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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용의 실용주의.

박세욱. 2022. 6. 2. 07:18

4.중용의 실용주의.

생물학적 진화를 바탕으로 생명체의 존재가치를 기본으로 하는 인류진화 과정의 질서이다.

생명체로 존재하는 것은 진화과정의 결과물로 유익한 것이다.

생명체의 존재가 사상과 철학의 시작과 결과이다.

생존의 조건에서 이념과 사관의 추상적 집착의 변화보다는 현실적 가치가 우선하는 것이다.

행복은 생물학적 존재의 가치 존중에서 비롯된다.

현실적 가치는 생태계의 합리적 합의의 절대성으로 이루어지는 생물학적 가치의 존재이다.

생물학적 존재는 대자연의 환경에 적응하여 진화하였다.

실용주의는 인류의 생물학적 진화의 암시적 결정체로 미래의 삶을 동경하는 지식 집합체이다.

자연생태계의 진화과정은 우주환경에서 최선의 결과를 도출하는 합리적 합의체 이다.

 

이러한 진화과정의 생물학적 존재가 우선하는 자연질서가 실용주의의 바탕이 된다.

민생의 일상이 그러하다.

이념적 사상은 추상적 가치이며 결과에 대해 확실한 것이 없다.

대자연의 질서를 이해하는 생물학적 생명력을 바탕으로 하지 안는다.

이념적 사상은 인류의 생존방법에서 자원저장과 분배방법의 차이이다.

자본주의 시장경제는 실용주의를 모방하나 생물학적 가치의 존중에 한계가 있다.

이념적 가치는 자연진화 질서를 앞서가려 하거나 또는 지배하려는 선택된 지식의 정신세계 이다.

이념적 가치는 자연진화의 필연적 결과와 다른 지식에 의한 진화의 예측이 전제되어 있다.

진화의 예측은 필연적 이나 하나라고 단정할수 없다.

 

다수의 이념적 가치는 우월적 관계로 자연진화의 순리에 개입하려 한다.

태초의 생물학적 진화는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의 자원을 필요로 하였다.

이념적 또는 추상적 미래가치는 인류의 생존과 자원활용에서 탐욕의 불투명성에 대비하여야 한다.

인류의 지식이 개입하는 추상적 진화는 오늘 이라는 단순한 생존에서 미래를 위한 자원확보가 필요하다

사회는 자원확보를 위한 우월적 관계가 형성되며 정신적 만족의 관성에 있다.

우월적 관계는 정신의 만족을 위하여 필요 이상의 자원과 지배력을 요구한다.

이념주의는 생물학적 결과물에 의한 실용주의 질서가 아니며 추상적 미래가치를 상상한 패권적 질서이다.

생물학적 진화에서 패권적 질서는 지배력의 탐욕에 의해 가진자와 가난한자의 불균형을 초래한다.

이념적 가치는 자연진화와 상관없는 소유의 다툼이 발생하며 생물학적 가치의 희생을 강요한다.

 

이념적 질서는 대자연의 진화과정에서 생존 이외의 정신적 만족을 위한 지배적 질서이다.

지식에 의한 문명의 진화에서 셍태계의 질서를 일탈하고 있다.

인류진화의 과정에서 이념적 사고의 이분법적 논리는 타의를 수용할수 있는 한계가 있다.

대자연적 암시적 질서의 순리에 적응하는 자의적 판단에 의한 진화의 필연성 결여 때문이다.

평화는 하나뿐인 대자연의 질서에서 가능한 것이다.

대립과 반목의 이분법적 이념의 패권주의가 한반도의 불행이다.

생태계의 암시적 가치는 미래진화의 촉매이며 지배하거나 의식하여 변화할수 없는 자연스러운 것이다.

대자연의 질서에서 이념적 패권주의는 추상적 가치의 비약이며 지식의 오판에 의한 지배력 유지를 위한 

우월적 관계의 문화적 관성이다.

 

합리적 합의체인 대자연의 순리에 저항하는 차별적 생존조건의 비생산적 사고이다.

