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사사로움.
삶의 원초. 본문
128. 삶의 원초.
새만금 파행의 책임에서 승패적 선택의 기우가 작용한다.
울타리의 고집으로 옭고 그름의 분별력을 왜곡하려는 시도이다.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우리편의 영원한 몰빵이다.
제삼지대는 철새들이 간보는 도래지가 아니다.
국제대회는 중요하다.
새만금 잼버리 대회 파행은 청소년들의 생태적 학습에서 국격으로 비화되었다.
나라 뻿앗긴 역사 길게 참으며 이룩한 국격이 "획"하는 순간에 낙동강 오리알 되었다.
선진 7개국에 초청되었다는 입바른 소리가 낮설고 어설프다.
글로벌 사회의 경쟁으로 먹고 살아야 하는 처지에 형광등 켜고 낮바닦 들고 다니기 딱하다.
굿판의 정성이 부족한 것이다.
소가죽의 원성이 지나치게 심했던 것이다.
미래를 위한 창의적 예지력에 무감각한 정치와 행정의 무지이다.
손님의 정체성에서 지성의 결핍은 동방예의지국의 문화가 아니다.
그나마 이룩한 대한민국의 잠재력으로 손님들 속창시 달래어 이만하여 다행이다.
이불에 싸고 키 쓰고 소금 받아오라면 죽을 맛인것 안다.
그래도 철은 있어야 재발방지의 능력향상으로 속창시의 미래가 편한 것이다.
잼버리 대회는 국가의 연속성에서 보호해야 하는 청소년들의 미래이다.
타국에 아이들을 보낸 부모의 걱정이다.
참가에서 글로벌 사회의 소통과 문화적 공유의 기대이며 순수한 의지의 규합이다.
한푼두푼 모아 미래의 꿈을 실현하는 청소년들의 노력이다.
생태적 체험으로 문명의 질감을 이해하려는 노력이다.
생태계와 문명의 공존적 체험이다.
글로벌 사회의 공유에서 섞이여 발현하는 중용의 이해이다.
미래를 위한 학습에서 보호해야 하는 떡잎의 희망이다.
새만금 파행은 새삼스런 체험의 교훈이다.
잼버리의 체험학습에서 잘못된 설정과 준비의 파괴적 경험이다.
생리적 원초에서 회피적 문화의 한계적 체험이다.
잼버리는 익숙한 일상을 이탈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훈련이다.
적응의 학습은 실제에 접근하는 방법이 필요하다.
체험적 경험의 접근이다.
실제상황을 대비하는 예방주사 이다.
체험에서 미완의 청소년 보호가 필요한 국가적 준비의 필요이다.
정치에서 국제대회 유치는 국격을 가늠하는 문화적 책임의 설정이 필요하다.
새만금 파행은 준비와 운영의 조건적 상황에서 결과의 예지가 부족한 국정운영의 실기이다.
국가의 역량을 충분하게 투입하지 못한 행정의 오류이다.
관행적 습관으로 생리적 한계와 문화적 욕구를 설정하지 못한 무지이다.
스카웃트 대회에서 문명을 소홀히 하는 생존의 원초적 학습은 무리이다.
생태적 체험에서 문화적 욕구의 환경설정이 필요하였다.
문명과 자연환경 체험에서 한계적 이해이다.
세계의 시각이 주목하는 체험학습에서 환경적 조건의 예지력이 막연한 행정이었다.
능력의 한계에서 자의적 논리의 선입견이 실제상황을 왜곡한다.
준비에서 경험의 교훈을 고착화 시킨 관행적 지식의 결과이다.
8년전 간척지에서 있었던 조건적 디데일의 판단에서 결과에 연연한 것이다.
조건의 방심에서 전에 그랬으니 이번에도 그럴 것이다 라는 두리뭉실한 판단이다.
자질이 부족하면 손에 쥐어 주어도 모른다.
위기에서 운영의 파괴적 결과를 경험하고도 반복되는 문제이다.
안전에 대한 포괄적 접근이 부족하다.
능력에서 일 터져야 부분적 학습이 이루어지는 조건의 이해와 예지의 부족이다.
선택의 시간에 무한정 조건반사의 학습을 기대할수 없는 것이다.
나의 신변에 견주어 미래를 설정하는 안주의 방만이다.
문명으로 제단된 제도와 생태계의 경험적 생존환경은 다르다.
책상머리의 부담이다.
요람에 안주하는 기득권 보호에서 생태계의 생존환경을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다.
산전수전 공중전의 경험적 지식 부족이다.
