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사사로움.
어떤 자아. 본문
251 어떤 자아.
(26일 새벽이다.
큰 소나무 아래 누워 있었다.
물방울이 떨어지고 푸른 소나무 가지가 심하고 무섭게 흔들렸다.
가지와 사이의 공간을 쳐다보다 악마의 혼이 노려보고 있는 엄습한 절대에 소름이 돋았다.
젖은 노란상의로 옛집에 왔는데 어머니가 즐겁지 않은 표정으로 하얀 서류봉투를 주셨다.
무엇인지 모른다.
무엇일까?
특별한 것 같았다.)
(27일 새벽이다.
바다와 배 그리고 불량한 사람들이 모여 있고 살벌하고 굉장한 위기이다.
알 수 있는 관계인데 분별을 상실한 무리가 복수 또는 지배의 유희처럼 사람을 해쳤다.
옆집 아주머니 두어 분이 현장을 바라보고 있다.
나는 모든 현장에 있다.
집안(울타리)이 불안하다.
가까운 관계에서 분별을 상실한 일방적 요구에 어쩔 줄 모르며 증오 적 지배에 갇혀있다.
저항의 불가항력적 상실에서 겨드랑이 꼬집히는 고통이다.
인연에 억매인 무엇인가에서 최후의 미련이 많다.
관계의 고립에서 헤어 나와야 하는 궁지의 상황이다.
진실과 수단에서 존재와 관계의 부당하고 불편한 의지는 죽지 않는다.
멍에의 갈 길이 멀다.)
탄핵심리에서 피고인의 주장은 실체 없는 사건의 인식과 의견이라는 것이다.
계엄을 시도했으나 군에 의한 파괴적 행위가 없었으며 국민의 정신적 불안과 국가의 내외적 피해의 실체가
없다는 것이다.
일테면 전 국민이 의식하는 계엄의 피해는 추상적 인식과 의견이라는 변론이다.
야당대표 사법리스크에서 전 국민이 의식하는 김문기씨와 관계는 실체 없는 추상적 인식이라는 주장이다.
계엄의 주체가 주장하는 실체 없는 인식과 의견이라는 논리와 같다.
실체 없는 인식과 의견은 법적책임이 없다는 것이다.
표현의 자유라는 것이다.
탄핵의 평결이 야당대표 사법리스크 2차 심리 이후로 늦어지는 이유가 있을 수 있다.
법적주장의 동격에서 너의 행색을 살펴보겠다는 고육책이다.
어찌하다 법정을 이탈해서는 안 되는 법리의 절대가 정치를 해야 하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아는지 모르는지 무죄라고 하니 울타리 잔치에 정신없는 집단의 무지이다.
만인이 평등해야 하는 법적 형평성에 무지한 내로 남 불이다.
한치 앞이 어두운 대권의 조급한 집착이다.
도대체 앞뒤가 없다.
섣부른 정치적 시도는 발가벗고 용광로에 뛰어든 꼴이 될것이다.
나 홀로의 독선적 계엄에서 비롯된 탄핵의 정리는 한치 앞이 어두운 야당대표의 총체적 문제와 다르다.
개인적 거취의 사사로움이 아니라 국가의 미래이다.
전 국민이 분별하여 판단 할 수 있는 사법의 정의가 필요하다.
2025.3.27일.