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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의 절망.

박세욱. 2022. 6. 11. 00:53

68. 총의 절망.
선과 악은 다름이 아니라 옳고 그름으로 판단해야 한다.
다름은 물질이며 선택된 운명이다.
생명은 다름이 아니라 같은 것이다.
다름을 선과 악의 선입견으로 판단하는 것은 잘못된 것으로 사회의 책임이다.
사회의 책임은 시대적 문화의 이해에서 공유하는 동질성의 범위를 설정하는 것이다.
구성원의 상호작용에서 생산성을 위한 차별의 한계를 완화하는 공적개념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사회적 책임에서 문화적 행위의 바탕에는 원인이 있다.
자본과 시장경제 경쟁구조의 차별적 생산성은 성취적 욕구에서 이성적 이해의 범위를 넘고있다.
시장경제에 의한 개별적 소유의 탐욕은 공동체의 공적개념을 소홀히 하고 있다.
 
사회의 구성에서 개별적 판단의 존중이 공적개념 보다 우선한다는 것이다.
차별이 용인되는 경쟁의 문화에서 비교우위의 성취적 욕구가 인습에 포함된 것이다.
경쟁의 한계에서 조건과 능력의 운명적 체념과 파괴적 결말이 존재한다.
개인적 성취의 욕구에서 비교우위의 사회적 한계는 공동체에 저항하는 행위로 나타난다.
인연에 의한 인과응보가 아니라 문화적 소외의 저항이 사회의 불만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소외의 절망과 분노는 불특정 다수에 대한 무차별 공격으로 이어진다.
시대의 문화적 동질성에서 희망의 범위를 이탈하는 성취적 욕구의 저항이다.
이러한 문제는 차별적 사회를 필요로 하는 물질문명과 시장경제의 피해요소이다.
절망과 분노의 표현과 수단에서 총의 일반적 개념은 극단적 공격과 방어이며 생명의 소멸을 의미한다.
 
총기에 의한 파괴적 수단의 제도적 통제는 돌이켜 재생할수 없는 생명의 소멸이기 때문이다.
인류의 역사에서 총의 문화를 일반적 개념으로 수용할수 없다는 것이다.
전쟁의 비극은 칼과 총의 문화이다.
격리된 문화의 이질감과 이념적 대립의 경계는 총으로 평화를 지켜야 하는 시대에 있다.
역사의 대세는 삶의 사고를 지배한다.
다름의 다양성에서 소외되는 운명적 체념의 절망과 분노의 표현으로 총의 소멸을 선택하고 있다.
규범의 절제없는 총기소지 문화가 절망과 분노의 한계에서 파괴적 표현의 수단이 되고 있다.
일상의 평범에서 예상할수 없는 무차별 공격으로 비극이 발생하고 있다.
인과응보 없는 평범의 평화에서 선의 규범으로 지킬수 없는 문화적 소외와 증오의 공격이다.
 
비극의 참담함에 인륜의 보편적 가치를 지킬수 있는 공동체의 공적개념이 아쉽다.
안정적 사회의 생산성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경쟁의 차별을 보호할수 있는 노력의 댓가가 보장되는 사회이다.
인류가 염원하는 평화는 총이 아니라 성장과 분배의 분별력으로 지켜져야 한다.
요사이 바다건너 대국에서 총에 의한 비극으로 충격을 주고있다.
우리나라는 총기소지를 원천적으로 금지하고 있기 때문에 총기소지 문화의 이해가 부족하다.
대한민국에서 허가된 살상용 총기로 인연없는 생명을 공격하는 상황은 상상할수 없다.
동서냉전의 관성에서 전쟁의 위기가 상존하는 분단국가 임에도 개인의 총기소유는 철저히 제한하고 있다.
총과 평화의 관계에서 역사에 의한 문화적 설정의 이해가 필요한 것이다.
 
