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사사로움.
사과의 전설. 본문
71.사과의 전설.
사과의 전설에서 좋은사과와 나뿐사과의 선택은 없었다.
사과의 진리는 우주의 생명력이 물질을 선택한 태초의 탄생일수 있으며 진화의 과정에서 물질문명의 시작이다.
사과는 선택할수 있는 욕망이며 운명이다.
사과는 다양한 물질의 보편성이며 자유이다.
존재하는 것은 합리성이 전제된 보편성이므로 물질의 선택에서 사과는 하나의 진리를 말하는 것이다.
운명적 선택에서 좋고 나뿐것이 존재하지 안는 하나라는 보편성의 진리이다.
태초의 선택은 하나였으나 종의 분화처럼 사회가 다양성으로 발전하여 선택의 가지수가 많다.
무한한 미래를 위한 선택에서 하나라는 사과의 진리는 필요한 것이다.
생명은 하나이며 운명적 기회에서 누구나 무었이든 선택할수 있는 무한한 평등이다.
운명적 선택으로 생명의 존재가 다를수 없다는 것이다.
물질문명의 시대에서 탄생이라는 인연의 가치는 기회의 차별로 가문의 영광에 따라 희비가 있다.
21세기의 탄생에서 선택된 인연으로 사주팔자가 작용하는 기회의 차별이다.
무한을 의식하지 못하는 형이상학적 시대의 정신문명이다.
태초 하나라는 평등의 원칙은 진화의 절대가치 선이라는 회귀본능이 있다.
물의 평면은 시간이 필요하나 모든 사물과 사고에서 작용하는 하나의 원리가 있다.
중력의 구심력에 의해 평면을 이루는 것이다.
시대적 문화에도 근본을 이루는 선(인륜)의 값이 구심력으로 작용한다.
평등의 원칙에서 상호보완적 협력이 사회를 이루는 문화의 실체이다.
다양성의 존중은 물의 평면을 의식하는 합리성의 믿음이 전제되는 것이다.
물질과 운명에서 존재하는 것은 지식의 한계가 있다.
존재하는 것을 이해하기 위해서 진화하는 것이다.
진화의 가치에서 지식과 문화에 예속된 운명의 집착은 무한의 영역에 이르는 노력이다.
우주는 물질과 운명으로 존재하는 것보다 무한한 것이다.
인류의 의식에서 존재하는것 보다 존재하지 안는 것이 무한하다는 것이다.
생명은 무한의 선택이며 물질은 운명적 선택이다.
운명은 무한한 생명의 탄생으로 시작되는 것이다.
생명은 윤회와 환생이라는 연속성의 법칙이 존재하나 운명은 소멸되는 것이다.
생명은 무한에 있는 것으로 사라지지 안는다는 것이다.
무한의 생명탄생과 생명이 선택한 운명은 다르다는 것이다.
물질문명의 시대에 탄생의 인연이 운명에 작용하는 문화적 시류가 있다.
생명의 탄생에서 가진자와 가난한 자의 기회차별은 운명적 선택에서 가혹한 시대에 있다.
무한한 생명의 포괄적 개념이 운명의 다름으로 이승의 살림살이에서 차이가 발생하고 있다.
가문에 입적된 탄생의 인연이 작용하는 운명에 지쳐가는 생명이 애절한 것이다.
대한민국의 차별은 사과를 선택한 하나의 원칙에서 공동체의 범위를 이탈하고 있다.
기업은 대기업 중소기업으로 생존의 상하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시대의 보편성을 저변으로 하는 노동계는 조직사회의 끝빨을 동원한 시류의 기회주의로 차별에 가세하였다.
산업의 불모지에서 국민의 희생으로 발전한 대기업의 우선주의에 일조하는 일부노조의 특별한 우월감이다.
민생에서 일부노조의 특별한 우월감 조성으로 대기업을 우상화 하고 있다.
노동의 동질성에서 차별적 사회의 우월적 기회를 이용하여 노동의 보편성을 지배하는 것이다.
대한민국 노동계의 저변을 대변하는 조직논리의 특별한 기득권은 일부에 불과하다.
시대의 문화에서 노사의 공존원리가 작용하는 곳은 대기업과 동고동락하는 일부노조이다.
노동 기득권이 자본의 울타리에서 차별에 합류한 것이다.
자본과 시장경제에서 사회의 인프라를 떠받치는 대부분의 노동은 운명의 차별에 있다.
사대부와 세도정치의 인제양성에 몰두하는 교육은 학벌에 의한 운명의 특별함을 공고히 하고 있다.