물질문명에서 선(인륜)은 이념에 의한 패권적 대립의 사고에서 자연질서로 회귀하는 것이다.

인류공존을 위한 암시적 자연진화의 이해는 확장되어야 한다.

삶의 방법에서 자연의 순환 즉 인륜이 존종되어야 하는 것으로 대다수가 염원하는 것이 필연이며 진화의

질서이다.

인류진화의 바탕이 되는 인륜의 정신이 가장 대중적인 선이며 보편적 가치가 된다는 것이다.

이념적 사고의 시대가 지나가고 있다.

지구에서 유일하게 이념적 경계의 대립이 지배력의 정신적 집착으로 남아있다.

이념적 경계라기 보다는 정신적 만족의 우월적 관계를 위한 패권적 경계이다.

 

국경이란 것이 지역에 한정된 지식과 문화의 우월적 관계를 위한 패권적 결과물 이다.

영원할수 없는 경계이며 대자연의 생물학적 생태계가 공유하여야 하는 줄이며 선이다. 

인간의 탐욕이 구축한 삶과 사고의 경계이며 인류에게 설정된 구속의 경계이다.

가족을 위한 혈연의 책임감과 익숙한 것의 정신적 그리움이 사회구성의 기초가 된다.

70년 분단의 이별은 소멸되어 가는 이념적 패권주의의 국제정세 문제이며 국경의 우월적 관계이다.

세계사의 비극 이념적 패권주의와 국경의 우월적 경계가 한반도 불행의 원인이다.

문제를 알면서도 해결할수 없는 것은 동서냉전의 관성이며 지배력의 사사로운 이익 때문이다.

인간의 능력이 협소하여 국경의 구속을 지배력의 경계로 의식하는 것이다.

이념적 사회구성과 억압된 질서는 자연생태계의 질서를 외면하는 것이다.

 

사관과 이념주의의 불행은 새로운 지식사회에서 선의 범주로 회귀되어야 한다.

글로벌 지식과 문화를 공유하며 스스로 참여하는 새로운 사회질서의 필요이다.

대자연의 질서를 바탕으로 하는 실용주의가 이념과 사관의 대결적 상황을 해소할수 있다.

이분법적 치우침에 의한 극단적 대립과 반목의 해소이다.

다양성의 존중을 위한 반론의 필요에서 지나친 추상적 개념의 불확실성을 해소하는 것이다.

민족 동질성이란 그리움의 회귀이며 확실한 삶의 감성이다.

실용주의 실현으로 예초 하나라는 오천년 한반도 역사의 필연성으로 돌아갈수 있을 것이다.

중용의 실용주의는 한반도 분단해소를 위한 새로운 사회질서가 될것이다.

이념과 사관의 경계를 완화하고 이웃을 수용할수 있는 가치를 중심으로 하는 질서가 필요한 것이다.

 

글로벌 지식문화를 공유하는 시대에 파괴와 대립의 역사에 몰입하는 것은 비생산적 가치이다.

이념적 대립의 이분법적 갈등은 통신으로 글로벌 정보와 지식을 공유하는 시대의 질서가 아니다.

이념적 대립은 물질부족 시대에 힘들고 어려웠던 고난의 시기로 기억되는 과거의 역사이다.

6,25전쟁과 4,3사태등 이념적 갈등의 비극은 현대의 지식문화로 이해할수 없는 불행이었다.

민족분단의 아품은 대륙의 생산성과 단절되어 있다.

인류역사에서 실코로드로 대표되는 아시아 대륙의 막대한 경제적 가치가 물류단절로 묻혀있다.

동북아의 지정학적 생산성 증대를 위한 한반도 주변정세의 변화가 필요하다.

우선하여 대한민국 정치질서 변화가 필요한 것이다.

좌,우 대립을 중단하고 중도적 실용주의가 우리사회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

 

남북문제 해결에서 국제정세에 줄서는 이념적 사고와 사관의 정리는 필수적 요소이다.

요사이 국민의 민생과 국가의 이익을 우선할수 있는 정치제도 개선문제로 국회가 시끄럽다.

