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사사로움.
공존의 시대. 본문
108. 공존의 시대.
공존의 요구는 지식에 의해 선택된 이념적 역사의 결과와 교훈이다.
이분법적 역사에서 생명과 인륜의 경계적 비극이다.
좌우논리의 대립적 경계와 패권적 지배에서 인륜의 차별과 비극의 역사가 불편하다.
힘의 논리는 상호주의의 공존보다 주체의 지배적 질서이다.
아직도 해소되지 못한 한반도 분단의 현실이 냉전적 국제질서의 비판과 반론의 의식에 있다.
파괴적 대립과 문화의 단절은 생명과 인륜의 피해를 수십년 인내하고 있다.
국제질서의 지정학적 경계에서 정치적 공존을 주장하는 것은 역사의 교훈이다.
좌우논리의 대립은 반론의 수용적 한계를 설정하는 파괴적 질서이다.
획일적 의식의 강요는 선택했다고 생명의 위기가 되었고 선택 안했다고 죄가 되었다.
21세기 통신사회에서 지식과 문화의 발전과 확장은 지적권리와 비판적 저항을 병행한다.
인류의 지식은 아직 선지자의 가르침이 필요하다.
케냐에서 이단적 종말이 있었다.
목자의 탈을 쓰고 굶어 죽으면 선지자를 만날수 있다고 하였다는 것이다.
이백여명이 숲에서 희생되었다.
아이 손잡고 찾아간 부모도 있었다.
폐쇄된 집단에서 사고의 절대성에 구속된 비극적 선택이다.
선지자의 가르침을 왜곡하고 빙자하는 잘못된 전달에 의해 파괴되는 분별력의 피해이다.
절대성에 치우쳐 집착하는 폐쇄된 정신의 혼란이다.
보편성이 결여된 황당한 지배이다.
인류의 존재와 의식에서 단절된 정신의 잘못된 선택이다.
절대자의 힘에 의지하는 폐쇄적 지식과 문화의 한계이다.
오로지 나로 인해 존재한다는 관계의 절멸이다.
관념적 사고의 집착이다.
잘못된 의식으로 집단화된 지식과 문화의 극단적 한계이다.
국제질서 이든 국내정세 이든 지배력의 절대성에 치우친 제도와 권력은 믿음의 한계가 있다.
보편성이 결여된 폐쇄된 의식의 피해이다.
운명과 선택의 강요이다.
지식의 정점과 주류는 시대의 문화적 변화에 의해 주체를 상실한다.
칠거지악과 삼강오륜의 역사가 그렀다.
역사의 이해에서 문화적 가치의 절대성은 없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는 공존하는 것이다.
시대적 지식과 문화의 체제와 제도에서 영원한 것이 없다.
정신과 문화로 존재하는 것은 변한다.
글로벌 지식과 문화의 공유에서 이분법적 획일성의 불편함에 저항하는 공존의 요구이다.
힘의 패권적 대립과 파괴적 역사에서 합리적 관계의 포괄적 수용을 위한 중용의 필요이다.
중용은 절대성의 극단적 치우침에서 합리적 가치의 실리를 추구한다.
21세기 지식의 분별력은 미래를 예지할수 있는 현실적 가치를 설정할수 있다.
원인과 결과에서 지적인 관점의 효율성이 예지력을 향상시킨다.
글로벌 지식과 문화를 공유하는 통신사회는 절대성의 기우적 믿음이나 맹목적 집착의 시대가 아니다.
사회의 구성에서 사물적 위기의 예지와 대응할수 있는 지식과 문화를 공유한다.
하나의 정신이나 상대적 논리의 이분법적 의식에 지배되지 안는다.
대자연의 질서를 이해하는 힙리적 주체의 확실한 의지이다.
통신사회의 지식과 문화의 공유는 권력 즉 힘에 의지하는 순종적 역사의 시대가 아니다.
지식과 문화의 분별력은 지잘난 맛에 산다.
사물의 판단에서 독립된 지성이다.
공존은 절대성에 집착하는 기우적 믿음과 힘의 지배에 의한 파괴적 재앙의 합리적 염려이다.
대립과 파괴적 역사에서 문화적 진화를 위한 지식과 지성의 역할이 필요하다.
새술은 새부대에 담으라고 하였다.
21세기는 존재를 공유하는 통신사회이다.
지식과 문화를 공유하는 민심이 주체가 되는 시대이다.
이념적 역사의 관성에 있는 국수적 논리의 지배는 불가하다.
중용의 공존은 체제의 혁명적 결과에서 생명과 인륜의 피해를 경험한 역사의 교훈이다.