일상의 평범은 평화를 지키는 선의 규범을 믿는 것이다.
소외의 절망과 분노의 체념은 18세 꽉 찬날 총기소지면허 취득으로 택사스의 작은도시에서 악마가 되었다.
일상에서 무의식적 선의 규범은 오늘의 익숙함도 어제의 평범처럼 평화를 의심하지 안았다.
택사스에 있는 작은도시 초등학교의 아침은 미래의 생산성으로 시끌벅적 하였다.
어제와 별반 차이없는 작은도시의 아침은 반복되는 총기사고를 애써 의식하지 안았다.
반복되는 총기사고의 희생은 미국의 역사로 용인되는 총기소유의 관대함으로 피해를 확장하고 있다.
이유없는 희생을 안타까워 하면서 역사로 용인되는 총기문화의 대세에 정치적 선택의 어려움이 있는듯 하다.
2022,5,24일 선의 규범을 믿는 평화로운 도시에서 악의 사주를 받은 악마가 천둥과 벼락과 불과 지진이 아닌
총의 소멸로 무장하고 미래의 희망을 준비하는 초등학교를 공격하였다.
 
악마가 교실에 들어와 총을 쏘는데 아버지도 어머니도 지켜줄 어른도 없었다.
"탕"탕"탕" 선생님이 쓰러졌다.
여기저기 총알에 관통당한 작은몸은 쓰러지고 꼬꾸라져 흐르는 피와 함께 생명의 의지를 상실하였다.
악마의 모습을 피해 웅크린 체 언제 날아올지 모르는 총탄을 의식하며 멈춰버린 시간을 피할수 없었다.
생명의 위기를 느끼고 생존을 의식할수 있는 의지를 상실하였다.
미약한 의지는 피신을 의식하지만 얼어붙어 움직일수 없는 육신의 시야는 책상밑의 허술함 뿐이다.
악마에 짓눌려 울음도 비명도 소용없는 생명의 상실이었다.
저항할수 없는 운명의 체념은 이시간 이후 결과를 알수없다.
익숙한것과 그리운것이 소멸되는 시간의 공포만 존재하였다.
 
19명의 초등학교 2~4학년 학생과 선생님 2명이 희생되었다.
부상자가 많아 희생자의 증가도 염려되고 있다.
비극의 현장은 산자의 몫이다.
무었을 위해서 감내하여야 하는 희생이었는지 문화의 속성에는 악마가 있다.
선의 규범은 평화의 믿음을 지켜주지 못하였다.
존재와 시간의 절대성에서 운명에 개입하지 안는 절대자는 시간과 공간의 안타까운 비극을 알고 있다.
인과응보에 의한 시간과 공간의 굴절이라는 것이다.
2012년 12월 코네티컷주에서 어머니를 살해한 20살 청년이  초등학교를 공격하여 학생 20명과 어른 6명이
희생된 사건이 있었다.
 
희노애락의 감성에서 다양성이 무너진 일방적 집착과 무디어진 무감각이 불안정한 것이다.
슬픔과 기쁨은 상호작용하는 것으로 감성의 깊이를 만든다.
인륜에는 생명과 감성이 있다.
생명과 감성은 공유하는 것으로 지배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삶에서 동심으로 만들어진 감성은 중요한 것이다.
그리움과 익숙함의 회귀는 감성적 편안함의 행복이 있다.
감성적 풍요를 위해서 돌아갈수 있는 곳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감성의 고립이 공격성을 만드는 것이다.
총의 소멸적 위협이 상존한다면 선의 규범을 믿는 행복의 조건을 상실할 것이다.
 
학교는 동질성의 공유를 학습하는 장소이다.
문화의 다양성에서 학문과 지식의 학습은 동질성을 공유하는 시간과 수단이다.
학문과 지식의 학습은 개인적 성취를 통한 사회의 기여이다.
초등학교는 문화적 진화의 연속성에서 기존의 학문을 동심의 순수로 재정립 하는 가장 창의적인 장소이다.
학교는 학문과 문화를 정립하여 보편적 가치를 확립하는 곳으로 악의 증오와 다름의 차별이 개입할수 없는
장소이다.
다름과 선악의 선입견에서 공유의 개념으로 같이하는 동질성의 공익성을 좀더 생각해 보아야 한다.
물질문명에서 지식과 문화의 발전은 풍족한 생존조건의 공유를 의미하는 것이다.
소외와 차별의 행위로 증오와 분노를 조장하는 것은 인류의 공격성을 간과하는 것이다.
 