제도로 국정을 통제할수 있다는 삶과 생태적 원초의 무지이다.
파행적 원인의 공유에서 배설의 실체를 회피하려는 문명의 우월적 망상이다.
생명의 목적을 상실한 물질의 배설은 생태적 화합물이다
생존의 물리적 조건에서 사용후 버려지는 물질의 무익은 회피적 문화이다.
더러운 것은 생명과 분리된 물질의 학습적 인식이다.
생명과 식생의 순환에서 사체와 배설의 문화적 이해이다.
태우고 깊이 묻어야 한다.
보이지 안는 것으로 부정을 회피한다.
현대의 문명과 문화로 싸는것의 물질순환을 유익으로 포장할수 없다.
문명의 절대성에 근접하는 시대에 아직 생태적 물질순환은 생명의 근원이다.
생명과 물질의 관계에서 필요의 유익과 배설의 무익적 순환이다.
잘 드셔도 싸는것의 원소적 동질성과 회피의 문화적 처리는 차별할수 없다.
문명의 한계이다.
싸는것의 평등을 차별할수 있다면 신의 가르침을 배척하는 완벽한 기득권을 완성할수 있을 것이다.
완벽한 권세와 지배를 상상하고 기도하는 부류의 합의체 상실이 생태적 순환의 순리를 회피한다.
특별해야 한다는 사대부의 오만이 생체적 원초를 부정하고 은폐하는 것이다.
회피적 욕구에서 격리의 완벽을 주장하는 허세와 벼슬이다.
시집살이 고달품에 가장 편한곳이 화장실 이었다.
아침 화장실에서 문명과 문화와 문학이 완성된다.
차별의 성취에서 싸는것의 평등은 현대의 문명으로 어쩔수 없는 문제이다.
배설의 차별을 완성할수 있다면 신성한 신분의 고결한 생명추앙에 빈틈이 없을 것이다.
창의적 우려에서 유전적 연속성의 이해는 회피적 문화가 아니라 사랑이라는 가르침이 있었다.
거시기의 유익과 무익에서 분별력의 예지가 필요한 부분이다.
무었의 집착인지 근자의 정치적 신념에서 잘못을 인정하지 못하는 지배적 가치관이 있다.
우월적 선입견에 의한 문화적 이해의 소홀함이 새만금 파행의 원인이다.
제 몸뎅이 안주가 생존의 기준이라는 차별과 방치의 안일한 시각이다.
제 멋데로 하는 수읽기의 오류이다.
제 몸뎅이 편하면 세상이 편한 것이다.
목민관의 자세가 아니다.
새만금 파행에서 문명이 요구하는 것은 배설물의 위생적 처리이다.
순간적 원소화의 필요이다.
수세식의 회피적 은폐에서 원소분해 화장실의 요구이다.
싸는것의 미래는 나오자 마자 원소로 환원되는 물질순수의 시대이다.
배설의 회피적 문화를 개선하는 완벽한 자원 재활용의 미래이다.
문화적 성찰에서 상상하고 기도하시면 반드시 이루어 진다.
신의 가르침에서 절실하게 원하면 이루어 진다고 하셨다.
생태적 체험에서 학습된 문명의 이기는 이해해야 한다.
대회의 환경설정에서 문화적 배려의 필요이다.
체험학습에서 생태적 생존의 원초를 요구하는 것은 해병대도 어렵다.
귀신잡는 해병이 규범의 분별력에서 갈팡질팡 세파의 어려움을 격고있다.
물질의 더러움은 회피하면 되지만 정신과 신념의 의지는 회피할수 없는 것이다.
세상사 다양성은 언제든 꼽사리의 권리가 있다.
국가의 운영에서 민생은 삶의 원초를 이해하는 것이다.
민생 우짜고 말씀만 마시고 화장실 부터 살펴봐라!
회피적 문화에서 문명의 우월적 시각은 평등의 부정이다.
새만금의 파행에서 싸는것의 안정과 평등으로 지켜지는 인륜의 저항이 힘들다.
안타까운 것은 낙동강 오리알의 책임에서 정치판 옆구리 터지는 어처구니가 있다.
선택의 승패에 집착하는 지역갈등의 권모술수는 망국의 오지랖이다.
반복되는 파행은 국정운영 씨스템의 불확실성과 인적자원 부재의 인재이다.
정치판 울타리의 이기주의를 우선하는 망국적 말씀의 책임이 있을 것이다.
한반도 민족을 우선하는 광복절의 본질을 회복하시기 바란다.
2023.8.1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