올로기의 대립으로 흔들리는 국제정세에서 영국왕실과 영연방의 존재를 확인한 것이다.
입헌군주제의 한계에서 여왕은 국민과 정치의 중재자로 사려깊은 분별력을 발휘하였다고 한다.
수에즈 운하 문제에서 이든수상의 권력남용에 불만이 있었다.
보수당의 맥밀런 수상을 지지하였다.
1974년 노동당의 윌슨정부의 츨범으로 입헌군주제의 한계를 지켜다고 한다.
왕실의 존재를 확인하려는 여왕의 정치적 분별력 이었다.
자유와 개인주의가 팽배한 민주주의의 요구에서 군주제의 존속을 위한 여왕의 예지는 살아있었다.
2022년 9월 8일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70년 통치를 마무라 하고 96세로 서거하였다.
세기적 관심은 역사의 흐름에서 아직 대영제국의 기억이 남아있는 것이다.
퀸에서 킹으로 바뀌는 군주제의 연속성과 영연방의 미래가 영국국민과 찰스 3세에게 달려있다.
64년 왕세자 지위에서 시기적 안타까움이 있었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영국국민과 세계사의 흐름에서 왕실의 전통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신 역사가 있다.
대영제국의 역사를 지키는 영국왕실의 전통은 세계사의 여운으로 남아야 한다.
새로운 영연방의 수장은 21세기 국제질서에서 역사를 공유한 결속을 우선하여 노력하겠다고 하였다.
대표권의 위상은 통신사회와 세계의 시선을 의식하는 정치적 이미지가 필요한 것이다.
왕의 승계를 서명하는 서류로 여백이 부족한 작은 테이블 이었다.
넉넉히지 안은 테이블에 꽉친 서류사이의 위태로운 기물은 불편한 것이다.
왕의 불편함에 역사의 현장에 있는 분들의 노심초사가 더하여 불편하게 보였다.
의전의 디테일은 전체의 주제와 맞아야 하는 것이다.
좀더 넓은 테이블은 어째을까 하는 것이다.
국가 대표권의 의전은 체제의 위상과 관련된 중요한 행사이다.
대한민국 대표권 의전도 위상을 지키는 의견의 지적이 있다.
대통령 표식의 격식과 불필요한 동선의 노출이 있었다.
여왕서거 홍보에서도 철자가 틀려 국내외 언론의 지적으로 수정하는 불편한 노심초사가 있다.
전 정권 의전 비서관의 침이 마르는 지적에도 우리편이 아니라서 소귀에 경 읽기이다.
우째튼 왕이나 국민이나 민주주의가 보장하는 표현의 자유는 리얼한 디테일이 필요한 것이다.
영국왕실의 대관식이 처음으로 전세계에 생중계 되었다고 한다.
터럭도 숨길수 없는 통신사회에서 새로운 것은 수정과 윤색이 필요한 것이다.
한국시간으로 9월12일 여왕의 시신이 스코틀랜드 수도 에든버러의 홀리루드 궁전에 도착하였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스코틀랜드 왕도 겸하고 있다고 한다.
영국의 체제는 하나 같으면서 속살의 경계가 있다.
홀리루드 궁전은 1128년 데비드 1세가 수도원을 개축하여 세웠다고 한다.
15세기 스코틀랜드 국왕이 거주하였던 곳으로 여왕의 하계 별장으로 사용되었다.
여왕께서 서거하였던 밸모럴성을 떠나 차량으로 여섯시간 걸려 도착한 곳이다.
수천명의 시민들이 장례행렬에 꽃과 편지를 던지며 여왕의 마지막 길을 아쉬워 하였다.
밸모럴성은 빅토리아 여왕의 부군인 앨버트 공이 사들인 곳으로 유서깊은 왕실의 하계별장 이다.
이곳은 넓이가 260제곱킬로미터에 달한다고 한다.
홀리루드 궁전에서 이틀간 장례의식을 거행한다.
다음날 자일스 성당으로 이동하여 예배를 마친후 하루동안 여왕의 마지막을 시민들에게 공개한다.
대한민국의 장례풍습에 노제가 있다.
돌아가신 분께서 살아계실 때 인연과 흔적을 기억하기 위한 것이다.
장례일정에는 앤 공주가 동행하고 있다고 한다.
이후 비행기로 이동하여 버킹엄 궁전과 웨스트민스터 성당으로 옮겨진다.
국장은 현지시각 19일 거행될 예정이다.
여왕은 부군 필립공 서거후 심리적 부담으로 건강이 악화되었다고 한다.
1999년 4월 김대중 전 대통령 초청으로 여왕과 필립공께서 한국을 방문하였다.
여왕은 한국학생에게 장학금을 수여하였고 학생과 6,25 참전군인의 도움으로 기념식수도 하였다.
나흘간의 일정 중 안동 하회마을과 공동경비구역을 방문하였다.
역사와 왕실과 세기의 책임감으로 전쟁의 상처와 자유와 이념의 갈등에서 격동의 시대적 변화를 견디어 왔던
여왕의 마지막이 시간으로 매듭을 이루고 있다.
극락왕생과 명복을 기원한다.
2022,9,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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