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사사로움.
공존의 시대 6. 본문
131 공존의 시대 6.
반 문명론자 카진스키가 있다.
17년 동안 16차례 우편폭탄 태러를 자행하였다.
산업과 과학문명의 파괴적 미래를 불신하고 저항하였다.
3명이 희생되고 20여명이 부상당했다.
일류대학을 수업한 매우 유능한 수학자였다.
형제의 제보로 체포되기 까지 수사당국이 붙여놓은 유나바머 라는 별칭으로 유명하였다.
전기와 수도시설 없이 야인생활을 하던 강가의 작은 오두막에서 체포되었다.
2023.6.10일 옥사하였다.
카진스키는 인류의 생물학적 멸종을 예지하였다.
"산업사회와 그 미래"라는 저서가 있다.
유나바머의 선언문 이라고 하며 과학과 산업문명의 정신과 생태적 파괴를 다섯개의 주장으로 구성하였다.
첮째 현대기술은 생태계와 분리할수 없으며 인간의 통제에서 벗어난 영속적 체제이다.
둘째 인간은 생물학적으로 또는 심리적으로 기술사회에 적응할수 없다.
세째 기술체제의 발전은 필연적 재앙으로 이어질 것이다.
넷째 기술발전을 통제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개혁할수 없음으로 재앙을 피하기 위해 기술체제를 혁명적으로
전복시킬 필요가 있다.
다섯째 좌파 사회운동은 기술의 문제로 부터 주의를 분산시키는 일종의 유사반란이다.
해석이 먼지처럼 들어갔으나 생물학적 대응력을 희석하면 정신과 생태계 파괴의 우려를 전달할수 있다.
과학과 산업문명의 절대에 의존하는 지식과 문화의 결과를 감내해야 한다.
문명의 지식과 문화는 학습의 연속성이다.
태어나며 가져오는 것이 아니다.
인류의 지식은 학습에 의존하는 맹종적 무지가 있다.
대자연의 질서에서 산업문명의 진화와 생물학적 생존조건의 이해가 부족하다.
문명과 문화의 발현에서 시작의 주체는 작으나 관성적 흐름의 대세를 지배력으로 통제할수 없다.
21세기 초입 빙하가 사라지는 불규칙한 기후변화는 생태계의 균형을 파괴하고 있다.
지구 온난화의 위기이다.
문명으로 생태계 파괴의 위기를 해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와이 마우이 산불의 비극에서 제어할수 없는 생태계의 위기를 실감한다.
21세기의 아마켓돈 이다.
무분별한 자원낭비가 생태계의 균형을 파괴하였다.
문명은 학습이라는 전제에서 지식과 문화의 방향성 문제이다.
파괴에 직면해 있는 생태계 복원을 위한 문명의 방향전환이 필요하다.
시간이 필요하나 공유적 학습의 현명함으로 문명의 흐름을 바꿀수 있다.
만족의 욕망적 지배에서 자아의 성취로 이끌어야 한다.
끝없는 욕망이 아니라 자아의 한계를 설정하는 지적안주의 만족이다.
경쟁적 학습이 지배하는 상대적 차별이 아니라 가치의 성취이다.
황금산의 불필요한 자원이 아니라 고즈넉한 산사의 정취이다.
육신의 치장이 아니라 생태계의 질서를 공유하며 편한숨을 이루는 내면의 만족이다.
현대문명은 정신에 앞서 물질의 만족을 추구한다.
선택된 문명은 무한경쟁의 성취적 욕구이다.
시대적 지식과 문화의 학습으로 흐름을 형성한다.
경쟁과 지배의 인습은 자아에 안주하여 머물지 못하는 끝없는 만족의 욕구이다.
상대적 성취의 비교우위 이다.
경쟁과 지배의 문화에서 자아의 만족을 상실한 정신의 미완이다.
자본과 시장경제의 경쟁적 차별이다.
존재에서 빛에 의한 물증적 증거를 요구하는 문화이다.
형이상학적 의식의 학습이다.
고즈넉한 산사의 아름다움에서 지근한 만족의 성취가 아쉽다.
공유의 개념이 필요한 안주의 평화이다.
자유는 자아의 한계를 설정하는 지성의 문제이다.
육신의 쾌락적 환상도 우월적 정신의 만족도 자아의 한계적 설정이다.
지성은 스스로 설정한 자아에 만족한다.
평화롭다면 그렇다.
경쟁의 습성에서 치부와 승부적 성취가 문제이다.
상대평가와 절대평가를 견주는 문명과 문화의 문제이다.
절대평가는 확장되어야 한다.
공동운명체의 상호보완적 설정이다
삶이 힘든것은 목적과 변화를 상실한 지루한 시간의 공백이다.
경쟁을 상실한 지친 육신과 정신이 머물곳이 없다.
경쟁에 지친 시간의 공허에서 그만 그만한 자아의 안정이 필요하다.
머물수 있는 문화와 안주의 쉼터이다.
대중문화와 자본이다.
코로나를 극복한 이타적 문화이다.
문화향상을 통한 자율적 사회질서 이다.
형이상학적 증거와 상대평가의 지배적 경쟁에서 공유와 공존으로 문화의 전환이 필요하다.
작은 만족이다.
기술산업이 지배하는 생산성 시대는 전환되어야 한다.