정당의 존재이유가 정권창출에 있다고 한다.

정치제도 개선에서 정당의 이익과 국민의 바램은 차이가 있다.

이분법적 이념과 사관의 반목과 대립에 지친 국민의 바램은 국가운영에서 실용적 전문성 확대이다.

민생을 우선하지 안는 정당의 이익은 조직사회의 관성으로 집권과 정치적 영향력 확대의 집착이다.

새로운 지식문화사회에 적응하는 정치질서 변화가 필요한 시대이다.

이념적 좌,우 대결정치의 진영논리는 분야별 전문성이 결여된 정치인들의 생존에 도움이 되었다.

남,북 대치상황을 이용한 좌,우 대립의 정치는 진영과 지역논리에 치우친 정치인들의 도피처가 되었다.

 

한반도 정세에서 좌,우 대결정치는 외세의 한반도 영향력의 교두보 역할을 자임하는 것이다.

수많은 지식인들이 외세와 결탁하여 기회주의 정치에 변절되었던 역사가 있다.

군사문화의 무력에 의한 절대권력의 패권주의는 싹쓸이 고스톱판의 질서를 만들었다.

국정운영의 연속성에서 좌,우로 정권이 바뀌면 나라의 주권이 흔들린다.

한반도 미래를 위한 정치질서는 국민들의 보편적 가치 실현을 위하는 방향으로 개선되어야 한다.

추진되는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의석수 정해놓고 나누는 변형된 연동형 비례대표제 같다.

여기에 정치적 연륜 보호라는 논리로 석패율을 추가한다는 소식이다.

개선하려는 취지가 입법기관 전문화 라며는 독일식 연동형 비례대표제 전면도입에 한표드린다.

지나친 제한적 개선은 과거에 얶메이는 것으로 정치개혁의 의지가 부족하다고 본다.

 

정치적 신념은 본질에 대한 자신감이 있어야 되는 것이다.

석패율을 끼워 넣는것은 정치개혁 입법과정에서 의결권자의 기득권을 위한 떡밥이다.

실제적 정치개혁에 의심이 생긴다는 것이다.

공동체 유지를 위한 연륜의 저장이라고 하여도 기득권 유지를 위한 냄세가 난다.

사관이나 이념으로 무장한 조직사회 대결정치의 고루함은 새로운 사회질서를 요구하고 있다.

민주주의의 전제 다양성의 접목으로 개별적 의결권의 존중이다.

절대권력 패권주의 개선으로 다양성을 존중하는 정치제도 개혁이 필요한 것이다.

국민의 다양한 행복추구의 욕구이며 학문의 다양성을 존중하는 것이다.

정보통신과 지식문화사회에서 지성의 다양한 욕구가 무었인지 살펴야 한다. 

 

공동체 유지를 위하여 수고하는 모든 분야에서 신분보장이 이루어져야 한다.

새로운 정치질서를 말씀하시면서 과거정치에 연연하여 정치적 연명에 집착하시는 분들이 계신다.

글로벌 지식과 문화를 공유하는 지성의 시대를 이해하는 새로운 정치가 필요한 것이다.

합리적 합의로 국가운영이 이루어지는 확실한 실용주의 정치방향 제시와 지적사고의 결속이 필요하다.

각오가 남다르면 과거정치에 얶메일 필요가 없는 것이다.

정치적 다양성에서 의지의 확인은 필요하나 정치생명에 집착하여 과거정치에 지나치게 연연하며는 대립

정치의 청산은 버거운 것이다.

과거 대결정치를 버리고 새롭게 시작한다는 각오의 역설과 의지의 표현이 필요한 것이다.

필요하다면 나의 정치적 역량을 희생할수 있는 의지를 포함하여야 개혁의 저변을 마련하는 것이다.

 

정치시류의 본류가 버거워 새로운 사회질서의 모양세에 편승하려는 것은 권모술수에 지나지 안는다.

고착화된 이념과 사관의 정치에서 실용주의 라는 미지의 개척은 쉬운것이 아니다.

중도적 실용주의 정치개혁이 한반도 통합의 기초가 될것이다.

