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사사로움.
가치의 절대성과 효율성. 본문
69.가치의 절대성과 효율성.
21세기 글로벌 통신사회의 지식문화 공유는 가치관의 판단에서 동질성을 우선하였던 통제사회의 보편적
개념을 추월하였다.
전제주의의 관성에 있던 군사문화의 통제사회는 국경에 의해 격리된 역사와 문화의 동질성을 사회질서의
주체로 인식하였다.
일부집단의 논리에 의해 국민의 자유로운 사고가 통제되었다.
가족중심의 유교사상은 시간의 운명(신분)과 생물학적 다름의 차별을 사회질서의 근간으로 하였다.
현시대의 이해에서 생명과 감성의 개별적 존중을 도외시한 공동체의 규범이었다.
주례 즉 나랏님의 절대성에 순종하는 공동체의 질서가 삶의 사고를 지배하였다.
칠거지악은 지어미의 미덕이었다.
어른과 지아비의 섬김은 가문의 영광을 위한 여성의 길이었다.
시집살이는 가문의 영광과 체면을 위해 견디어야 하는 생물학적 차별이었다.
이밖에도 "선비는 일하지 안는다."
"기둥뿌리가 무너져도 빌어먹지 안는다."라는 규범이 일상의 절대가치로 사고의 지배구조를 형성하였다.
정신의 근간을 이루는 시대적 학문과 문화가 일부집단의 논리에 의해 공동체의 가치를 우선한 것이다.
대체로 권력의 지배력에 순종하는 것이 사회질서의 순리였다.
대체로 였다는 것은 이시대에도 지식문화의 진화는 반론과 저항이 있었으나 표현과 행동에서 의지의 한계가
있었다는 것이다.
공동체 유지에서 태초 물질공유의 생존조건이 시대의 문화적 규범에 의해 구속된 것이다.
격리된 문화의 폐쇄성은 울타리의 규범이 우선하여 개별적 사고를 통제하였던 사회이다.
자연환경과 물질에 의한 생물학적 진화와 지식문화에 의한 정신진화는 시간의 개념이 다르다.
정신전진화는 세대의 간극을 좁히고 사고의 차이를 벌리고 있다.
통신시대에서 지식문화는 물질문화와 비교할수 없는 속도로 진화하고 있다.
문화의 연속성에서 통제사회의 관성은 지식문화에 의한 자유의 저항에 과거의 몸통을 고집하였다.
규범의 동질성을 고집하는 군사문화의 지배력 개입이다.
역사로 이해할때 힘의 논리가 우선하는 통제사회의 문화적 관성이 전제된 무력집단의 사회질서 개입이다.
저항의 극단적 선택이 필요한 군사문화에 의한 지배구조는 문화적 저항에서 피해의 댓가를 의식하는 동질성의
강요였다.
무력의 위협으로 규범을 강제한 사회질서이다.
전제주의의 문화적 관성으로 통제사회에서 벗어나지 못한 지배력의 악습에 의한 동질성의 강요이다.
대표적인 것이 사회정화란 이유로 시행된 삼청교육대와 부랑자 교화의 명분으로 운영된 복지원의 실태이다.
지배력의 논리를 우선하여 개별적 사고의 자유를 억압하고 문화적 진화의 저항의지를 봉쇄하는 것이다.
사회진화는 생존을 위한 미래의 조건과 시대의 문화적 바탕이 전제되는 규범의 불편,부당함에 저항하는 것이다.
지배력의 동질성 확보를 위한 규범의 강요에서 이유없는 선량한 국민의 생명과 의지의 피해가 있었다.
규범에 의한 통제사회의 관성에 집착하는 일부집단이 문화의 시대적 성찰에서 논리의 함정에 빠진것이다.
미래의 불확실성을 이해하고 준비할수 없는 일부집단의 폐쇄된 문화가 원인이다.
조선의 역사를 살펴보면 전제주의의 규범에 도전한 실용주의의 실체가 다수이다.
전제주의의 변형으로 조선후기의 세도정치가 있었다.
무리적 습성의 힘의 논리를 우선하여 국가권력을 이용한 조직사회이다.