유명세를 타는 학벌의 기득권은 특별한 사회적 기회가 되어야 한다는 사고의 저변이 있다.
경쟁과 차별의 현실에서 속창시 보다는 껍떼기의 간판으로 선택되었지는 우월감이다.
특별하게 할일하시는 분들 역정나실 구설이나 대체로 그렇다는 것이다.
생명의 탄생에서 지붕밑 인연으로 결정되어진 복받은 운명이라는 사고방식이다.
물질문명의 대세에서 가문의 영광으로 특별하게 선택된 운명이라는 것이다.
자신의 생명으로 선택하지 못하여 다른운명에 언쳐 사시는 불상한 중생이다.
불가에서 말씀하시는 윤회와 환생이라는 전생의 존재에서 이승의 인연은 각각의 것이다.
상속세에 연연하실 이유가 없는 것이다.
인륜의 안타까움은 전제주의의 규범적 신분제에서 돈줄타는 운명적 기회의 신분제가 되었다.
탄생의 순간에 생명의 의지와 상관없이 운명이 결정되는 가문의 영광이다.
희노애락의 부분적 만족으로 사시는 중생의 업보이다.
좋은것도 하루이틀이다.
좋은차 타다 나쁜차 타는 것은 불편하여도 나쁜차 타다 좋은차 타면 좋은 것이다.
슬픔을 느껴본 사람이 기쁨의 깊이를 안다.
운명은 사회의 다양성에서 생명의 개별적 선택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순리이다.
무한에서 무심으로 태어나는 생명이 지붕밑 인연으로 운명지워 지는 것은 기회의 평등에서 차별이다.
돈이 지배하는 물질문명의 악습이다.
자본과 시장경제의 경쟁을 의식하는 교육의 논리부재와 필연적 생명의 연속성에서 지붕밑 인연이 우선하는
물질문명의 차별적 문화로 선택되는 운명이다.
물질경쟁에서 내것이 우선하여 선택하는 선점의 사고방식이다.
차별의 소외와 분노의 구설에서 뉘(사대부와 세도가)집 자식의 오지랖이 타도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특별한분 빼고 이승에서 별볼일 없이 집구석 반반한곳 골라 태어나는 생명이라는 것이다.
진화의 진리에서 운명은 문화적 선택으로 이루어지는 유동적인 것이다.
운명의 선택에서 탄생의 인연으로 규정할수 없는 문화적 기회의 순리가 있다는 것이다.
기득권에 치우친 공동체의 공익적 관점은 모순된 권리의 탐욕으로 선점의 논리가 작용한다.
물질과 권세로 무장한 기득권에 의한 제도의 선점이다.
기득권으로 울타리 치고 힘의 논리로 민주주의 제도를 악용하는 것이다.
생명의 절대가치는 탄생의 기회에서 평등한 권리가 주어져야 마땅한 것이다.
운명의 시작에서 지붕밑 인연의 물질에 의해 21세기 통신사회의 사주팔자가 대체로 결정되고 있다.
가난한 부모가 죄이다.
탄생으로 차별되는 운명은 현실에서 개별적 생명이 선택하여 개척하여야 하는 문화적 질서를 파괴하고 있다.
희노애락의 다양성으로 견디고 있으나 통제사회의 관성으로 의지의 표현이 협소한 선한감성은 “씨팔씨팔”
하다 이승의 바톤 넘어가는 것이다.
정권은 돌아가며 사정권력에 목줄 메느라 빈부격차의 운명적 차별은 강건너 불구경이다.
이짝저짝 할것없이 말씀은 허구헌날 권력기관 중립을 떠들면서 내편의 울타리 경계병에 목메는 것이다.
의로운 목민관은 내편의 울타리 보다 백성의 어려운 곳을 먼저 살피는 것이다.
포도청의 육모방망이에 눈 돌아간 권세는 아생연후에 앞뒤가 없는 것이다.
국가권력기관이 정권의 울타리 경계병이 되는 것이나 대기업의 차별적 생존전략의 조삼모사에 노동조직이
예속된 것이나 도긴개긴이다.
만백성을 위해서 권력과 분배와 노동의 개념에 충실하라는 것이다.
제품의 가격에서 경쟁에 의해 희생되는 것은 노동의 가치이다.
자원의 가치와 노동의 가치에서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우선하는 것은 자원이다.
제품의 가격설정에서 노동의 가치를 절대값에 포함할수 없는 것이 시장경제의 현실이다.
수요와 공급의 불확설성이 제조업을 포화상태에 이르게 하고 있다.
자원과 노동력의 낭비이다.
거론되는 공유경제의 필요이다.