사관과 이념적 바탕은 한반도 통합에 위험이 내제되어 있다.

예멘의 경우는 준비되지 안은 통일의 교훈이다.

국민감정을 이용한 정치가 있었으며 진영정치의 울타리에 진실을 감추고 사사로운 이익에 집착하는 구태한

정치의 관성에 있다.

과거의 역사에서 선택을 강요하고 선택에 따라 삶의 의지에 상관없는 가혹한 학대가 있었다.

국가통합 이나 국민의 이익을 위한 결속의 정치가 이니라 패권주의 정치가 국민을 편갈라 놓았다.

 

절대권력에 의한 국가이익의 편중된 집행으로 사회를 계층화 하고 기회의 불균형을 초래하였다.

차별로 국민을 계층화 하고 기회를 독점하는 불공정한 사회는 개선되어야 한다.

계층화된 사회를 장악한 기득권은 기회의 선점으로 청년들의 진로선택에서 불균형의 문제가 있다.

권력과 자본의 편중이 제도를 선점하여 사회참여 기회의 불균형을 초래하고 있다. 

불균형의 만연을 팔자로 치부하며 인내하는 시간이 오랜동안 지속되어 정의마저 혼란스럽다.

자본과 권세로 기득권을 형성하여 정치의 조직화와 교육의 불평등을 초래하였다.

자본권력의 시류에서 기득권은 기회의 차별로 국가제도를 선점하여 지배력의 주체가 되었다.

절대권력의 차별에 저항하며 광화문 광장을 가득메운 집단지성의 저항이 있었고 있을 것이다.

정치,사회에서 국가통합 또는 한반도 통합의 새로운 사고가 필요한 싯점이다.

 

절대권력이 비호하는 토호세력과 밑바닦 권력이 줄서기 문화를 만들어 인적자원 활용을 방해하고 있다.

기득권의 이익을 선점하기 위한 토착조직의 권모술수로 정의와 공정성은 바보들의 소꿉놀이 되었다.

조직논리의 패권주의는 선지자의 정의를 외면하고 사사로운 질서를 만든다.

줄서서 전리품으로 살던지 조직밖에서 변방의 유배자로 살던지 민초들의 선택이 의지를 배신한다.

예초의 생물학적 진화와는 상관없는 물질에 예속된 선택만 존재하는 불평등한 사회이다.

조직사회의 진실을 포장하는 궤변의 권모술수는 사람의 눈이 뒤퉁수에 달렸어도 막을수 없다.

권모술수와 협잡을 동원하는 조직사회의 무서움이다.

시류에 뛰어들어 일신의 영달을 위하여 조직에 줄서는 의지의 패배와 악다구리로 불의에 저항하며 공정과

정의에서 유배되어 분노를 선택해야 하는 신념을 보았다.

 

궤변의 선동과 개별적 능력의 능률은 올바르게 평가되어야 한다.

조직사회의 관성은 분야별 전문성의 능력보다는 토착조직의 권모술수로 움직인다.

이러한 토착조직의 사회질서를 전문적 지식사회의 질서로 바꾸어야 한다.

민주주의는 사회의 밑바닦에서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다.

행정,입법,사법의 삼권분립 정의와 역할만이 민주주의가 되는 것이 아니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은 것이다.

기득권에 의한 차별적 사회는 옳고그름 보다 밥그릇이 우선하는 진영논리의 학습이 만연되어 있다.

우리사회는 끼리끼리 해쳐묵는 물질권력에 의한 조직사회의 관성에 머물러 있다는 것이다.

물질권력이 대세인 시류의 중심에는 요사이 회자되는 반지성주의가 있다.

 

보편적 가치를 모태로 하는 실용주의의 사고는 일부집단의 이익에 집착하는 반지성주의에 동의하지 안는다.

생태계의 합리적 합의체를 이해하는 실용주의는 전체의 이익에 동의하는 것이다.

정치의 극단주의는 가치의 일부로 존재하고 사회질서의 주체는 실용주의가 되는 것이 바람직 하다.