규범의 문화적 또는 시대적 가치를 장악하는 권력집단의 통제사회 이다.
역사의 굴절이 필요한 시기마다 내것의 기득권과 시대의 문화적 규범에 얶메인 사대부와 세도정치의 고집스런
울타리가 미래의 불확실성에 대비하지 못했던 과거의 역사가 있다.
인재횔용에서 신분제 개혁과 문화의 확장에서 개항등 역사의 진화에서 사대부의 절대성이 우선한 역사이다.
어머니의 숭고함 이라고 이해하였던 부두막 문화의 집착이었다.
실학의 등장과 실용주의의 주장에서 시대는 달라도 역사의 맥락에서 같은 것이다.
개혁의 모체는 언제나 일상의 평화에 있는 것이다.
권세에 의한 문화적 소외와 규범의 치우침은 평등의 상대적 논리에서 불편과 부당함이 발생한다.
공동체라는 공유의 정신에서 능력의 기회가 이해의 범위를 이탈하는 것이다.
민심의 동요와 저항은 규범의 차별과 문화적 소외의 부족함에서 발생한다.
역사로 이해할때 전제주의와 이념적 시대의 전환에서 민심의 통제를 위한 주체의 절대성이 요구된 측면도 있다.
분단의 역사가 통제사회의 관성을 연장하였던 것이다.
그렇다고 하여도 일부집단 이나 개인적 영달에 집착하여 국민의 생명을 희생하고 자유의 의지를 박탈한 책임은
역사에 기록되어야 한다.
시대의 정신적 욕구는 통제사회의 집단적 획일성에서 개별적 욕구의 충족으로 자유의 개념을 확장하고 있다.
정보통신시대에서 지식과 문화의 글로벌 공유이다.
평창 동계올림픽 남북 아이스 하키 단일팀 구성에서 국가의 대의 보다 개인의 성취적 욕구를 우선하는 선택의
방향성이 있었다.
사회질서와 문화의 진화는 전제주의와 통제사회에서 요구하였던 동질성의 애국적 관점이 개인의 행복추구권을
우선하여 요구하는 상황으로 발전한 것이다.
공동체 운영에서 공익적 관점보다 구성원의 개별적 성취욕구가 보호되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공동체의 동질성을 우선하여 요구하였던 전제주의와 군사문화의 문화적 관점과 다른것이다.
민주화 이전의 통제사회에서 국가의 판단에 이의를 제기하는 개인의 성취적 욕구는 반역에 가까웠다.
통제사회의 문화적 관성에서 벗어나지 못한 지배력이 화들짝 놀라는 새로운 사고의 등장이었다.
새로운 문화는 집단지성 이라는 민심의 적극적인 사회질서 참여이다.
공동체를 우선하는 절대권력의 순종적 역사는 독립된 지성의 새로운 의식구조의 시대에 있다.
집단의 획일성을 요구하였던 폐쇄된 문화적 관점이 개인의 자유와 성취적 욕구를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시대적 문화의 이해에서 독립된 지성의 선택이다
사회질서의 선택에서 아직 집단의 동질성을 요구하는 문화적 관성은 팬덤정치로 나타나고 있다.
팬덤의 형태에서 대체적으로 선악의 옭고 그름과 다름의 이해보다는 우리편의 울타리에 집착한다.
개인의 자유가 우선하는 성취적 요구와 공동체의 동질성을 우선하였던 문화적 관성의 혼돈이 있다.
팬덤정치의 문제는 통제사회의 문화적 관성에 있는 무조건적 동질성의 요구이다.
문제는 사고의 획일성으로 반론과 다름을 인정하지 못하는 폐쇄성이다.
혹백논리로 문화적 연속성의 중첩이나 근사치의 값을 배제하는 것이다.
선택의 자유에서 특정인이나 특정집단의 맹신으로 통제사회의 문화적 관성이 우려되는 것이다.
독립된 지성에 의한 개인의 성취적 욕구와 다른 이기적 집단의 일방적 주장이 대부분이다.
