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사사로움.
정치판의 숟가락. 본문
74.정치판의 숟가락.
양극화의 승패적 선입견은 국민을 편갈라 정치적 이익을 취하려는 과거정치 이다.
한세기에 이르는 분단의 이념적 갈등이 좌,우로 갈라져 극단의 선택을 강요한 역사가 있다.
6.25전쟁, 제주4.3과 여순사건, 연좌제등 우리사회의 이념적 갈등은 수많은 비극을 포함하고 있다.
동서냉전의 지정학적 위치에서 한반도 민족의 자주성 부족으로 격어야 했던 역사이다.
조선후기 세도정치와 쇄국정책으로 글로벌 문화의 단절이 국제사회에서 국가경쟁력을 약화시킨 문제가 있다.
구한말 세도(권력)가의 정치적 대립은 외세의 교두보 역할을 자임하여 민족의 자주성 결핍으로 이어졌다.
외세의 한반도 진출에서 우리의 문화를 지켜야 하는 지배력의 결속이 부족하였던 것이다.
당쟁의 대립으로 울타리 치고 권세로 인륜을 억압하여 사회질서를 유지하려는 사대부의 기득권 안주였다.
동학의 거사는 사대부의 수탈과 외세의 한반도 진출에서 우리문화와 자주성을 위해 저항하였던 역사이다.
동학은 한반도의 지정학적 국제정세에서 국가 지배력의 한계에 민초들이 저항하였던 처절한 역사이다.
구한말 국제사회의 정치와 산업 격동기에서 한반도 민족의 정체성은 지배력의 대립과 기득권의 안주에 의해
역사의 비극을 경험하였다.
한반도는 아직도 이념적 갈등의 국제정세로 인한 분단의 경계에서 오천년 역사의 주도권으로 대립하고 있다.
분단의 경계로 인한 대립적 갈등이 정치,사회의 선입견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세도정치의 과거와 분단의 문화적 관성에서 승패적 대립의 선입견을 개선하여 글로벌 지식문화사회와 동행하는
실용주의적 시각이 필요한 시대이다.
이념적 경계의 관성에 있는 정치,사회의 실용주의적 개혁이 필요한 것이다.
수없이 주장하고 방법이 제시되었으나 양극화 정치의 기득권에 의해서 외면되고 있는 정치개혁이다.
역사의 교훈에서 울타리 정치의 편협한 밥그릇 선입견으로 정치개혁을 우선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념적 분단을 빌미로 전쟁의 시나리오를 작성하여 국민의 실용주의 요구를 호도하는 것이다.
신냉전이 염려되는 국제정세에서 한반도의 자주성은 과거의 교훈을 필요로 하고 있다.
21세기에 오히려 지정학적 위협의 증가와 파괴적 무기의 대립으로 위험이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정치,사회의 이념적 동서냉전의 대립에서 세계경제의 치열한 주도권 다툼이 추가된 경계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
한반도는 여전히 지정학적 위치의 이념적 갈등 속에서 21세기에 대두되는 신냉전의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딜레마에 있다.
태평양과 대륙이 우리의 바램데로 친하게 지낼수 있는 확률은 경제와 중국해의 긴장으로 작아지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의 냉전뒷끝 폭팔로 국제정세의 위기를 더하고 있다.
구한말 외세에 줄섯던 세도정치와 기득권의 역사를 살펴봐야 하는 것이다.
분단의 선입견으로 양극화된 좌,우 논리를 우선하여 이짝저짝 줄서서 운명을 시험하지 말라는 것이다.
위험한 것은 여전히 이념적 시각으로 울타리 정치의 편리함에 줄서서 정치하려는 조직정치가 대세라는 것이다.
독립된 지성의 분별력과 집단지성의 사회참여는 시대적 흐름에 있다.
21세기 통신사회에서 민심의 역할은 시대를 주도하는 정치,사회,문화의 주체가 되었다.
문제는 문화적 흐름을 이해하지 못하고 양극화 정치의 기득권에 집착하는 기성정치의 불통이다.
세상이 지식과 문화와 지성의 분별력으로 변하여도 치간에 울타리 치고 줄서라고 허세 부리는 조직논리이다.
공동체의 생산성에서 인륜과 민심을 우선하는 정치적 신념의 논리적 주장과 설득이 줄서기 문화의 조직논리에
정치생명이 좌지우지 되는 문제가 있다.
논리적 설득의 신념이 아니라 개인적 성취에 집착하여 보편성이 결여된 머릿수의 무리적 과시로 거짓선동하여
정치하려는 문제이다.
정치적 신념없이 무리적 시류에 편승하여 지배력에 합류하려는 치졸한 정치와 정치꾼이 있다.
일해 놓으면 숟가락 먼저 올리는 지성과 염치를 모르는 시정잡배들이 지랄염병 하는 것이다.
행여 땀나고 다칠세라 몸뎅이 보신에 급급하다 어께힘 들어가면 버선발로 튕겨져 나와 치간 앞에서 논리부제의
굿판 벌이는 모리배들의 꼬라지 이다.
멍석으로 말아서 실컷 두들겨 패고 두엄자리에 사나흘 버려두어도 괜찬을 끈질긴 생명력이다.
정치의 순수를 주장하시던 분들은 정치판의 협잡과 권모술수로 논리와 의지를 상실하였다.
치간의 울타리에 줄서는 기회주의가 판을 치는 대한민국의 정치판이다.
쳐묵고 돼먹지 안은 설레발이로 오리발 내미는 것은 다반사 이다.