택사스주 사건은 뉴욕주 슈퍼마켓에서 인종주의에 의한 총기난사로 흑인 10명을 살해한 사건이후 열흘만에
일어난 비극이다.
사건이 일어난 택사스주의 유밸디시는 멕시코와 가까운 곳으로 재학생의 90%가 라틴계로 알려지고 있다.
인종과 피부색은 물질도 운명적 선택도 아닌 대자연의 합리적 합의체에 의한 결정이다.
다름의 다양성은 주장의 설득이 필요하나 경쟁과 획일성의 지루함에서 희노애락의 조건이 된다.
지구를 대표하는 지적사회에서 인륜의 포괄적 이며 긍정의 문화적 이해가 필요한 것이다.
플로리다에서는 20대 아버지가 2살된 아이가 실수로 발사한 총탄에 사망하였다.
등록되지 안은 불법소지 무기였다고 한다.
역사로 용인되는 총기문화의 이해에서 상식적 이지 안은 살상무기의 관리를 엿볼수 있다.
 
6월 첫째주 주말에도 총기난사로 15명이 희생되고 60여명이 부상당하였다.
2020년의 통계로 총기사고로 발생한 10~20대 사망자가 1만명이 넘는다고 한다.
전미 기준 1~24세 사망율에서 총기사고 사망율이 교통사고 사망율 보다 높다고 한다.
사망율 전체 1위이다.
152일이 지난 올해에 만 233차례의 총기사고가 있었다고 한다.
보도되고 있는 사실관계의 비극을 접하며 일상에서 총기문화가 전무한 사고의 이해부족을 실감한다.
총기문화는 인륜과 역사의 딜레마에서 선택의 시간에 있다는 느낌이다.
총기문제의 정치적 딜레마도 문제해결의 걸림돌이 되고있다.
진보진영의 민주당은 규제강화를 주장하고 보수진영의 공화당은 규제완화를 주장하고 있다.
 
미 총기협회는 비극이 발생한 몇칠후 같은장소인 택사스에서 회의를 개최하여 규제완화를 주장하였다.
총의 위혐은 총으로 막아야 한다는 것으로 불에는 불 악에는 악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논리이다.
비약이지만 국제질서의 논리에서 핵과 화학무기등 대량살상무기의 사용제한을 주도하는 것은 미국이다.
논리의 주제는 인륜이다.
보도에 따르면 연이은 총기난사 사건으로 공화당 지지자 중 절반이 총기규제 강화에 찬성하고 있다고 한다.
민주당 지지자의 대부분은 규제강화에 찬성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총기규제 강화의 상원인준 가능성은 많지 안다고 한다.
연이은 총기사고의 책임에 있는 바이든 정부는 총기 규제법 통과를 촉구하고 있다.
백악관은 "미국의 너무나 많은 일상적인 곳들이 킬링필드로 변하고 있다."
 
"그러나 총기참사 후 진행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라고 말하였다.
바이든 대통령은 "의회를 통과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고 있지만 나는 결코 포기하지 안을 것이다."
"국민 대다수도 포기하지 안을 것으로 믿고있다."라고 의지를 밝히고 있다.
역사와 문화의 소유권은 인정하나 글로벌 사회의 정점에 있는 사회의 인륜은 모범이 필요한 것이다.
문화의 진화는 시대적 이해가 필요하다.
현시대의 문화에서 부두막 문화의 칠거지악과 삼강오륜의 이해를 강요할수 없다는 것이다.
역사의 진화에서 변화를 이끌어 내는 주체의 당위성은 목적에 이로운 것이다.
 
2022,6,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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