글로벌 통신사회의 진입에서 과거의 습성과 현재의 지적 분별력이 혼제되어 있다는 것이다.
문화적 변환기에 긍정의 저변에서 나타나는 부정의 흔적이다.
우리의 문화에는 명사의 획일성이 있다고 한다.
사고의 집합을 요구하는 전제주의의 관성으로 표현에서 하나의 단어에 다양성의 욕구를 가두려는 것이다.
표현에서 다양성과 사실관계의 진실이 전제되는 감성적 전달의 디테일이 부족한 것이다.
신분의 계급과 당쟁의 역사와 외세의 영향력에 의해서 편가르기 좋아하는 습성으로 사이의 존재를 의식하지
안으려는 묶음의 문화이다.
흑백논리로 사고를 단순화 하려는 통제사회의 문화적 흔적이다.
인디언들은 사람의 명칭을 정할때 "늑대와 춤을 추다." "햇뜨면 산에 간다."라는 식이다.
각각의 존재를 우선하는 것으로 집단의 획일성을 배제하는 문화라고 한다.
표현의 실용주의 이다.
역사를 말할때 요사이는 잘쓰지 안는 호칭으로 무슨민족 이라고 한다.
격리된 문화의 경계를 설정하는 것이다.
문화적 진화는 글로벌 지식문화사회에 있다.
글로벌 통신사회에서 문화의 경계는 철지난 역사로 남겨져야 한다.
행복을 위한 운명적 선택의 분별력에서 다양성을 존중하는 문화적 디테일의 필요이다.
일상에서 물질문명의 다툼으로 잊혀지고 있는 지적감성의 회귀가 필요하다.
삶의 디테일을 확장하는 것은 행복의 조건에서 선택의 유연성을 확장하는 것이다.
지식과 문화의 발전에 의한 사고의 진화에서 가치의 절대성 보다 효율성을 우선하는 시대정신이 필요하다.
규범으로 귀결되는 시대의 문화적 가치는 지배력의 요구에 갇혀있지 안는다는 것이다.
역사는 현재를 위해서 준비된 것으로 연속성의 원칙은 미래를 위한 과정이다.
지식과 문화의 진화에서 정치적 동기의 동질성 강요는 지배력의 악습이라는 것이다.
선택받아야 하는 지배력이 울타리의 습성을 이용하여 선택을 강요하는 것이다.
민주주의 체제에서 선택받아야 하는 주체가 선택을 강요하는 모순을 자행하는 것이다.
21세기의 민주주의는 합의체의 결정에서 독립된 지성의 선택이 의견수렴에 반영되어야 한다.
지배력의 도전은 시대정신으로 이해할수 있는 주체와 의지로 선택받으시라는 것이다.
내것으로 울타리 치고 다양성을 부정하는 행위는 통제사회의 문화적 획일성을 요구하는 구태이다.
힘의 논리에 의한 무리적 습성의 조직사회 문화는 선택의 방향성에서 거취를 결정해야 한다.
나의 존재는 타의의 용인으로 시작하는 것이다.
너의 존재만 중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내것의 우선순위에 집착하여 논리적 설득없이 주어로 도배하여 주장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집단지성으로 표현되는 스스로 참여하는 문화적 사회질서의 요구는 공정성의 평화를 위한 상호존중이다.
21세기의 사회질서는 하나의 사고로 동질성이 강요되었던 격리된 문화의 관성에서 실시간적 의견수렴으로
민심을 확인할수 있는 독립된 지성의 분별력으로 발전하였다.
사대부와 세도정치의 과거처럼 지식과 문화의 변화를 인정하지 못하는 고착화된 권력과 기득권의 선입견이
미래의 불확실성을 소홀히 하는 것이다.
현실의 오류에서 역사를 끌어다 비교하여 변명하는 것은 미래를 위한 교훈적 의미를 상실하는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의로운 학문은 권세와 물질에 예속되지 안는다.
물질의 예속에서 생존조건 이외에 집착하는 것은 정신적 만족을 위한 비교우위의 습성이다.
정신적 허구가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탄생과 존재의 실존적 가치에서 비교우위의 습성은 한순간에 무너지는 정신의 모래성 이다.