이분법적 흙,백논리의 절대주의는 내것의 패쇄성에 집착하여 창의성과 생산성이 결여된다.

역사의 진화에서 절대권력의 패쇄성에 저항하였던 민주화 과정의 수많은 희생이 있었다.

역사의 흐름에서 시대적 평가가 있어야 할것이다.

국정운영과는 별개의 시대적 소명의 평가이다.

사관과 이념에 갇히며는 스스로 정의로울수 있으나 사회정의와 공정성에서 일방적 주장이 되는 것이다.

공동체의 구성과 의견수렴에서 다양성이 존증되는 합의체가 필요한 이유이다.

 

공동체의 구성은 문화적 협력을 통하여 삶을 윤택하게 하기 위한 것이다.

이념이나 사관에 집착하는 의견수렴은 역사의 흐름에서 일부의 정체성 정립으로 만족하여야 한다.

한반도 분단과 대립은 민족의 자주성 보다는 지정학적 위치에서 동서냉전의 외세를 의식하는 결과이다. 

외세의 한반도 교두보는 한반도 역사의 비극적 결말의 시작이다.

지정학적 국제정세는 한반도 국운에 커다란 영향을 끼치고 있다.

명,청으로 이어지는 대륙세력과 바다건너 일본의 침략으로 처절한 역사를 경험하였다.

오천년 동질성의 끈질긴 민족성이 한반도 역사를 지키고 있다.

압제의 36년 세월은 수많은 지식인과 국민을 변절하게 하였다.

친일 반민족행위 이다.

 

결과의 단죄가 반민족행위에 대비하여 이루어지고 있다.

자주적 국력을 갖추지 못한 한반도 백성의 피해였다.

2차 세계대전 종전후 미국과 소련의 한반도 분할은 처절한 역사의 연속이었다.

이러한 외세에 의한 역사가 한반도 민족의 자주성 결핍이란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한반도 역사는 민족 자주성의 문제이다.

스스로 지키지 못하여 반복되는 문제이다.

집안문제와 이웃과의 관계는 별개로 보아야 한다.

집안문제를 밖으로 들고나가 한반도 국제정세에 기대여 체면도 없이 오지랍 넓히는 분들이 계신다.

스스로 문제해결 능력이 없으시면 가풍을 지키는 것으로 만족하셔야 한다.

 

언제까지 국제정세에 기대어 한반도 국운을 시험할수는 없는 것이다.

국제질서에서 댓가없는 협약은 존재하지 안는다.

나라밖 힘에 의존한 역사의 처절한 결말을 근대사에서 경험하였다.

숭례문의 현판을 세워놓은 뜻은 역사의 교훈으로 기억해야 한다.

국가의 이익은 정당의 이익과 다른 것이다.

역사의 교훈없는 정치는 자주성을 해치는 것으로 이념과 사관에 집착하는 대립적 진영정치의 문제이다.

정치는 무었보다도 국가의 이익이 우선하는 의식적인 하나의 행동질서가 필요한 것이다.

십만 양병설의 교훈이다.

홍익인간정신의 국가 정체성을 바탕으로 하는 한반도 주체성 확보에 노력하여야 한다.

 

대립정치를 타파하고 국가와 민생이 우선하는 실용주의의 국가운영 체계로 개선되어야 하는 것이다.

권세에 줄서는 조직관리의 비생산성 보다 전문적 지식관리 형태의 사회전환이 필요하다.

다양성의 존중에서 기울어지지 안는 운동장을 유지할수 있는 중도적 실용주의의 문제이다.

물질문명의 노도와 같은 질주가 선과 인륜 이라는 생명근원의 본질적 문제를 감추고 있다.

인류진화의 과정에서 물질탐욕의 시류는 생명존중을 우선하는 선의 존재를 망각하고 있다.

민생을 우선해야 하는 정치의 우유부단 함 이다.

생물학적 생태계의 합리적 합의체의 이해에서 생명의 진정성이 선이며 탄생의 근원이다.

