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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과 기회.

박세욱. 2022. 10. 28. 16:42

87. 경쟁과 기회.
대자연의 질서에서 인류의 생존은 생태계의 합리적 질서를 유지하는 것이다.
자본권력의 차별적 생존에서 존재의 절대성 선(인륜)의 질서가 파괴되고 있다.
자본의 질주는 대자연의 합리적 분별력을 상실하고 있다.

종교나 철학의 대 자연적 요소보다 물질권력이 우선하는 것이다.
자본과 권력의 집착은 선지자의 계시를 무력하게 한다.
인륜의 무덤같은 물질권력의 시대이다.
공동체의 지배력은 생산성과 자원의 분배를 관리하기 위한 것이다.
자원의 활용에서 사유화의 탐욕을 우선하는 자본의 형태는 생존과 분배의 위기에 있다.
생산성과 자원의 탐욕적 시류에서 인습은 차별의 만족을 우선하고 있다.

생태계의 생명유지에 필요한 물질이 자본경쟁의 탐욕으로 불균형의 시대에 있는 것이다.
삶의 역사에서 선지자의 가르침을 우선하는 생명과 인륜을 위협하는 것이다.
사회구성에서 자본의 절대성은 권력과 제도의 선점으로 기회의 불균형을 초래하고 있다.
생산성에서 능력의 검증은 실무의 과정이 있으나 기회의 시작이 불평등한 것이다.
시장경제의 생존과 경쟁에서 자본없이 할수있는 것이 없다.
의식주의 생존과 가족과 교육과 문화적 가치에서 경제적 차별의 인습을 수용하고 운명적 체념으로 산다.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이승의 죄와 벌에서 선과 악의 경계를 확실하게 정립하고 있다.
부자와 가난한 자의 경계에서 전생의 선과 악이 성립되고 있다는 것이다.
기회의 불평등에서 가난의 대물림은 애비의 죄 값을 자식이 치루어야 하는 멍멍이 같은 시대이다.

자본과 문화적 성취의 기회에서 기득권 또는 부의 대물림은 가난한 자의 기회상실에 있다.
세상의 한이 쌓여 신의 재림을 애타게 기다려도 서울 간 오빠는 오지 안는다.
이천년 후에 오신다고 하셨는데 작긋들 몹쓸짓 아시는지 모르시는지 안오신다.
우주 한바퀴 돌아보시고 오신다는 말씀이 이천년 하고 22년 지났다.
신이라는 절대성의 이해에서 이천년 밀레니엄 대란 운운하실때 오셨어야 하는 것이다.
컴퓨터 운영에서 1999와 2000의 인식이 혼란스럽다고 하였다.

사회와 경제 씨스템이 아작난다고 하시드만 서민들 호주머니 만 털어갔다.
자본의 경제논리가 인륜의 바탕이 아니라 수단과 방법의 무자비함에 있다.
컴퓨터를 창조한 인류의 지식과 오만이 아직은 선지자의 절대에 미치지 못하는 것이다.


컴퓨터 대란 우짜고 하다가 맹송맹송 하게 지나가니 선지자의 송사가 별볼일 없어진 것이다.
오시다 창조의 진리가 아까워 지랄염병 하는 작긋들 아작날때 기다리시는 것이다.
큰 것으로 이천년 후의 말씀을 정리하시려는 것이다.
북망산천에 거처 정하시고 작긋들 모실 풍수지리 보시고 계신다.

진리의 오지랖 걱정하지 마시고 즈려밟고 오시면 된다.
지랄염병 하는 부잣집 곳간 터는데 낮바닦 정의와 규범따지고 계신다.
요사이 도적넘과 사기꾼에 룸싸롱과 아파트 관리대장으로 정의와 규범의 지성이 무섭긴 하다.
오십억 백억은 아~들 장난이다.
백만원 상차림은 조직의 벼슬과 지성의 문제이다.

이것이 문화적 이해와 규범의 범위에 있다는 특별한 시류의 오지랖 이다.
민주주의의 정체성을 긍정의 생산성이 아닌 모함과 협잡과 권모술수로 꾸미려는 승패적 정치가 문제이다.
경제의 기득권에 집착하여 제도와 기회를 선점하려는 부의 세습이 문제이다.
경제는 자본 기득권에 줄서서 땅 따먹기에 속절이 없다.
정치는 끼리끼리 북치고 장고치는 장기판으로 속수무책 이다.
힘센분들 많아 방종이 판을 치는 시방오셔야 하는데 죄와 벌의 가르침에서 작긋들 간볼 기미가 없다.
물질탐욕의 약육강식에서 선의 존재는 사라지고 분배의 공존보다 내것이 우선하는 것이다.
자본권력의 지나친 물질탐욕은 지적사회에서 지성의 인내를 위협하고 있다.
시장경제의 무한경쟁은 생산성 확장으로 물질풍요의 시대로 발전하였다.