우주는 정신과 물질의 순수로 이루어진 것이다.
지배력을 위한 허세와 권모술수는 인류의 운명적 유희이다.
우주는 인류의 운명적 선택에 동요하지 안는다.
인류의 미래는 태초의 하나처럼 생명과 감성으로 이루어지는 인륜의 동질성을 회복할것이다.
팬덤의 형태는 동질성이 강요되었던 역사와 문화에 예속된 습성이다.
역사와 문화적 인연이 없다면 선악이나 다름에서 다툼의 여지는 상쇄되는 것이다.
울타리의 경계는 역사와 문화적 인연의 이해타산이 내제되어 있다는 것이다.
나의 사고에 예속된 운명적 동질성이 인연이라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나의 사고에 예속되지 안은 존재는 선악과 다름의 이해타산 범위에 속하지 안는다는 것이다.
넘에집 멍멍이가 짓는것은 머시기 소리가 되지만 가문의 정체성에 짓어데는 멍멍이는 이율배반의 오지랖이 된다.
격리된 문화의 폐쇄된 주체와 글로벌 사회에서 공유되는 문화의 주체는 사고의 분별력이 다른것이다.
폐쇄된 문화는 지배력의 논리에 의한 획일적 절대성이 사회의 주체가 되지만 지성의 자유가 전제된 다양한
문화의 공유는 상호존중의 실용성이 있다.
실용주의는 민주주의의 전제 합리적 합의체의 선택에서 지배력의 논리보다 민심의 요구가 우선하는 것이다.
지식과 문화의 지성은 행복이라는 감성적 공유에서 선택의 확장성으로 성취이든 안주이든 획일성을 강조하는
울타리에 머물지 안는다는 것이다.
지구의 진화와 우주의 진화는 동일성이 있으나 확장성에서 다르다는 것이다.
규범화된 폐쇄된 문화에서는 맑다,아름답다 라는 단어의 획일성으로 이해의 욕구를 충족할수 있었지만 통신을
통한 문화의 무한공유는 표현의 범위를 확장하고 있다.
표현에서 단어의 획일성 보다 일상의 실존적 디테일이 지성과 감성적 동의에 적극적 이라는 것이다.
문화의 진화에서 규격화된 획일적 표현의 지루함이 감각적 이해와 독해력에서 실용주의로 발전한 것이다.
의사전달에서 시대적 절대성에 의한 문화의 단순한 지루함이 지식공유로 이해의 범위를 확장하여 다양성의
디테일을 요구하는 것이다.
싸잡아 뭉뚱그리는 표현에서 사실관계의 실존적 가치부여이다.
주장에서 주어의 도배는 철지난 동질성의 강요이며 표현의 껍떼기에 불과한 것으로 지성의 지루함이 있다.
폐쇄된 문화는 지배력의 논리를 우선하여 가치의 절대성을 규정하고 사회질서를 요구하였다.
통신사회의 글로벌 지식과 문화의 공유는 규정된 가치의 절대성을 강조하지 안는다.
문화의 진화에서 지성의 분별력은 가치의 효율성을 추구한다는 것이다.
문화의 절대성은 피해를 의식할수 없는 극단의 관성이 있다.
문화의 관성적 한계에서 악습으로 개혁이 요구된다는 것이다
일태면 신분의 예속을 요구하였던 차별적 정신문명과 물질문명이 파괴하는 자연생태계의 위기를 말할수 있다.
인류역사는 선의 바탕에서 평화의 시간이 대부분이었으나 혁명과 전쟁의 굴절을 포함하고 있다.
가치의 절대성을 추구하는 문화적 관성에서 악습의 결과가 역사와 사고의 혼돈을 만든다는 것이다.
역사의 굴절에는 문화단절의 시간이 있었다.
미래의 준비에서 지식과 지성의 발전은 문화의 극단성을 배제하는 가치의 효율성을 우선할수 있다.
단절없는 문화의 연속성은 평화의 안주이며 미래에 대한 지식과 문화와 지성의 성찰이다.
2022,6,1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