비교우위의 경쟁에 지쳐 여기저기 죽어 나가고 배고파 빵하나 훔쳤다고 혼이나야 하는 사정질서이다.
선진국 우짜고 즈그들 잔치처럼 치적하면서 오지랖은 겨울철 대문 밑에서 굴러다니는 멍멍이 밥그릇의 춥고
설렁함 뿐이다.
더러워 욕 나오는데 민초의 지성과 정의 때문에 속창시 아린 것으로 인내하는 것이다.
좀더 까불면 속창시 뒤집는것 일도 아니다.
정치의 허세에 취해서 함부로 어께에 힘주지 말라는 것이다.
정치적 분별력에서 냉전의 관성에 있는 좌,우 논리라면 이짝이나 저짝이나 밥그릇은 도긴개긴이다.
정치개혁 없는 양극화 정치는 정권이 바뀌고 세월이 가도 어차피 울타리 정치이다.
좌,우 논리로 치장하고 밥그릇에 집착하여 세월만 소비하는 정치판이다.
21세기 대한민국 정치판의 선택에서 편협한 치간의 울타리가 될수는 없는 것이다.
지식문화사회와 민심의 욕구는 경쟁의 공정성과 패자의 생존조건을 요구하는 것이다.
보편성의 확장으로 경쟁에서 벗어나 안주할수 있는 사회,경제적 인프라 구축이다.
선진국에 진입하는 대한민국의 경제적 위상은 충분한 분배의 여력이 있다.
대한민국의 경제적 성과는 산업화 과정에서 국가 경쟁력을 위해 희생한 국민의 노력이 있다.
기업인의 노력만으로 현재의 사회,경제적 성과는 불가능한 것이다.
정치개혁의 목적은 민생과 민심을 우선하여 보편성을 확장하자는 것이다.
삶에서 운명적 선택권을 확장하자는 것이다.
누구라도 무었을 선택하여도 생존의 여력을 확보하여 자기만족의 행복을 추구할수 있는 인프라의 구축이다.
시대적 욕구충족에서 경쟁에 지친 인륜의 자유를 확장하자는 것이다.
말씀은 시도때도 없이 자유와 민주주의를 주장하지만 본질의 디테일이 부족한 것이다.
사회적 소양의 인식에서 큰틀로 퉁치고 지나가는 시대는 선동과 권모슬수로 정치하던 과거이다.
독립된 지성의 분별력과 집단지성은 사건과 사물의 팩트와 디테일로 사회적 이해를 설정하는 시대이다.
경쟁의 획일성에서 실존적 학문과 실용주의가 자기만족을 실현할수 있는 조건이 된다는 것이다.
성취적 욕구에서 사회 인프라의 안정감은 경쟁의 조급함을 완화할수 있다.
보편성의 주장으로 자기만족의 저변를 확장할수 있다면 언제든지 돌아갈수 있는 안식처가 마련되는 것이다.
경쟁의 치열함에서 돌아갈수 없는 절망적 문제가 불행의 원인이 되는 것이다.
인류의 진화는 지나치게 시간의 강박관념에 빠져있다.
정신이든 물질이든 만족의 저변을 확장하는 것은 모두를 위해 필요한 것이다.
인류의 존재와 진화에서 절대가치의 생명과 인륜이 우선하는 인식의 보편성이다.
물질문명과 시장경제의 경쟁에서 매우어려운 문제이나 정신이든 물질이든 자본의 차별은 완화되어야 한다.
정치개혁의 본질은 사회개혁에 있다.
정치의 대의에서 울타리 정치의 승패적 집착은 집단적 이익의 딜레마가 있다.
정치조직의 운영은 사회적 대의 보다는 조직 구성원의 욕구충족을 우선한다.
양극화 정치의 줄서기 문화에 집착하는 오지랖으로 미래는 어처구니 없는 것이다.
정치의 대의에서 비교우위의 성취적 욕구는 시류에 합류하는 밥그릇 문제라는 것이다.
일부의 반론이 있을수 있으나 대체로 정치의 대의가 시류의 밥그릇에 합류하는 수단으로 전락한 것이다.
양극화에 갇힌 정치판의 대의는 절대권력에 줄서서 성취적 욕구를 충족하기 위한 입신양명의 선입견이 있다.
대정부 질문에서 논리적 비판보다 인격의 저울추에 집착하는 승패적 시각이 우선하는 것이다.
대한민국 사회는 매사에 승패적 시각이 형성되어 있다는 것이다.
민주주의의 다양성을 충족하는 토론의 논리마저 부정하는 모리배들의 소견머리가 있다.
동서냉전의 국제정세에 의한 분단의 역사와 대립의 문화가 승패에 집착하는 양극화 정치의 원인이다.
정치가 모든것을 해결할수 있다는 설정은 매우 잘못된 것이다.
정치는 공동체의 관리주체이다.
민주사회에서 실체적으로 공동체를 운영하는 주체는 지식과 전문성에 의한 생산성이다.
21세기의 민주사회에서 정치는 주체와 협력하여 생산성의 갈등을 조정하는 공동체의 요소이다.
전제주의나 군사문화의 관성에 있는 절대권력의 향수는 잘못된 것이다.
공동체의 생산성에서 정치 우선주의는 어께에 힘들어가는 독선의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지식과 문화는 진화한다.
정신진화는 물질진화를 앞서가는 것이다.
21세기의 통신정보 공유와 지식문화사회는 민생과 민심을 우선하는 정치개혁을 요구하고 있다.
정치개혁은 문화적 욕구를 충족하는 지식의 요구에 의한 사회진화의 흐름이다.
선진정치 하시라는 것이다.
2022,7,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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