현존하는 물질의 이기는 인류의 생존과 미래에 부족하지 안다.
상대적 만족의 치부가 잘못된 것이다.
지배적 문명에 집착하는 패권주의의 전환도 필요하다.
문명에서 절대성의 집착은 문화적 파괴의 극단성으로 새로운 가치를 요구한다.
문화의 진화에서 세대의 한계이다.
형이상학이 요구하는 물증적 결과의 인습이다.
나와 사물의 관계를 우선하는 문화적 학습니다.
유교의 지배에서 부뚜막 문화는 인륜의 평등과 여성의 생존권 저항으로 파괴되었다.
문명의 진화는 절대성의 최후에서 파괴의 시간으로 가치의 전환이 이루어진다.
문명과 문화의 절대성에 집착하는 가치의 관성적 한계이다.
현재에 정체되어 미지의 발현을 상상하지 못하는 지식과 문화의 고집이다.
네발과 두발과 불과 도구와 지동설과 농경사회와 산업사회와 칠거지악과 성의 평등이다.
지식과 데이터의 존재이유는 문화적 절대성의 파괴적 한계를 예지하는 것이다.
물리적 현상의 증거에 의존하는 지나친 믿음의 가치전환 이다
가르침에 신은 형체가 없다고 하였다.
현상하나 물리적 존재가 아니라는 것이다.
우주론에서 면(창)의 이론이 있다.
창의 충족으로 다음 창이 열린다.
경험과 직관에 의한 가치의 분별력이 필요하다.
평화와 공존에서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파괴없이 중첩되어 흐르는 것이다.
문명의 진화에 조급할 이유가 없다.
역사의 미래는 오로지 인류의 선택으로 나아간다.
지배와 패권에 집착하는 경쟁적 문화가 문제이다.
산업과 지식의 조급함이다.
지식과 문화의 미래는 시간의 충족으로 미지에 접근한다.
학습적 조건의 성숙으로 무한한 존재를 찾아가는 것이다.
문명은 학습의 연속성으로 존재하며 선택에서 하나의 절대성이 아니다.
진화 또는 지성의 무지는 파괴의 시간에 또다른 문명의 시대를 필요로 한다.
지식과 데이터의 문화는 파괴가 아니라 가치의 학습으로 문명의 전환을 이끌어낼수 있다.
지식 즉 테이터의 예지력이다.
암시적 질서는 하늘이 아니라 삶의 현상으로 발현된다.
인류의 역사에서 수없이 경험한 생태적 공유의 진리이다.
문명의 진화에서 파괴적 현상과 학습의 전환을 이해해야 한다.
지식과 문화적 이해에서 가치의 전환이다.
상태계의 파괴가 시작되었다.
물질문명의 관성은 인류의 능력으로 제어할수 없다.
대자연의 질서에서 문명의 절대 핵의 파괴력은 존재의 의미가 없다.
핵무기의 목적은 문명파괴이다.
코로나 팬더믹 시기에 잠시 생태계의 회복이 있었다.
문명의 휴식이다.
대자연의 존재에서 생태계 회복을 위해 저항할수 없는 현상이 발현할수 있다.
파괴적 구원이다.
문명의 자연파괴에서 지식의 대응이 있다.
공유경제이다.
데이터의 진실이다.
수요와 공급의 데이터를 활용하여 자원을 절약하는 것이다.
경쟁의 차별에서 가시적 욕구의 치장을 위한 자원낭비의 개혁이다.
자본과 시장경제에서 데이터를 돈으로 해석하는 잘못이 있다.
존재의 가치를 돈으로 평가하는 물질문명의 시각이다.
자본과 시장경제의 대세에서 절대성의 관성으로 이해한다.
기계적 생산성 시대가 지척에 있다.
생산성 경쟁시대도 끝이 멀지 안았다.
생태계와 자원보호에서 물질은 공유되어야 한다.
물리적 현상의 형이상학적 문명은 미지의 암흑에서 탐구적 상상력에 기인하였다.
정신문명이 물질의 현상과 거리가 있을것 이라는 논리는 잘못된 것이다.
오히려 미래를 예지할수 있는 상상의 범위를 확대할수 있다.
미지의 접근에서 창의적 예지력은 두뇌의 집중력과 분별력을 활용하는 정신의 영역이다.
생물학적 영역은 무한한 미지이다.
물리적 생명체로 우주끝에 가야 한다.
반 문명론은 이러한 문제의 집착이 자본과 기술산업에 세되되어 파괴된 인류의 자아적 영역이라는 주장이다.
기술산업과 자본이 인류의 자아적 영역을 지배하고 있다는 것이다.
나의 생존과 존재에서 산업경쟁과 자본의 차별에 인간의 생태적 본질을 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기술산업과 자본에 예속된 자아적 정신세계이다.
카진스키의 의지는 표현에서 희생이 전제된 폭력이 있었다.
사회적 시선의 집중을 위한 시도의 변병이었다.
학문적 소통에서 시대적 배경으로 판단할수 있다.
현대는 통신사회이다.
소통의 글로벌 시대이다.
학문적 소통에서 많아서 문제이다.
정신과 물질의 문제의식으로 미지를 예견할수 있다.
가석방 없는 수형생활 이었다.
수형생활 중 저술하여 희생자의 보상이 있었다고 한다.
2023.8.1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