지나친 물질축적으로 얻을수 있는 것은 빈곤으로 피박받는 인륜 위에 군립하려는 내것 우선주의 이다.

개인의 인륜적 사고는 사라지고 기득권 유지를 위한 편협한 공동체의 질서만 존재하는 것이다.

 

생의 오고가는 길목에서 차별의 불평등은 없다.

천지창조의 질서에 의하여 스스로 탄생하고 떠나는 것이다.

정신과 물질은 삶의 과정에서 생명유지를 위해 공유되는 것이다.

존재하는 생명체 모두를 위하여 준비된 것이다.

대자연의 질서는 존재하는 생명체를 위하여 준비된 것으로 공동의 소유이며 생명의 근원이다.

생명은 물질로 이루어진 육신의 근원이며 정신과 물질은 생태계 유지와 변화를 위하여 필요한 자원이다.

생명없는 육신은 썪어 흙으로 환원되는 것으로 물질보다 생명이 우선하는 것이다.

생존에서 정신적 만족을 위한 지나친 물질축적으로 생명을 위태롭게 하는 것은 잘못된 정신이다.

집약된 자본만이 인류역사를 발전시킬수 있다는 논리는 우월적 지배력에 의한 일방적 주장이다.

 

시장경제와 병행하여 자본은 공동소유 할수있다.

대중자본의 인프라 확장은 생명유지에 필요한 자본이며 이외에는 인류발전에 사용할수 있다.

자원저장 문화에서 자원활용 문화로 발전하는 것이며 자원소유의 다툼은 사라질 것이다.

인류역사에서 통신사회는 물질문명과 생물학적 진화에서 정신적 변화의 전환기에 있다.

수많은 철학과 선지자의 가르침에 따르는 정신문화의 성찰에서 삶의 방향제시가 가능한 시대이다.

통신정보의 발전은 대중의 의견취합 과정에서 물질적 이익이 배제된 가상의 사회로 진화하고 있다.

사안의 옭고그름을 실시간으로 취합하고 결론에 도달하는 시대이다.

통신문화를 통한 지식의 발전은 물질탐욕의 시대를 벗어나 선의 집합체를 형성하고 있다.

정보통신을 통한 지식과 문화의 대중화 시대이다.

 

물질문명의 생물학적 진화에서 정신문화의 시대에 접어든 것이다.

질서의 처음이 결론에 도달하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다. 

소에 달구지를 메고 수십번 왔다갔다 하여야 그제사 모든것이 제자리를 잡는다고 하였다.

그리하여 초본이라고 하였다.

"어찌 나의 생각만 고집 하겠는가!"

"고치고 또 고쳐서 후세에 본보기가 된다면 그것으로 그만인 것이다."

방례초본에서 하신 말씀이다.

단절된 생명으로 새로운 사회질서에 다할수 없는 것은 시대의 변화가 물질문명에서 정신문명으로 회귀하는 

쉽지안은 진화의 과정이기 때문이다.

 

고치고 또 고쳐서 행하고자 하는 목적에 도달하기 까지는 수많은 시험과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새로운 시회진화의 제시에서 여러대의 정신문화가 함축되어 결론에 도달하는 것이 합당하기 때문이다.

물질문명이 정신의 만족을 요구하는 인류진화의 대세라는 결론은 없다.

생명이 원천인 인류역사에서 부당한 권력과 부에 저항하는 정신이 시대의 굴절을 이루었다.

부의 분배를 칭송하고 권력과 부의 치부로 민생을 해치는 것을 불의로 규정하였다.

지배력과 물질문명의 시류에 억눌린 선의 사고는 인류진화의 잠재력으로 내제되어 있는 것이다.

불의는 선이 지배하는 정신세계의 일부이다.

인륜적 선의 습성은 차별과 불의의 불편함으로 잠재력에서 깨어날 것이다.

합리적 합의체의 평등에 익숙한 생명의 근원이 초본의 그름과 불의를 고쳐 바로잡게 되는 것이다.

 

정신문화의 올바른 방향은 이해타산에서 이해의 범위를 설정하는 인륜적 사고가 바탕이 되는 것이다.