 

시장경제의 발전은 생존에 필요한 절대가치 이상의 물질을 소유할수 있는 시대이다.
선지자께서 생명과 인륜을 우선하는 선의 가르침으로 생산성과 물질의 공정한 분배를 위해 계시하셨다.
인류의 지성은 돈과 물질의 관계에서 돈으로 돈을 버는 투기와 이자의 위험을 말씀하였다.
제조업의 생산성을 위협하는 상업 우선주의의 경고도 있었다.

자본의 창조에서 생산성과 물질의 편중을 경고한 것이다.
생존을 충족하는 물질의 순수에서 분배의 정의를 훼손하는 지배력의 권세와 부의 탐욕을 경계한 것이다.
물질풍요의 시대에 인류의 생존조건이 차별의 상대적 만족을 요구하는 우월적 인습의 위기에 있다.
고독사에 생활고로 가족이 희생되는 안타까운 사건이 차별의 시대를 인내하고 있다.
젊은 노동력이 사회의 사선에서 의식주에 허덕이며 기회상실의 가난에 있다.

권력과 가진자의 기득권은 물질탐욕과 대대손손 영화를 위해 제도와 기회를 선점하였다.
역사의 순리와 시회적 통념의 미래를 포기한 경쟁의 상대적 낭비는 형이상학의 만족을 우선한다.
문화적 범위를 이탈한 경쟁의 낭비는 생명의 생물학적 연속성 마저 위태롭다.

지배력과 자본의 정의로움으로 해결을 기대할수 없는 처절한 시장경제의 경쟁논리가 작용하는 시대이다.
부익부 빈익빈의 차별적 만족은 자비와 사랑의 선처를 겨울철 대문밑 멍멍이 밥그릇 만들었다.
자본의 복종은 생명과 인륜에서 신의 존재를 안타깝게 하는 것이다.

기회의 상실에서 생의 가시적 효과로 경쟁의 생산성을 유지하는 치열한 생존조건을 요구하는 것이다.
지배력의 권좌와 기득권의 안주를 위한 삶의 치열한 경쟁이 인륜의 추락을 외면하는 것이다.

승자에게 주어지는 선택의 기회와 상대적 욕구의 우월적 충족이 선의 가치가 되었다.

생명과 인륜을 우선하는 종교와 철학은 선의 모호성으로 자본시류의 시간에 합류하였다.
타락한 선이 지배하는 자본시류의 시대이다.
인류의 심성이 안타까운 것이다.
21세기 지식문화 사회에서 기회의 불평등을 인내해야 하는 문화적 불편함이 조용하지 안다.
시장경제의 상대적 빈곤은 의식주에 필요한 물질의 소유에서 절대빈곤의 사지가 있다.
지배력과 자본이 돌보아야 하는 생명과 인륜의 사각지대 이다.
부의 대물림과 소득의 불평등에서 분배의 방법을 찾아야 한다.

자본의 낙수효과는 철지난 경제논리이다.
공유의 시각에서 공동체의 인프라는 확장되어야 한다.

경쟁의 필연에서 패자로 규정되는 생명과 인륜을 보호해야 한다는 것이다.
개별적 분배의 이해보다 공익적 분배가 효과적 이다.
제도에서 국민연금과 국민 의료보험의 공공성이 대표적 이다.

인륜에서 직업과 신분의 차별은 문화적 이해와 규범의 논리가 작용하는 범위에 있어야 한다.
분배의 전제에서 생존이상의 물질풍요 대이다.
문화와 지성이 이해하는 경쟁의 범위와 기회의 평등은 규범으로 설정되어야 하는 것이다.
기업의 소생을 위해 투입된 수십조 공적자금의 행방이 묘연하다.
나라경제가 어려울 때 서민들은 같이 살자고 세간살이 내어놓았다.

경제는 어려울 때 국민이고 잘 나갈때 기업이다.

세간살이 내어놓은 서민들은 비정규직과 중소기업등 차별의 불평등을 견디어야 한다.
공적자금으로 호의호식 하시던 분들께서 기득권의 꿀물에 어께 힘주고 계신다.
자본의 기회주의 이며 문화와 규범의 모순이다.
사회의 형평성에서 자본논리의 부작용을 관리하는 것이 지배력의 역할이다.
자원과 생산성에서 지배력의 경제상식은 국가가 부담할수 있는 한계를 설정할수 있었야 한다.
정치의 간섭으로 전체와 미래를 예견하지 못하는 경제정책이 결국 서민경제의 부담이 되는 것이다.
물질권력에서 자유를 찾으려 하는 인류의 보편적 가치는 이타적 배려의 심성이다.
순리가 정의롭지 못하면 시끄러운 것이다.
사회나 개인이나 순리의 질서가 깨지면 집중력이 떨어진다.

사고는 사소한 실수에서 시작한다.
신의 재림은 일상에 존재하는 것이다.
난세의 특별한 영웅보다 평화를 지키는 조용한 영웅이 필요한 것이다.
물질풍요의 지루함은 특별한 시간과 자극을 요구한다.
정신의 풍요에서 물질의 집착과 육신의 만족은 한계가 있다.
불행보다 평화에서 재림은 이루어져야 한다.

자본과 생산성 경쟁에서 차별받는 순리와 운명적 심성의 안타까움을 회계하시라는 것이다.
2022.10.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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