패쇄적 지배의 획일적 선택이 강요되는 지적의지의 불균형을 해소하는 것이다.
문화적 진화에서 민주주의와 자유이다.
진화의 필연적 원리에서 시대적 의식과 지성의 변화이다.
피를 요구하는 말살적 혁명의 논리와 진실은 역사의 시험으로 퇴색되었다.
이념적 역사의 소멸이다.
관성으로 남아있는 국제질서의 힘의 논리는 패권주의 이다.
국제질서에서 힘의 지배를 유지하기 위한 새로운 사선의 형성이 신냉전의 패권주의 이다.
힘께나 쓰는 버르장머리로 옛것의 미련이 아쉬운 것이다.
문화의 순리적 질서를 외면하고 멀쩡한 곳 건들어 절대지배의 수단과 방법을 마련해 보자는 것이다.
지성의 비판과 저항을 이분법적 관념에 가두려는 정치의 편협함 이다.
대립과 파괴가 전제된 패권적 힘의 논리에서 지배와 차별을 해소하는 문화적 의지가 필요하다.
글로벌 지식과 문화의 공유에서 미래를 위한 공존의 이해이다.
인류의 진화에서 존재와 목적의 확대이다.
미래을 위한 새로운 국제질서의 설정이 필요하다.
국제사회의 공존적 질서이다.
파괴의 위기가 내제된 절대성의 집착이 아니라 실용적 가치를 우선하는 문화의 필요이다.
시대적 선택에서 추상적 절대성이 아니라 미래 지향적 가치의 예지력 이다.
다양성을 인정하고 수용하는 개념의 포괄성 이다.
두드리면 열린다고 하였다.
내안의 것이 전부가 아니다.
통신사회의 신뢰를 통해 힘에 의지하는 무리적 습성의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야 한다.
인류의 근대사는 이념적 좌우대치에서 파괴적 힘의 경쟁이었다.
이념적 사선에서 좌우대치의 폭력으로 민생의 비극적 희생이 많았다.
절대성의 추종을 강요하는 힘의 질서는 타의의 지배와 합리적 주체성을 구속한다.
선택의 자유에서 획일적 주장의 강요는 지식과 문화의 저항이 발생한다.
역사는 수많은 면 즉 창을 지나 현재에 있으며 또다른 창을 열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과거도 미래도 없이 현재에 머물러 있는 폐쇄적 사고가 절대성의 집착이다.
현재에서 변화할수 없다는 잘못된 사고이다.
인류의 지식과 문화는 글로벌 공유의 시대이다.
개별적 의지에서 선택의 다양성을 충족하고 있다.
21세기의 지성은 스스로의 절대성에 집착하는 국수적 개념에 구속되지 안는다.
의식의 자유는 하나의 창에 머물지 안는다.
과거는 역사의 기록으로 또는 진화의 과정에서 내제된 생태적 질서의 존재적 이해이다.
미래는 무한한 것이다.
두드리고 두드리면 열린다고 하였다.
수없이 두드려 현재에 있다.
냉전적 좌우논리에 구속되어 현재에 머물러 있을 이유가 없다.
인류의 운명적 선택은 스스로에게 맏겨진 것이다.
사과의 전설은 자본과 시장경제의 시각에서 물질경쟁의 발전적 선택이다.
물질의 분배와 공유의 주장에서 탐욕의 파괴적 선택이 된다.
형이상학적 관점에서 정신보다 증거적 실체를 주장한다.
생명에서 물질의 선택이다.
증거적 실체에서 이념적 시대는 지식이 설정한 생산과 분배의 논리이다.
문명과 생존의 공유에서 생산도 필요하고 분배도 필요하다.
생산과 분배는 상대적 논리의 이유가 없는 공존의 조건이다.
생산을 위해 분배하고 분배를 위해 생산하는 것이다.
과정에서 선의 지배가 존재 또는 질서의 이유가 된다.
선악의 관계에서 선의 지배가 인류의 역사이다.
이분법적 진영논리의 가치는 악의 대립과 파괴가 전제되어 있다.
지배의 탐욕과 차별에서 국수적 논리의 주장이다.
글로벌 지식과 문화의 분별력에서 가치의 공유는 생명과 인륜을 우선하는 순리적 선택이다.
상상의 범위에 있는 것은 존재한다.
불편하여 요구하는 것은 현실과 가까운 미래이다.
키신저 전 국무장관께서 21세기 태평양과 대륙의 대립으로 형성되는 신냉전의 파괴적 공멸을 경고하였다.
탈 냉전과 자유의 보편성 확장을 위한 외교 즉 관계의 교훈이다.
노병은 살아있다.
2023.5.2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