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사사로움.
양극화와 이질적 국정. 본문
281 양극화와 이질적 국정.
직선제의 국민적 요구와 승자독식 양당정치의 비생산성은 문제의 접근이 다르다.
글로벌 민주진영의 주류는 다원적 의회주의 이다.
대통령제와 다당제 병행에서 민주적 절차의 문제가 없다.
대통령 직선제가 파행적 양당정치의 빌미가 될 수 없다.
양극화의 진영에 줄서서 입신을 우선하는 사사로운 또는 경계적 폐쇄성이다.
진영의 승패를 우선하는 괴리적 생리의 선동이다.
통신사회와 지식의 시대에 무지한 말의 조장이다.
21세기 다원적 사회에서 20세기 이원적 사회에 머물러 있는 구태 한 정치이다.
시대를 대변하지 못하는 무지이다.
전체와 통합이라는 시대적 주제가 편협한 궤변으로 왜곡되고 있다.
계엄, 내란, 의회독제, 기획정치, 철지난 독제정권와 민주화의 유물이 난무하는 정치판이다.
시대적 퇴보이다.
북으로 집체보다 큰 풍선에 삐라를 싫어 날리고 무인기를 수차례 보냈다는 말씀이다.
방어적 목적의 평소와 다른 군사적 도발이다.
국회에는 국방위원회가 있다.
전쟁을 유발할 수 있는 특이한 상황으로 국정의 주요기관에 보고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
군은 국민의 안정과 국가의 이익에서 독선적 집단도 정권의 전유도 아니다.
더구나 전쟁의 위기를 조장하는 의도적 도발이다
국가기관의 국정운영 공유와 견제기능이 무용지물이다.
계엄의 처벌은 후차적 문제이다.
국정을 공유하지 못하는 승자독식 무소불위 정권의 그럴 수 있다는 독선적 행태가 잘못된 것이다.
극단적 양당정치의 폐쇄성이다.
삼권분립의 불안정이며 국정의 이질적 행태이다.
21세기의 대한민국에서 독선의 총체적 망령이다.
모라라면 모자란 대로 하시면 된다.
국민보다 우선하는 시대와 문화적 주체는 없다.
별 볼 일없이 제 잘난 사대부의 갓이 굿하는 것이다.
정치는 국민을 우선한다.
민주적 정당은 국가를 우선하여 구성되는 정치집단이다.
민주주의는 약속된 절차이다.
기획정치는 의견수렴의 합리성을 방해 한다.
기획자의 의도가 있다.
민주주의 본질을 훼손하는 집단주의와 개인적 거취의 사사로움이 개입하고 있다.
일부집단을 중심으로 하는 월권적 독선이며 민주적 절차를 방해한다.
체제의 본질을 왜곡하는 것이다.
민주화역사를 거론할 자격이 없다.
정치공학은 민주주의의 대의 국민을 우선하는 선의에서 작동되어야 한다.
정치적 토론의 목적은 국민과 국가이다.
너와 집단의 거취가 아니다.
민주주의 정치에서 독자생존의 어리석음은 존재할 수 없다.
일방적 철학으로 설득할 수 없다.
대자연의 질서는 존재의 비율적 합리성이다.
민주주의 체제는 대자연의 합리적 공존을 학습하는 것이다.
다수의 결정에서 소수의 존중과 보호이다.
존재의 존중이다.
극단적 양당정치의 비민주적 사회성이 계엄과 기획정치의 독선을 야기한 것이다.
패권적 울타리에 집착하여 국정운영 공유가 불가한 원인이다.
협력과 견제에서 안정적 기능의 마비이다.
불장난 같은 전쟁의 위기를 국민은 모르고 있었다.
철없는 위선이다.
매우 잘못된 정치이고 국정운영이다.
K문화와 글로벌 사회의 주류에 있는 대한민국의 실체를 부정하는 정치의 불장난이다.
진보와 보수의 단어적 순수가 사라지고 있다.
발바닥 굳은살 같은 좌우의 경계적 선입견이다.
국가기관은 나 홀로 정치와 특정집단의 전유가 아니다.
국정은 주요기관과 공유되어야 한다.
염려하는 보안은 국가관의 의지이다.
누구라도 대한민국이 우선이다.
앞뒤를 모르면 철이 없다.
민주주의의 역사와 학습이 부족한 것이다.
21세기의 지식과 문화적 기회를 물 말아 드시고 있다.
극단적 정치에 기대는 사사로운 거취에 분노해야 한다.
개혁되어야 한다.
중용도 혁명할 수 있다.
대통령 직선제와 다당제는 절차적 관련이 없다.
나누어야 탈이 없다.
2025.12.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