물질문화는 자원저장의 불평등한 소유에서 선의 잠재력으로 자원을 공유하는 문화로 발전할것이다.

생명유지를 위한 자원활용 이란 생물학적 생태계로 회귀하는 것이다.

진화론의 실체적 존재가 실용적 결과이다.

사회질서에서 생물학적 진화의 결과가 삶의 실체적 존재의 정의가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사회질서에서 실체적 존재의 유익성이 가치기준이 되어야 한다.

실용주의는 추상적 개념의 이념적 다변화를 대자연의 질서로 정리하는 것이다.

이념적 대립과 지배적 관계에서 발생하는 인륜의 피해를 생물학적 존재로 기준하는 생명존중의 가치이다.

사회질서에서 생명존중을 우선하는 실용적 제도가 필요한 것이다.

 

실용주의는 이념적 개념의 비현실성 개선이며 민생과 결합하는 실존적 질서이다.

종족과 이념, 사관과 지정학적 갈등등 국경의 경계와 경제적 차이에서 공존을 위한 관계의 이해이다.

실용주의는 인륜적 관계설정으로 생명존중을 통하여 삶의 평등을 실현하는 것이다. 

통신발달과 물질의 풍요로 자원과 생산성 분배가 가능한 시대에 있다.

노동생산성의 인륜을 보호해야 하는 무한의 기계적 생산성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생존에 필요한 자원확보에서 기계적 생산성의 자원독점 이란 위협적 조건이 발생할수 있는 시대이다.

생물학적 생태계 유지를 위한 자원활용에서 자본과 결합한 무한의 기계적 생산성은 생물학적 생존본능을

침해할수 있다.

어느시대 보다도 인륜을 중시하는 질서가 필요한 것이다.

 

기계적 생산성의 자원지배는 노동생산성의 생존과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지본과 시장경제의 관성에서 기계적 생산성의 지배력은 막대한 자원(자본)을 점유하게 될것이다.

자원과 생산성 독점으로 시장경제는 사라지고 물질의 일방적 지배력은 무한으로 확장될것이다.

자본과 노동생산성의 상실에서 인륜을 보호할수 있는 제도의 준비가 필요한 것이다.

자원과 생산성의 분배 공유경제의 미래이다.

기계적 생산성의 자원독점은 인류의 생활을 처참하게 할것이며 생존의 어려움은 저항이 있을 것이다.

물질의 공정한 분배를 통한 의식주의 완전한 공유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생명중심의 실용주의 이다.

공동체에서 작용되는 모든수단과 제도의 목적부여에서 태초 생명체 탄생의 조건으로 회귀하는 것이다.

 

생명유지를 위한 자원의 공유이며 이것은 물질문명에 태초 천지창조 선의 정신문명을 더하는 것이다.

자원의 자유로운 소유와 활용으로 생명이 자원에 예속되는 관성을 이싯점에서 막아보자는 것이다.

과거에 비교하여 미래의 진화속도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것이 될것이다.

현시대의 사회질서는 인류진화의 과정으로 지금이 인류진화의 끝이 아니다.

인류는 아직 태양계 밖에 나가지 못하였다.

생명만이 우주끝에 갈수있는 초자연적 현상을 이끌어 낼수있는 무한의 잠재력이 있다.

생명이 존중되어야 하는 이유이다.

어찌하다 이글을 쓴다.

목적한 것은 아닌데 목적한 것이 되었다.

 

무었이 그리 하였는지 모른다.

가끔 내글이 아니라는 생각을 할때가 있다.

생명의 존재는 무한한 것이다.

시간의 연결이든 공간의 함수든 전파 이외의 통신수단이 존재할수 있는 것이다.

생물학적 생명체로 탄생하여 선이란 주제로 살아간다.

나역시 생명과 물질문명 사이에서 증오가 활활 타오르는 가슴을 느끼며 살고있다.

선의 주체 속에서 악의 준동을 억누르며 선대와 후대의 시공간 연결에 목숨을 다할수 있기를 바란다.

 2019,9,8일. (2022,5월.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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