수요의 정보를 활용한 최적의 생산으로 자원과 노동력의 안정성을 추구하는 것이다.
차별이 전제된 자본과 시장경제는 정신과 물질을 공유하는 개념을 수용하기 어려운 것이다.
가문의 영광으로 운명의 기회를 선점하는 기득권의 나와바리에 집착하는 것이다.
내것에 집착하여 울타리 치고 행여나 다칠세라 세상의 변화를 두려워 하는 것이다.
조선후기의 세도정치를 답습하며 이미 충분히 가지고 있는데 대문열고 소란스러울 필요가 없는 것이다.
권세와 짝짝궁하여 울타리나 지키면 되는 것이다.
재난지원금 지급에서도 정보활용을 통한 최적의 지원으로 소유에서 평등의 원칙을 지켜야 한다.
통신정보시대는 지식과 문화의 공유로 글로벌 사회를 형성하고 있다.
공유의 개념에서 충분한 통신정보를 활용할수 있는 문명에 있다.
노력하면 정보 데이터 활용으로 불필요한 통화량 확장을 제어할수 있는 것이다.
통화량 증가는 물가에 반영된다.
물가가 오르면 재난지원금의 효과는 감소하고 빈부격차의 차별은 증가하게 된다.
차별이 문제가 되는 사회에서 지배력이 문제를 의식하지 안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문지방 후퇴로 족보의 비참함을 경험한 정치의 패권주의가 민생의 어려움를 잊고 아생연후에 목메는 것이다.
요사이 알바생 구하기 어렵다고 한다.
유흥업소 사장께서 월급 380을 제시해도 사람구하기 어렵다고 엔데믹의 소비에 푸념이다.
보도에 의하면 결혼도 일도 하지안고 부모와 함께 사는 청년이 30%에 이른다고 한다.
지식과 문화의 지성이 유흥업소 써빙을 미래의 직업으로 인식할수 없는 것이다.
요사이 철밥통 공무원은 비교우의의 가치가 떨어졌다.
그렇다고 수입 짭짤한 건설현장 노동자의 수급이 좋아진것도 없다.
변화된 시류는 돈보다도 나의 나와바리를 위해서 시간의 씀씀이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낮바닦 관리의 이런저런 이유 때문에 굳은일 하기 싫은 것이다.
우찌되었든 돈많이 주고 빨강날짜는 쉬는 인습에서 비교우위의 충족이 필요한 것이다.
운명을 선점하는 정치,사회의 기득권과 대기업의 차별이 비교우위의 인습을 만드는 것이다.
유교사상의 시대도 아닌데 할일 못할 일 금 그어놓고 배 째라는 것이다.
꼬라지 때문에 완빵 아니면 안한다는 것이다.
문지방 염려하시는 분들이 원구성 하자는데 배 째라고 뺑기타고 이멜더 신발 구경가시는 것이나 도긴개긴이다.
국가운영의 우선순위에서 울타리 경계에 집착하는 정권의 선점은 문지방 아쉬운 쪽이 우물파라는 것이다.
이분법적 경쟁에서 가진자와 못가진자가 같을수 없다는 차별의 논리이다.
쥔장 집 비운사이에 오지랖 더러워 홧김에 여의도 불나게 생겼다.
배웠거나 못배웠거나 이짝이나 저짝이나 내것의 나와바리 앞가림에 홍익인간정신은 말아드셨다.
대기업과 동고동락하는 일부 노동조합의 형태는 돈의 비교우위 인지 존재감을 위한 표현인지 알수가 없다.
많이 가지고 더받는 분들이 더한다.
기업의 이윤에서 생산과 소비는 병행하는 것으로 구매력의 향상은 기업성장의 요소이다.
국민의 소비로 늘어난 이윤의 사회환원이 필요한 것이다.
즈그들 끼리 "궁짝꿍짝" 하지말고 기업의 이윤은 사회와 공유해야 하는 것이다.
세금좀 많이내서 공동체의 생산성 분배에 노력하시라는 것이다.
세금이라고 놀라지 마시고 통칭이 그렇다는 것이다.
사회환원의 방법은 다양한 것으로 돈많은 분들께서 어려운곳 살펴 인정을 사용하라는 것이다.
선은 가장 대중적 인습으로 경제 마케팅에서 훌륭한 문화가 되는 것이다.
인정을 배풀면 살림살이 늘어나 가문의 영광에 득이 된다.
속창시 보이며 애써 사정권력에 울타리 부탁하지 안아도 지켜줄 사람들 많아진다는 것이다.
알써!
2022,6,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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